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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신안해저발굴(新安海底發掘) 신안문화원 2006/3/23 8485


    신안해저발굴(新安海底發掘)

    신안해저발굴은 1975년 5월 신안군 증도면 방축리 앞 바다에서 고기잡이 하던 어부의 그물에 청자매병 등 6점의 유물이 건져 올려진 것을 계기로 세상에 알려졌다. 발굴은 문화재관리국 「신안해저발굴조사단」에 의해 1976년 10월부터 1984년 9월까지 10차례 걸쳐 이루어졌다. 발굴결과 인양된 선체편은 720여 편으로, 선체 원형을 복원할 수 있는 충분한 자료였다. 발굴된 유물은 총 22,007점에 이르며, 이 유물들은 동북아 삼국의 교류 상황을 살필 수 있는 중요한 단서를 제공하였다.

    1. 신안선의 출항지․항로

    신안선은 중국을 출발하여 일본을 향하던 무역선(貿易船) 이었다. 이 선박에는 도자기․동전 등 방대한 양의 중국 제품이 실려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며, 이 외에 생약재 일부와 자단목 등 동남아에 산지를 둔 물품들이었다. 상품들을 구입해온 하물주인들은 일본인과 일본 기관들의 대리인 등으로 구성되어 운영되었던 것으로 파악되는데, 이는 동전과 함께 인양된 많은 목패들의 묵서내용들이 이를 증명해 준다.
    중국과 일본을 연결하는 옛 항로에 대해서는 일본측의 고기록(古記錄)에 3개의 항로가 있었다고 한다. 하나는 황해를 우회하는 북로(北路)이고, 또 하나는 남쪽으로 나카사기(沖繩)을 경유하는 남도로(南島路)가 있었다. 그러나 중세의 무역선들은 동지나해와 황해의 경계수역에 따라 항해하는 남로(南路)를 주로 이용하였다. 즉 양자강 하류에서 주산열도(舟山列島)를 거쳐 우리 나라의 제주도 남쪽을 통과한 후 일본 구주의 오도열도(五島列島)를 목표로 항해하였다. 고려․송(宋) 간의 무역항도 일본에서 말하는 남로와 비슷하여, 주산열도에서 흑산도를 경유하여 서남해 연안항로에 진입하였다. 이는 『선화봉사고려도경(宣和奉使高麗圖經)』의 기록에 의해서도 알 수 있다. 그러나 이들 항로에서 벗어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고려사』에 의하면, 일본선이 제주도에 표착(漂着)한 일이 여러 차례 있었으며, 북쪽으로는 추자도와 고군산열도, 그리고 충남 서천군 개지도에 표류한 일도 있었다.
    신안선에는 2만점이 넘는 중국 도자기들이 인양되었고, 그 가운데 7점의 고려상감청자가 발견되었다. 고려청자 중에는 12~13세기로 추정되는 고가품이 포함되어 있는데, 이런 정황으로 미루어 볼 때, 이 무역선의 고려기항설의 유력한 근거가 되기도 하지만, 이들 청자가 배밑에 적재된 목상자에 들어 있었던 점을 감안할 때 중국에서 구입된 골동품(미술품)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이 무역선의 항로와 운영에 대해서는 또 하나의 가설이 제기된다. 즉 순회무역선설이다. 무역선의 목적지와 항로는 고려․일본․나카사기를 거쳐 필리핀 방면으로 순회하는 중국무역선일 가능성이 크다는 주장이었다. 그러나 순회무역선설의 주장은 하주(荷主)들의 이름이 묵서된 목패 발견으로 인해 타당성이 소멸되었다.
    목패(木牌) 묵서(墨書)는 무역선의 목적지가 일본 구주의 하카다항(博多港) 이었다는 사실을 입증해 주고 있다. 현재 후쿠오카시(福岡市)에 있는 여기팔번궁(여崎八幡宮)은 옛부터 명성이 높은 신사인데 그 이름이 목패의 묵서에서 보인다. 목패에 표기된 절 이름(寺名)인 조적암(釣寂庵)도 후쿠오카시 소재 탑두(塔頭)의 하나였다고 전해지는 암자와 이름이 같다. 13~14세기에 일본의 대찰들이 공허무역선(公許貿易船)을 중국에 자주 파견하였는데, 출항지는 하카다항을 이용하였고, 귀화 중국인들이 이 곳에 거주한 사실은 일본에서 널리 알려져 있다.
    중국과 일본을 연결하는 최단 무역코스는 남로를 택한 방법인데, 중국측의 상대 항구로는 경원, 즉 현재의 영파항이 주로 이용되었다. 영파항은 동양 중세에서 근세에 걸친 국제무역항으로서 그 이름이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신안 인양품 중에는 저울추가 여러 개 있는데, 그 중에 하나는「경원로(慶元路)」의 이름이 새겨져 있어, 이 무역선의 출항지를 밝히는데 참고자료로서 주목되고 있다.

