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사와 문화 > 문화유산

글번호 제 목 작성자 작성일 조회
158   [증도면] 증도면 문화유산 신안문화원 2008/2/12 3819


    [증도면] 증도면의 문화유산
    출처 : 목포대학교박물관, 2008 《신안군문화유적분포지도》 신안군

    1. 新安 曾東里 曾東貝塚 (신안 증동리 증동패총)
    소 재 지 : 증도면 증동리 증동마을
    시 대 : 철기
    종 류 : 패총
    유적현황 : 증동마을에서 서쪽으로 500m 정도 거리의 밭에 위치한다. 이곳은 북쪽의 ‘산정봉’에서 뻗어져 내려오는 남쪽 사면부로 남서쪽으로 해안과 인접해 있다. 기존 조사에 따르면 “일부는 논을 만들면서 파괴되기도 하였으나 비교적 잘 남아 있으며, 분포 범위가 약 2,000평으로 넓은 면적에 형성되어 있다. 패각의 단면이 노출된 곳이 없어 패각층의 두께는 확인할 수 없으나 파괴된 곳으로 보아서는 1m 정도에 이른다.”고 하였으나 현재, 도로의 확장과 경지정리로 인해 패각층과 토기편은 확인되지 않고 소량의 패각만이 확인되었다.
    참고문헌 : 국립문화재연구소ㆍ목포대학교박물관 1996,『문화유적총람』전라남도(Ⅲ).

    2. 新安 曾東里 曾東遺物散布地 (신안 증동리 증동유물산포지)
    소 재 지 : 증도면 증동리 증동마을
    시 대 : 삼국
    종 류 : 유물산포지
    유적현황 : 유물산포지는 증동마을 북쪽에 위치한 구릉(32.8m)의 북사면부 일대이다. 이곳은 마을 서쪽에 위치한 ‘산정봉’에서 동쪽으로 내려오는 구릉의 말단부로 증동마을과 증동아랫저수지 사이의 구릉 사면부이다. 마을의 서쪽에 위치하는 산정봉은 동남쪽으로 뻗어져 내려와 저평한 구릉을 형성하고 이곳에 마을이 위치한다. 또한 마을의 동쪽으로는 넓게 형성된 ‘증동뒷들’이 남쪽으로는 간척된 넓은 평야가 자리하고 있다. 현재 유물산포지 주변은 밭으로 경작되고 있으며, 유물은 적갈색연질토기편, 회청색경질토기편이 수습되었다.
    참고문헌 : 신자료

    3. 新安 曾東里 徐珍基遺蹟碑 (신안 증동리 서진기유적비)
    소 재 지 : 증도면 증동리 증동마을
    시 대 : 1933년
    종 류 : 비갈
    유적현황 : 증동마을 초입에서 오른쪽으로 열린 도로를 따라 50m 정도 진입하면 ‘고 문준경 전도사 순교기념 사업회 본부’가 있다. 이 사업회 사무실 오른쪽에 산록으로 연결되는 좁은 골목길이 열려 있다. 이 길을 따라 30m 정도 올라가면 이천서씨의 재각이 나온다. 이 재각의 바로 앞에 유적비가 있다. 전면에 ‘三峰徐先生’이라고 새겨져 있는, 이 비의 주인공은 徐珍基이다. 공의 字는 文玉이고, 본관은 利川이다. 선생은 종족간의 화목을 중요시 하였다. 또 경술국치에 두문불출하여 울분을 토로하였고, 백성들을 진휼하는데 노력하였다. 이에 향리의 선비들이 1933년에 공을 추모하는 壇을 세우고, 공의 문인들이 유적비를 건립하였다. 비의 규모는 높이 160㎝, 너비 61㎝, 두께 22㎝ 이다. 비문은 22행 40자이며, 李炳觀이 撰하고, 李長信이 書했다.
    참고문헌 : 목포대학교 도서문화연구소 2006,『도서 문화유적 지표조사 및 자원화 연구7 -증도면 편-』.

