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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도초면 고란리 고란마을 장승 신안문화원 2006/3/23 3468


    도초면 고란리 고란마을 장승

    도초면의 동쪽에 있는 고란마을은, 화도 선착장에서 섬을 가로지르는 도로의 버스 종점에 있다. 마을 북쪽에는 용당산이 마을을 등지고 있고, 동쪽은 고란평야의 넓은 농경지가 펼쳐져 있다. 1987년 현재 총 118호에 605명(남 310, 여 295)이 거주하는, 도초면에서 비교적 큰 마을에 속한다.
    고란마을에 들어서면 우선 커다란 석장승 1기가 눈에 뜨인다. 마을 개천 건너 다리목 ‘장승거리’ 혹은 ‘삼거리’라 불리우는 곳에 있는 이 장승은, 그 가장 큰 기능이 액과 살을 막아 주민을 보호하는, 마을 수호의 기능이라고 알려져 있다. 제보자에 따르면, 정확한 시기를 알 수 없는 어느 옛날 마을에 괴병이 번져 수많은 주민이 사망한 적이 있다. 괴병 때문에 주민들이 심한 고난을 겪고 있을 때, 한 선비가 마을을 지나다가 ‘마을 앞에 장승을 세우면 화를 막을 수 있으리라’는 충고를 하였다. 주민들은 그 말을 받아들여 주민 중에서 손재주가 있는 사람을 시켜 나무를 깎아 목장승을 세웠다. 목장승을 세운 후 주민들이 어떤 공동의례를 행했을 터이지만 알려진 바는 없다. 다만 몇몇 가정들이 개별적으로 장승 앞에 움막을 쳐놓고 단골을 불러 며칠씩 정성을 들이기도 했다는 말만 남아 있다.
    그 후 오랜 세월이 지나 1938년에는 석장승으로 바꾸어 세워 현재에 이른다. 현재의 장승 뒷면에는 장승을 세운 연대가 ‘을축십삼년’이라 새겨져 있다. 이 석장승은 도초면 내에 거주하던 석공들을 불러 제작케 하였다. 장승에 쓰인 돌은 고란리에서 골라 마을 주민 모두가 끌어 왔으며, 장승을 처음 세우고 그 앞에 소머리를 진설하고 제를 올렸다 한다. 장승을 세운 이유는 당이 영검이 많아 이 기를 죽이기 위해서, 부녀자들이 이바지를 가지고 오면서 당신에게 바치지 않고 그대로 지나가면 집에 오자마자 큰 병이 들었으며, 당을 향해 소변만 보아도 성기가 부어 고생을 하므로 장승을 세워 화를 면하게 하였다고 한다. 최덕원, 『다도해의 당제』, 학문사, 1983, 67쪽.

    장승은 머리에 약 30cm 높이의 모자를 쓰고 몸에 긴 웃옷을 걸친 모습이다. 어깨에서부터 반듯이 내린 소맷자락 아래로 다섯 개의 손가락이 펼쳐져 있다. 80cm길이의 얼굴은 290cm의 장승 전체 크기에 비해 다소 긴 편이다. 커다란 타원형의 눈이 툭 튀어 나와 있고, 좁은 양 미간에서 길게 내려 온 코는 두툼하며 투박스러운 느낌을 준다. 한편 얼굴 측면의 귀는 길고 두툼하게 이어 내려와 투박하면서도 일면 석가의 귀처럼 부드러운 느낌을 준다. 입은 또 다른 느낌을 준다. 행인에게 혹은 앞쪽의 자연물들에게 위압감을 주려는 의도에서였는지, 윗니 아랫니를 드러낸 형상인데, 오히려 웃는 모습같이 보이기도 한다. 이상과 같은 장승 형상에서 필자가 받은 전체적인 인상은, 일견 투박하고 위압적인 느낌을 주는 듯하나, 차츰 접할수록 오히려 포근하고 익살스러운 느낌을 주고 있다는 점이다.
    고란마을 장승의 특징은 당제에서 하당신의 신체로서 기능했다는 데 있다. 현재는 행하지 않고 있지만, 이 마을의 당제는 과거에는 상당제와 하당제로 나뉘어 상당히 성대하게 지내던 제의였다. 그리고 제를 마친 다음 죽마제를 지냈는데 이 제의는 도초 일대에 널리 알려져 있었다 한다. 상당제는 장승이 있는 곳에서 100여m 떨어진 상당에서, 하당제는 장승에서 거행되었었다. 고란마을 당제에 관해서는 최덕원에 의하여 자세히 보고된 바 있다. 그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최덕원, 『다도해의 당제』, 68쪽.

    상당에는 당집과 당마당과 당나무가 있었다. 상당의 당집에는 당할머니, 할아버지, 며느리, 아들, 딸과 마신, 천신, 지신을 모셨다. 이 당집은 1963년경 허물어져 버렸고, 현재는 당나무와 당마당만 남아 있다. 당제일은 정월 보름으로 3일전인 음력 정월 12일부터 3인의 제주가 상당에 가서 근신하다가 제를 지낸다. 제주들 외에 잡인은 출입을 금하였다. 제주가 제를 지내고 있을 때 당주(당을 관리하는 총무)가 마을의 풍년을 발원하는 소지를 올리고, 두 사람은 새벽 4시경에 상당제를 끝내고 하당으로 내려왔다.
    하당제의 당신은 천하대장군이었으며 그 신체가 장승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제의 절차는 우선 장승 앞에 쇠고기, 돼지고기 등의 육류, 포, 주, 산나물류의 제물을 진설하고서 <헌작→재배→구축>의 순으로 지내는 매우 간단한 것이었다. 하당제에서는 상당제 때와 달리 마을 주민들이 참여하여 구경할 수 있었다.
    하당제를 지낸 이후 죽마제를 지낸다. 제의 절차는 다음과 같다. 술과 음식을 음복한 주민들은 오전 9시경 농악대를 앞세워 당마당에 이르러 연회성이 상당히 강한 죽마제를 거행했다. 상당에서 모셨던 마신의 신체인 죽마는, 대나무로 말골격, 귀, 꼬리 등을 만들고, 골격부 잔등 부위에 짚을 깔아 사람이 탈 수 있게 하였으며 머리는 짚으로 엮어 단단하게 뭉쳐 참종이로 씌우고 먹으로 눈과 코를 그린 조형물이었다. 죽마제는 놀이적, 연극적 성격이 강한 제의였다. 우선, 당제의 제주가 죽마를 탄 마장사에게 제물을 대접하는 내용의 대사를 주고 받은 뒤 마장사가 죽마를 타고 달리면 동네 사람들은 죽마의 말머리와 입 부분을 힘차게 때리곤 했다. 동네 사람들이 매를 맞아 말주둥이가 터지면 농사가 잘된다는 믿음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마장사는 동네사람들에게 쫓겨다니다가 2km 떨어진 엄감포 포구에 이르게 되고 여기서 마신에게 제물을 차리고 모든 재액을 갖고 나가도록 기원한 후 바다에 죽마를 버렸다.
    이상과 같이 고란의 당제는 상당제→하당제→죽마제로 연이어 행해졌던 축제성이 강한 제의다. 그러나 제의 연행에 대한 상세한 조사가 어려운 상황이기 때문에 자세한 내용은 알기 어려운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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