    2. 신안선

    1) 신안선의 구조

    신안선은 발굴 당시 총 720여 편으로 분리 인양되었다. 이를 각 부재별로 살펴보면, 용골재 4편, 익판재 13편, 외판재 182편, 격벽재 63편, 격벽늑골 17편, 선수판 12편, 충합재(연결보강판) 41편, 늑골재 3편, 양상측판 7편, 현장지주 4편, 장좌 17편, 수조 28편 등이다. 이들 부재들은 크게 선저구조, 격창구조, 외판구조, 갑판연측구조, 선수, 선미구조, 기타 구조물 등 6가지로 나누어 살펴볼 수가 있다.
    ① 선저구조(船底構造) : 신안선은 첨저형 단면구조의 선박으로서 선저부에는 초강력 부재인 초대형 방형용골이 격창판, 외판의 기초가 되는 늑판, 익판과 함께 선저구조를 이루고 있다. 용골(龍骨)은 인체의 척추와 같은 것으로, 선박의 최저부로서 선체를 받치는 중요 골격이라고 할 수 있다.
    ② 격창구조(隔艙構造) : 격벽은 인체의 갈빗대에 해당하는 것이다. 즉 선체의 골격을 이루는 주요 부재로서 선형을 결정해주며, 선체의 부분적 강도는 물론 배 전체의 강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신안선에는 7개 구간의 격벽이 시설되어 7벽 8창의 구조로 되어 있다.
    ③ 외판구조(外板構造) : 외판이란 인체의 피부 즉 외피에 해당하는 부분이다. 신안선의 대표적인 특징은 외판의 구조가 홈붙이 클링커식 이음의 단판구조라는 점이다. 이것은 외판재의 하단 내측에 L자형의 홈을 파고 그 홈에 다른 외판재의 상단에 붙여 나가는 방식이다.
    ④ 갑판연측구조(甲板緣側構造) : 격벽의 최상단 모서리에서 갑판재, 현측외판, 양상측판, 현장,현장지주 등이 연결되는 구조를 일컫는다. 신안선의 선형 연구에 있어서 선체의 형심과 흘수의 척도를 얻는 근거가 됨으로 대단히 중요시 된다.
    ⑤ 선수․선미구조(船首․船尾 構造) : 평판형 선수와 각형 선미구조를 가지고 있다. 선수는 선현재가 마감되는 배의 최전단부로서 항해시 물을 가르는 역할을 한다. 신안선의 선수는 수주 및 평판선수재로 구조되어 위는 넓고 아래는 좁은 형태이다. 선미는 전통적인 동양식 각형의 트렌섬형이다. 선미에는 배의 진행방향을 결정해 주는 타(舵)가 장치되는데, 신안선의 타는 인양되지 못했다.
    ⑥ 기타 구조물(其他 構造物)
    ․장좌(檣座) : 장좌는 돛대 받침으로 2개가 확인되어 신안선이 범선임을 알게 해준다. 1기는 4격벽의 전면에 직립하여 위치하며 본장이라고 할 수 있다. 2기는 7격벽 전면에 선수쪽으로 11도 정도 기울게 구조되어 있다.
    ․수조(水槽) : 4격벽과 5격벽간의 우현에 대형의 물통이 발견되었다. 원양항해에 있어 물은 필수적인 것으로, 좌현부 쪽에도 이와 대칭되는 시설이 있었을 것이다.