    4. 新安 曾東里 鄭泰熙遺蹟碑 (신안 증동리 정태희유적비)
    소 재 지 : 증도면 증동리 증동마을
    시 대 : 1933년
    종 류 : 비갈
    유적현황 : 증동마을 ‘문준경기념비’ 앞을 지나 산록으로 접어들면 골목길 오른편에 이천서씨의 문중재각이 있다. 이 재각으로 들어서지 않고 조금 더 산록으로 올라가면 야산 초입에 비가 위치한다. 공은 고려 平章事 鄭均의 후예이고, 조부는 鄭權澤이다. 공은 1881년에 태어나 1937년에 세상을 떠났다. 공의 호는 蓮社이고, 배우자는 전주최씨이다. 비석의 규모는 높이 177㎝, 너비 59㎝, 두께 27㎝이다. 비문은 19행 40자이다.
    참고문헌 : 목포대학교 도서문화연구소 2006,『도서 문화유적 지표조사 및 자원화 연구7 -증도면 편-』.

    5. 新安 曾東里 鄭求班家屋 (신안 증동리 정구반가옥)
    소 재 지 : 증도면 증동리 1349(증서마을)
    시 대 : 1800년대 말
    종 류 : 주거건축
    유적현황 : 증동리 증서마을에 위치하며, 한때 부농가로 알려져 왔던 가옥이다. 건물은 현재 대지의 중앙 안쪽에 남향으로 앉힌 안채와 전면 입구 좌측에 죽담구조의 측간 1채로 구성되어 있다. 안채는 부농가답게 비교적 그 규모가 크며, 훼손된 곳 없이 원형이 잘 보존되어 있다. 평면구성은 좌측으로부터 외양간, 정지, 안방, 마래 순으로 배치하고 전면의 툇간에는 툇마루를 설치하였다. 그리고 외양간과 정지 전면으로는 나란히 방2개(모방과 갓방)를 꾸몄다. 또한 마래의 뒷퇴 일부분과 그 뒤쪽의 처마 밑으로는 따로 뒷광을 꾸며 알곡식 저장고로 이용케 하였다. 구조는 전후로 퇴를 둔 2고주5량 형식으로 기단은 1벌대 막돌놓기로 되어있고 초석은 막돌초석이며 기둥은 방주를 사용하였다. 벽체는 흙벽이며 천장에는 안방까지 모두 서까래가 그대로 노출된 연등천장으로 꾸몄다. 지붕은 본래 초가지붕이었으나 약 10여년 전에 시멘트기와로 교체시켰다.
    참고문헌 : 木浦大學校博物館 1987,『新安郡의 文化遺蹟』.

    6. 新安 曾島 石造 소금倉庫 (신안 증도 석조 소금창고)
    소 재 지 : 증도면 증동리 1648
    시 대 : 1953년
    종 류 : 어염업
    유적현황 : 1953년 (주)척방산업이 염전 조성 시 건립하였다. 당시 이곳에서 상주하던 사람은 400여명으로 이들에 의해 지어진 것이라 하며, 결정지 토판에서 레일을 깔아 창고 내부까지 운반하여 출고 전의 적제 및 보관하던 창고로 사용되었다. 이후 그 기능이 목재 소금창고로 대체되어 자재창고로 사용되었으며, 1999년 소금 가공공장으로 용도가 변경되었다. 2006년 3월 22일 증도 태평소금전시장으로 등록, 2006년부터 대부분의 원형을 그대로 유지한 상태로 소금박물관으로 변경되었다.
    참고문헌 :


    7. 新安 曾島 태평鹽田 (신안 증도 태평염전)
    소 재 지 : 증도면 증동리 1931
    시 대 : 1953년
    종 류 : 어염업
    유적현황 : 전증도와 후증도를 연결하는 제방이 축조되면서 조성된 염전이다. 단일염전으로는 국내 최대 규모이며, 1953년 한국전쟁 후에 정부가 이북에서 피난민들에게 염전을 제공하여 피난민촌을 조성하여 구제하고, 국내 소금생산의 자급자족을 목적으로 조성되었다. 염전은 동서방향으로 긴 장방형의 형태로서 북쪽에 1공구와 남쪽에 2공구가 조성되어 있다. 또한 2공구 동남쪽에도 3공구가 남북방향으로 조성되어 있다.
    참고문헌 :

    8. 新安 防築里 防築支石墓 (신안 방축리 방축지석묘)
    소 재 지 : 증도면 방축리 방축마을
    시 대 : 청동기
    종 류 : 지석묘
    유적현황 : 방축마을에서 남쪽으로 300m 정도 거리의 산사면부에 1기의 지석묘가 위치한다. 이곳은 마을 남쪽 야산(200m)의 북쪽사면부와 ‘해지청들’ 사이이다. 북쪽으로 황해와 인접하고 동쪽과 서쪽으로는 나지막한 야산으로 둘러싸여 있다. 상석의 평면형태는 장방형이며, 규모는 장축 400m, 단축 240m, 두께 146m이다. 장축방향은 남동-북서이다.
    참고문헌 : 신자료

