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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최익현(崔益鉉)과 지장암(指掌岩) 신안문화원 2006/3/23 6669


    최익현(崔益鉉)과 지장암(指掌岩)

    면암(勉菴) 최익현(崔益鉉, 1833년~1906년)은 조선 고종 때의 문신이자 의병장이다. 1875년 일본이 운양호(雲揚號) 사건을 도발하고 1876년에 이 사건을 구실로 부산항에 군대를 불법 상륙시키고 개항을 요구하였다. 1876년 2월 조선과 일본은 ‘조일수호조규(朝日修好條規)’ 일명 ‘병자수호조약’ ‘강화도조약’을 체결하였다. 이 때 최익현은 <병자지부소(丙子持斧疏)〉를 올려 일본과의 조약 체결을 반대하였으며, 이 상소로 인해 흑산도에 유배되었다. ꡔ배본등본(配本謄本)ꡕ에 의하면 최익현이 흑산도로 유배되는 유배일정이 나와 있는데, 1876년 9월에 무안읍에 도착하여 9월 10일 다경포진(多慶浦鎭)에서 배를 타고 암태도에 도착하여 1박을 하고, 이후 팔금도, 기좌도, 도초도, 비금도, 도사암을 거쳐 우이도에 위리안치되었다.
    현재 흑산면 예리 천촌마을 지장암에는 면암이 손수 새겼다는 「기봉강산홍무일월(箕封剛山洪武日月)」이라는 글씨가 남아 있다. 1879년에 유배에서 풀려나 1895년 궁내부특진관에 임명되고 뒤에 중추원의관․의정부찬정․경기도관찰사 등에 임명되었으나 모두 사퇴하고 향리에서 후진을 양성하였다. 그후 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이듬해 윤4월에 전라북도 태인에서 의병을 모집하여 궐기하였다가, 순창에서 체포되어 일본 대마도에 유배되어 단식 끝에 순절하였다.
    지장암 앞에는 1924년 9월 면암의 문하생인 오준선(吳駿善)․임동선(任東善) 등이 건립한 <면암최선생적려유허비(勉庵崔先生謫廬遺墟碑)>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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