    2) 신안선의 복원규모

    ① 최대길이 (最大船長) : 약 34m
    ② 최대너비 (最大船幅) : 약 11m
    ③ 형심중앙부 (形深中央部) : 약 3.7m
    ④ 적재중량 (積載重量) : 약 200ton

    3) 신안선에 실린 유물들

    신안선과 함께 발굴된 방대한 수량의 물품들은 무역을 목적으로 한 상품들이었다. 유물들은 선체의 내부와 외부에 걸쳐서 발견되었는데, 내부에 적재된 도자기들은 70×70×50cm 정도의 목재상자에 10~20개씩 포개서 끈으로 묶어 수십개 또는 수백개씩 정연하게 담겨져 있었다. 발굴 인양된 유물은 총 22,007점이며, 이 중 도자기 및 토기류가 20,661점으로 청자 12,359점, 청백자 5,303점에 달한다. 이들 신안해저 도자기는 중국산으로서 용천요계와 경덕진요계 도자기가 주를 이루고, 천목과 균요계의 도자기가 694점, 토기호가 1,305점 인양되었다. 금속유물이 729점, 석제품이 43점, 목제유물 및 기타 574점, 이밖에 동전이 약 28톤, 자단목이 1,017점 발굴되었다. 이들 유물중에는 고려유물과 일본유물을 비롯해 금속․석제․목제유물 등이 포함되어 있다.
    ① 고려유물(高麗遺物) : 신안 해저 유물 중에 고려자기 몇 점이 포함되어 있다. 종류는 매병(梅甁), 대접, 잔탁(盞托), 베개, 연적 등이 있는데, 이 중에서 청자사자연적(靑磁獅子硯滴)은 그 형태와 얼굴 등의 세부 표현이 매우 독특하다. 이 자기들은 12~13세기에 강진군 사당리요(康津郡沙堂里窯)와 부안군 유천리요(扶安郡柳川里窯)에서 생산된 것으로 추정된다. 고려자기의 인양으로 신안선의 고려 기착과 교역을 유추할 수 있으나, 제작 시기의 차이점이나 전체 유물 중 작은 수량인 점, 배에 실린 위치 등으로 미루어 볼 때 당시 중국에서 수집되어 실린 것으로 짐작된다. 동경은 10여 점이 출토되었는데, 자후명경(子厚銘鏡)은 고려 동경일 가능성이 크다. 또한 청동제 숟가락 중에서 손잡이가 완만한 곡선을 이루면서 끝에 Y자형의 장식을 한 유물은 고려시대 유적에서 출토되는 숟가락과 같은 형태로 고려 유물로 추정된다.
    ② 일본유물(日本遺物) : 일본유물은 칠기(漆器), 동경(銅鏡), 장기말, 나막신, 모란문회유병(牡丹文灰釉甁), 칼코, 칼자루, 대절인(大切刃), 소절인(小切刃) 등이 출토되었다. 이 유물들은 일본인 승선자(乘船者)와 관련된 것으로 추정된다. 장기말은 당시에 선상에서 시간을 보내는 데 실제 쓰였던 기구로 생각된다. 나막신은 굽이 높은 형식으로 일본에서 9세기부터 16세기까지 형태의 변화가 거의 없었다. 이 나막신은 일본인이 실제로 사용한 것으로 추정되었다. 모란문회유병은 중국이나 고려의 매병과 연결되는 것으로, 입이 좁고 어깨가 넓은 술항아리[酒壺]로 추정된다. 어깨와 허리에 걸쳐 모란당초문이 선각되어 있고, 전면에 연한 회녹색의 회유가 시유되었으며, 가마쿠라시대(鎌倉時代, 1185년~1392년)의 특색을 잘 보여주는 것으로 비슷한 시기의 것이 일본 각지에서도 출토되었다.
    ③ 금속유물(金屬遺物) : 금속유물은 다양하게 출토되었는데, 특히 은 제품은 공예적 가치가 높고, 제기류․촛대․동경․취사용 용기․병류․향로․등잔 등 총 729점이 인양되었다. 대부분 소비재로 생산용구가 포함되어 있지 않다는 점이 특이하다. 또한 은백색의 금속정(金屬鋌)이 300여 점 인양되었다. 그 가운데 명문(銘文)이 새겨진 것도 발견되었는데, 보존 처리 결과 주석(朱錫)으로 판명되었다. 청동추에서는 「경원로(慶元路)」라는 이름이 주자(鑄字)되어 있는데, 지금의 절강성 영파항의 옛이름으로 밝혀져 당시의 생산지와 무역항을 추정할 수 있는 결정적인 유물로 평가된다. 금속제품은 공예품이 절대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데, 이는 당시 교역에 있어 공예품을 중시하였음을 보여 준다. 