    9. 新安 防築里 劍山防厄石 (신안 방축리 검산방액석)
    소 재 지 : 증도면 방축리 검산마을
    시 대 : 1932년
    종 류 : 민속유적
    유적현황 : 검산마을로 들어가는 길목에 세워져 있다. 규모는 높이 110cm, 너비 51cm, 두께 19cm로 ‘壬申 元月 村中 防厄石’ 이라고 새겨져있다. 방액석은 입석과 같은 기능을 하는 돌로 마을로 들어오는 재액을 막기 위해 세워놓은 것으로 보인다. 연대는 오래되지 않았지만, 건립연대를 새겨놓았다는 점에서 희소성이 있다.
    참고문헌 : 목포대학교 도서문화연구소 2006,『도서 문화유적 지표조사 및 자원화 연구7 -증도면 편-』.

    10. 宋ㆍ元代 遺物埋葬海域 (송ㆍ원대 유물매장해역)
    소 재 지 : 증도면 방축리 해역
    시 대 : 고려
    종 류 : 유물산포지
    유적현황 : 방축리 서북방향으로 2,7km 지점의 도덕도 앞바다에 위치한다. 이곳은 서쪽으로는 황해가 펼쳐져 있고 북쪽으로는 임자도가 있는 곳으로, 어민들의 연안어장이지만 간만의 차와 한류의 이동이 심한 곳으로 알려져 있다. 이곳에서 1975년 5월, 어부에 의해 유물이 발견되어 1979년 10월 문화재관리국의 「신안해저발굴조사단」에 의해 발굴조사 되었다. 이후 1984년 9월까지 10차례에 걸쳐 발굴 작업이 실시되었다. 조사결과 인양된 선체편은 720여 편으로, 선체 원형 복원이 이루어졌다. 발굴된 유물은 총 22,007점으로, 7개의 격벽(隔壁)으로 구획된 짐칸 속에서 인양되었다. 출토된 유물은 침몰 당시의 해상운송 규모를 말해주며, 중국ㆍ고려ㆍ일본 등 3국의 경제적인 교류가 이루어졌음을 입증해준다. 유물은 주로 송ㆍ원대에 사용하였던 물건이 주를 이루며, 고려청자를 비롯한 고려 유물과 나막신ㆍ칼코 등 일본 유물도 20여점이 발견되었다. 1981년 6월 16일 방축리 해역 반경 2km지역이 국가사적 제274호로 지정되었다.
    참고문헌 : 문화공보부ㆍ문화재관리국 1988,『新安海底遺物』.

    11. 新安 大棗里 長庫祭堂 (신안 대초리 장고제당)
    소 재 지 : 증도면 대초리 장고마을
    시 대 : 미상
    종 류 : 민속유적
    유적현황 : 장고마을에서는 매년 음력 정월 보름에 동제를 거행한다. 동제는 ‘산신제’ 혹은 ‘당산제’라고 불리며, 제신은 ‘산신할머니’라 불리는 여신이다. 제장은 노송이 우거진 마을 뒷산 언덕 밑에 위치해 있다. 높이 100cm의 돌담이 사면에 둘러쳐 있고 그 안에 돌로 쌓은 제단이 있다. 동제는 보름날 자정부터 진설ㆍ분향ㆍ재배ㆍ독축ㆍ소지ㆍ음복의 순서로 진행되었다고 하나 현재는 중단된 상태이다.
    참고문헌 : 목포대학교 도서문화연구소 2006,『도서 문화유적 지표조사 및 자원화 연구7 -증도면 편-』.

