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 2009.4. 30 <흑산도 김이수 어떻게 正祖 움직였나?>
조선후기 민권운동가 김이수의 생가
(신안=연합뉴스) 조선후기 민권운동의 선구자인 김이수(金理守.1743~1805)가 살았던 전남 신안군 흑산면 대둔도 생가. 260여 년 전 흑산도를 비롯한 인근 섬 지역 사람들의 불합리한 세금 문제와 민원 해결을 위해 앞장섰던 김이수의 생애와 행적이 다음 달 4일 밤 11시 30분에 KBS1 '역사추적'을 통해 재조명된다. 2009.4.30 <<전국부 관련기사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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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1 '역사추적' 4일 오후 11시 30분 방영
(신안=연합뉴스) 조근영 기자 = 조선후기 민권운동의 선구자인 김이수(金理守.1743~1805)의 생애와 행적이 전파를 탄다.
신안군은 260여 년 전 흑산도를 비롯한 인근 섬 지역 사람들의 불합리한 세금 문제와 민원 해결을 위해 앞장섰던 김이수의 생애와 행적이 다음 달 4일 밤 11시 30분에 KBS1 '역사추적'을 통해 재조명된다고 30일 밝혔다.
'흑산도 주민 김이수는 어떻게 정조를 움직였나'는 제목으로 방영될 이 프로그램에서는 지금의 흑산면 대둔도에서 살던 평범한 사람 김이수의 삶을 조명한다.
그는 오랜 세월 지속된 관권과 토호의 착취로 주민들이 섬을 버리고 사방으로 뿔뿔이 흩어져야 하는 참혹한 생활을 겪게 되자, 이를 바로잡고자 1767년부터 40여 년 동안 섬 주민들의 손과 발이 돼 흑산진, 나주목, 전라감영과 한양을 오가며 시정을 요구했다.
김이수의 활동 가운데 가장 주목되는 것은 1791년 흑산도 주민에게 가장 큰 폐단인 '닥나무 세금'을 개혁하기 위한 최후의 수단으로 바다 건너 수천 리 한양까지 올라가 정조 임금의 행차를 가로막고 '격쟁(擊錚)'을 올린 일이다.
상언(上言)과 함께 조선시기 소원제도 중의 하나였던 격쟁은 임금의 행차 길에 징이나 꽹과리를 치면서 시선을 집중시키고 나서 직접 억울한 일을 호소하는 방법이다.
김이수의 격쟁은 '백성의 소리'를 들을 줄 아는 정조에게 받아들여져 폐단이 종식됐으며, 그의 헌신적인 노력을 가상히 여긴 정조는 왕실 족보인 선원보(璿源譜)를 간행하는 선원록청(璿源錄廳)의 서사랑청(書寫郞廳)직을 제수했다고 한다.
김이수의 존재와 활동은 그동안 전혀 알려지지 않았다가 후손들과 신안문화원의 노력으로 '김이수 전기'가 발간되면서 이 같은 사실이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최근 흑산도의 묘소와 대둔도 생가, 흑산현터, 신안군청, 전남도청 등을 촬영한 KBS 역사추적팀은 김이수 후손들의 제사와 흑산 주민들의 생활상을 토대로 조선시기의 상황을 재연하고, 학계 전문가들의 인터뷰 내용 등을 담아 방영할 예정이다.
방송은 흑산도의 민초 김이수의 굽히지 않는 노력과 정조의 열린 정치가 빚어낸 역사 속의 작지만 큰 승리를 조명하는 내용을 소개한다고 신안군은 전했다.
한편, 신안군은 김이수 선양사업의 하나로 흑산면사무소 앞 광장을 '김이수 광장'으로 명명해 소공원을 조성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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