그리고 약 28톤의 동전이 출토되었는데, 전한(前漢) 무제(武帝) 때까지 올라가는 오수전(五銖錢)을 비롯하여 침몰 당시까지 거의 모든 종류의 화폐가 망라되어 있어 동전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된다. 동전의 용도에 대해서는 많은 학설이 있다. 신안해저에서 인양된 동전은 약 28톤으로 유물로서의 가치 뿐만 아니라 교역품으로서도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동전은 화천(貨泉, A.D 14년)에서부터 지대통보(至大通寶, A.D 1310년)까지 66건 299종이나 되고, 이들 동전은 각 시대별 또는 화폐단위별로 분류 포장된 것이 아니라 무작위적으로 포장되어 있어 화폐로서의 사용보다는 원광(原鑛)과 함께 무역 대상 재료로 선적된 교역품으로 추정된다. 이는 동전과 함께 인양된 목패에 선적 날짜와 동전 무게, 화주(貨主)의 이름 등이 기록되어 어느 정도 입증되었다. 특히「지대통보(至大通寶)」와 「대원통보(大元通寶)」는 신안침몰선이 14세기 전반에 침몰하였다는 것을 보여주는 자료이다.
    ④ 석제유물(石製遺物) : 신안해저에서 인양된 석제는 43점으로 대부분 일상용구로 보여지는 벼루가 20점, 맷돌 2조, 석제문진, 석제추, 방추차, 석판 등이 출토되었다.
    ⑤ 목제유물(木製遺物) : 신안선에서 인양된 목제유물은 목상자(木箱子), 목기발(木器鉢), 목제반(木製盤), 칠기완(漆器碗), 자단목(紫檀木) 등이 완형으로 발견되었으며, 화물표에 해당하는 목패(木牌)가 있다. 목상자는 직방체(直方體)와 원통형(圓筒形)으로 무역 상품의 포장 및 운반용으로 사용되었다. 목상자의 여러 곳에서 부호로 생각되는 한자 묵서(墨書)를 확인할 수 있는데, 측면 중앙부에 대길(大吉)이라고 쓰인 예도 있다. 원통목상자 뚜껑은 원형 판자 1매로 되어 있고, 통의 두께는 2mm 정도의 얇은 나무껍질 같은 부판자를 휘어 원통으로 만들었다. 또한 목제유물 중에는 일본에서 사용된 나막신이 있으며, 편자와 족자의 잔해, 그리고 대나무로 만들어진 부챗살이나 두루말이의 목제축이 인양되었는데, 종이로 된 부분은 없어진 채 목재 부분만 남아 있다. 이 밖에도 목제 보살 입상, 목제 빗, 도칠 목제 벼루, 용각목인장, 주판알,「大吉」명자(尺), 저울대, 장기말 등이 출토되었다. 그리고 인도와 동남아가 주산지로 알려진 많은 자단목(紫檀木)이 배 밑부분에서 인양되었는데, 어두운 자색 빛깔의 나무 표면에 한자로 된 부호나 숫자를 새긴 것들이 있어 주목된다. 목패들은 무역선에 적재된 동전, 기타 화물들을 구분하여 소유주를 명시하기 위하여 사용하였다. 목패 중에는 년․월․일이 표시된 것이 있어 중국 원대(元代)의 연호인 「지치3년(至治參年)」(1323년)을 묵서하여 침몰선의 연대를 추정하는 근거를 제공해 준다. 화물주는 개인, 승려, 사찰, 직임 등이 새겨져 있으며, 「동복사(東福寺)」가 대표적이다. 목패의 크기는 길이 10cm~20cm, 너비 2cm~3cm, 두께는 0.5cm~1cm 정도이다. 목패는 주로 소나무와 삼나무로 만들었으며, 목패들은 끈으로 묶어서 포장된 상품들에 매달기 위해 머리 부분을 간단하게 조각하였다.
    ⑥ 기타유물(其他遺物) : 신안 침몰선에서 출토된 식물은 총 17과 21속 25종이다. 품종을 살펴보면 후추(胡椒), 파두(巴豆), 산수유(山茱萸), 사군자(使君子), 빈낭(檳낭), 여지(여枝), 복숭아씨(桃仁), 은행(銀杏), 매실(梅實), 호도(胡桃), 개암나무(榛), 밤(栗), 계피(桂皮), 생강(良薑) 등이 있다. 이와 같은 식물류는 주로 중국의 남부 지방과 인도, 말레이시아 등의 아열대 지역에서 재배되는 것이 주종을 이루고 있어 당시 교역 범위를 짐작케 한다. 토제는 토기호와 가채인물상이 보인다. 골제는 골제인과 주사위가 있는데, 음각과 표면을 매끄럽게 잘 다듬었다. 유리제는 짙은 청색의 반구형 유리제품인데 대부분 둔화현상을 나타내고 있다.