    12. 新安 羽田里 羽田遺物散布地 (신안 우전리 우전유물산포지)
    소 재 지 : 증도면 우전리 우전마을
    시 대 : 삼국~조선
    종 류 : 유물산포지
    유적개요 : 유물산포지는 우전리 우전마을에서 남서쪽으로 1.7km 정도 떨어진 곳의 해안가에 위치한다. 이곳은 예전부터 ‘밭끝’이라고 불리던 곳으로, 이곳 ‘밭끝’과 남쪽에 인접한 ‘목섬’ 전역에 걸쳐 다양한 시대의 유물이 수습되었다. 삼국시대로 보이는 회청색경질토기편과 고려시대의 청자편과 도기편, 조선시대 백자편이 다량 수습되었다. 농로의 개설과 풍화작용으로 인해 주변이 훼손되고 있다.
    참고문헌 : 신자료

    13. 新安 羽田里 羽田祭堂 (신안 우전리 우전제당)
    소 재 지 : 증도면 우전리 우전마을
    시 대 : 미상
    종 류 : 민속유적
    유적현황 : 우전마을 주민들은 매년 음력 정월 열나흘 날 자정부터 당제를 지낸다. 상당제의 당신은 ‘당할아버지’, 하당제의 당신은 ‘당할머니’이다. 상당은 마을 뒷산 정상에 있는 원형석축제단으로 석축내부에 소뼈를 넣어 둘 수 있는 70cm 높이의 작은 제단이 있어, 매년 제가 끝나면 제주가 제물로 쓰인 소 뼈를 이곳에 넣어둔다. 상당에서 20m 정도 떨어진 곳에는 슬레이트 지붕에 벽돌로 벽을 쌓은 당집이 있다. 이집은 제주가 제물을 요리하면서 제가 진행되는 동안 근신하는 집이다. 상당제를 마치고 마을로 내려와 하당제를 지낸다. 하당(할머니당)은 마을 앞의 팽나무(우전보호수)이다.
    참고문헌 : 목포대학교박물관 2006,「증도 갯벌생태공원 예정지역 내 문화유적지표조사보고」, 『2004년 문화유적지표조사보고』.

    14. 新安 羽田里 羽田保護樹 (신안 우전리 우전보호수)
    소 재 지 : 증도면 우전리 340(우전마을)
    시 대 : 미상
    종 류 : 노거수ㆍ민속유적
    유적현황 : 우전마을 입구에 ‘極齊南相俊功蹟碑’(1970년)와 나란히 서있다. 수종은 팽나무이며, 수령은 500여년이다. 이 팽나무는 우전마을 당제의 하당(할머니당)이기도 하다. 상당제를 마치고, 마을로 내려와 하당제를 지내는데, 당할머니에게 메 한 그릇과 나물 한 가지만 진설하고 제주가 재배하는 간단한 절차로 진행된다.
    참고문헌 : 목포대학교박물관 2006,「증도 갯벌생태공원 예정지역 내 문화유적지표조사보고」,『2004년 문화유적지표조사보고』.

    15. 新安 羽田里 갈마도支石墓 (신안 우전리 갈마도지석묘)
    소 재 지 : 증도면 우전리 갈마도
    시 대 : 청동기
    종 류 : 지석묘
    유적현황 : 갈마도는 우전마을에서 남동쪽으로 700m 정도 떨어져 있는데 간척사업으로 인해 우전리와 이어져 있다. 갈마도 정상부근에 자연석과 함께 지석묘가 위치하며, 상석은 북쪽부분이 약간 유실되었다. 지석묘가 위치한 정상부와 남동쪽 사면부에는 ‘갈마도패총’이 위치한다. 지석묘의 평면형태는 장방형이며, 상석의 규모는 장축길이 510㎝, 단축길이 220㎝, 두께 130㎝이다. 장축방향은 남-북이다.
    참고문헌 : 木浦大學校博物館 1987,『新安郡의 文化遺蹟』.

    16. 新安 羽田里 갈마도貝塚 (신안 우전리 갈마도패총)
    소 재 지 : 증도면 우전리 갈마도
    시 대 : 철기
    종 류 : 패총
    유적현황 : 갈마도는 우전마을에서 남동쪽으로 700m 정도 떨어져 있는데 간척사업으로 인해 우전리와 이어져 있다. 패각은 해안과 인접한 섬의 남동쪽과 ‘갈마도지석묘’가 자리하는 정상부까지 노출되어 있다. 비교적 패각층이 잘 노출되어 있는 곳은 남쪽 암반층 위쪽으로, 길이 5m, 두께 50~70㎝ 정도가 남아 있으며, 유물은 적갈색경질토기편이 수습되었다.
    참고문헌 : 木浦大學校博物館 1987,『新安郡의 文化遺蹟』.






(58753) 전남 목포시 수강로3번길 14 신안군별관 2층 / 전화 : 061) 242-8131 / 팩스 : 061) 243-8132 / sa8131@kccf.or.kr
COPYRIGHT 2006 SHINANCULTURE.NET.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