    4) 신안해저 중국 도자기

    신안선에는 20,661점이나 되는 막대한 양의 도자기가 실려 있었다. 700년간의 역사 속에 묻혀 있던 이 도자기는 대부분 중국 원대(元代)의 것이다. 신안 해저 도자기는 14세기 전반에 중국 절강성과 강서성을 중심으로 생산된 것으로, 대부분 용천요(龍泉窯)와 경덕진요(景德鎭窯)에서 제작된 다양한 기형과 문양의 도자이다. 이 외에도 정요(定窯), 균요(鈞窯), 건요(建窯), 길주요(吉州窯) 계통이 있다. 청자․청백자․백자류가 주를 이루며, 흑유(黑釉)․균유류(鈞釉類)와 소량의 토기류(土器類) 등이 있다. 중국 도자기는 9․10세기경부터 19세기경까지 약 천년에 걸쳐 중국 특산품으로 아시아, 유럽, 아프리카, 지중해 지역 등 전세계에 수출되었으며, 양질의 중국 도자기는 세계적으로 가치있는 귀중품으로 다뤄졌다. 특히 신안 해저 도자기에 해당하는 원대(元代)의 도자기는 적극적인 교역 정책으로 14세기 전후의 해상교역시대를 열었다.
    현재 중국 도자기는 우리나라, 일본, 동남아시아, 중근동(中近東), 페르시안만 연안, 아프리카 인도양 연안, 홍해 유역 등 세계 각지의 해안가 또는 해저에서 발견되고 있다. 이 도자기들은 동아시아 도자사 연구 뿐만 아니라, 바닷길을 통한 교역사 해명에 매우 중요한 자료이다. 인양된 도자기의 산지별 특징을 살펴보면 아래와 같다.
    ① 용천요 : 중국 절강성 용천현 산간 지방에 밀집되어 분포하는 20여 개소의 가마를 말한다. 오대(五代:907~960)부터 청자를 굽기 시작한 용천요는 남송대에 절정기를 이루었으며, 명말(明末)에 명맥이 끊겼다. 신안 해저 유물 중 남송대의 용천청자로는 청자어룡식병, 청자향로 등이 있다. 원대의 용천청자는 신안 유물의 대다수에 달하는 약 1만여 점이며, 청자철반문동자상, 청자첩화노태철반문접시, 청자인물형촛대 등이 대표적이다.
    ② 경덕진요 : 강서성 요주 부량현에 위치하고 송대 이후 독자적 품격의 자기를 생산하여 비약적으로 발전하였다. 명대에 이르러 황실과 관청용 도자기를 굽기도 하였다. 신안 출토 경덕진 자기로는 청백자음각모란당초문병, 청백자화형전접시, 청백자도형잔 등이 있다
    ③ 정요 : 주로 백자를 구운 요지로서 하북성 곡양현에 위치한다. 신안유물 중 정요 계통으로 보이는 접시와 향로, 매병 등이 몇 점 발견되었다.
    ④ 균요 : 하남성 우현지역에 분포하여 화북, 화남 지역에 방대한 균요계를 형성하였다. 북송대에 시작되어 금․원대에 번성하였으며, 청색 바탕에 백탁유를 두텁게 입힌 독특한 도자기를 소성하였다. 신안 출토 균요자기는 절강성 금화 지역의 균요계 제품으로 추정된다.
    ⑤ 건요 : 복건성에 위치한 요지로서 오대에 발생하여 송대에 명성을 떨쳤던 흑유의 명산지이다. 자기의 색깔이 다양하며 찻잔을 주로 만들었기 때문에 건잔이란 약칭으로 불리기도 한다. 신안 해저에서 하남 천목과 함께 건요산 천목이 출토되었다.
    ⑥ 길주요 : 강서성에 위치한 요지로서 당말(唐末)에 발생하여 송대에 절정을 이루었고 14세기경 명맥이 끊어졌다. 신안 출토 길주요 도자기로는 갈유의 작은 항아리들과 백유흑화당초문소병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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