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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5   [흑산면] 흑산면 문화유산 신안문화원 2008/2/12 5394


    [흑산면] 흑산면의 문화유산
    출처 : 목포대학교박물관, 2008 《신안군문화유적분포지도》 신안군

    1. 新安 鎭里 鎭里支石墓群 (신안 진리 진리지석묘군)
    소 재 지 : 흑산면 진리 102-2(진리마을)
    시 대 : 청동기
    종 류 : 지석묘
    유적개요 : 지석묘군은 흑산면사무소의 동편에 위치하고 있다. 이곳은 칠락산(240m)의 북쪽 지류의 구릉 끝자락으로 바다와는 300m 정도 떨어져 있다. 1954년도에 총 7기가 처음 발견되었으며, 지석묘의 성격 규명을 위하여 1호 지석묘를 시굴한 결과 지석 5개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 후 지석묘군이 자리한 곳에 도로 확ㆍ포장공사가 이루어지고 주변을 정리하면서 상석들은 대부분 이동된 것으로 보인다. 대표적인 1호 지석묘 상석형태는 타원형이며, 규모는 장축길이 220cm, 단축길이 114cm, 두께 39cm 이다. 최근 조사에서 북쪽으로 50m 정도 떨어진 곳에 경지정리 작업 도중 4기의 지석묘가 추가 확인되었다. 상석은 이동된 것으로 보이며, 일부 하부구조가 관찰되기도 한다.
    참고문헌 : 木浦大學校博物館 1987,『新安郡의 文化遺蹟』.

    2. 新安 鎭里 黑山鎭(址) (신안 진리 흑산진지)
    소 재 지 : 흑산면 진리 진리마을
    시 대 : 조선
    종 류 : 군영
    유적개요 : 흑산진은 현 진리마을에 설치되었고 조선시대 수군들이 주둔하였던 곳이다. 흑산진은 흑산면 진리와 가거도, 도초면 우이도 진리에 설치되었던 조선시대 수군들의 주둔처인 別將鎭이다. 흑산진의 창설은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는다. 1665년(현종 6)에 설진논의가 있었던 것으로 확인되며, 1759년에 작성된 『여지도서』에 흑산진이 등재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대략 1665년~1759년 사이에 設鎭된 것으로 추정된다. 신안군에 설치된 대부분의 수군진은 鎭城에 대한 축성기록이 확인되지 않는다. 흑산진의 경우도 성을 축조하였다는 기록은 확인되지 않는다. 다만 우이도의 ‘성재’라 불리는 곳에 석축의 흔적이 보고된 바 있으나, 성축으로 보기에는 무리가 따른다. 문헌자료인『호남진지』「흑산진사례성책」를 통해 흑산진의 역할은 上納ㆍ보전ㆍ선세ㆍ守直ㆍ유배인에 관한 업무를 담당하고 있었음이 확인된다.
    참고문헌 : 목포대학교박물관 2003,『신안군 흑산면 소사지구 지방상수도시설 사업지역내 문화재지표조사보고』.

    3. 新安 鎭里 南原方氏懿烈碑 (신안 진리 남원방씨의열비)
    소 재 지 : 흑산면 진리 진리마을
    시 대 : 1941년
    종 류 : 비갈
    유적개요 : 진리마을에서 읍동마을로 향하는 도로 좌측에 위치한다. ‘故士人李鍾局妻南原方氏懿烈碑’라 새겨져 있고, 뒷면에는 7행 14자의 비문이 새겨져 있는 이 비는 이종국(李鍾局)의 처(妻) 방씨(方氏)부인의 절의 정신을 기리기 위해 유림(院長 李明翊, 都有司 李範敏, 總裁 金成圭)들이 세운 것이다. 1941년에 건립된 것으로, 비의 규모는 높이 150cm, 너비 54.5cm, 두께 21cm이며, 비 주변은 돌담으로 둘러져 있다.
    참고문헌 : 목포대학교박물관 2003,『신안군 흑산면 소사지구 지방상수도시설 사업지역내 문화재지표조사보고』.

    4. 黑山 鎭里堂 (흑산 진리당)
    소 재 지 : 흑산면 진리 산77(진리마을)
    시 대 : 미상
    종 류 : 민속유적
    유적개요 : 흑산도 진리 마을의 당제는 예로부터 성대한 규모로 이름 높았으며, 당(堂)은 흑산의 본당(本堂)이라고 전해질 만큼 권위가 높았다. 상당(上堂)과 용신당(龍神堂)으로 구성되었으며, 갯가에서 갯제를 지낼 때 임시로 설치하는 제청이 있다. 상당은 ‘각시당’으로 인식되며, 상당의 형성과 관련해서는 ‘당각시 설화’와 ‘총각화상 설화’가 전해지고 있다. 두 겹의 돌담으로, 안쪽 돌담은 신을 모신 당집을, 바깥 돌담은 제기와 취사도구를 보관하고 있는 문간방 주위로 둘러쳐져 있다. 현재 상당의 당집은 상당 기둥에 쓰여 있는 건조 연월일로 보아 1938년 7월에 지은 것이다. 상당의 돌담 오른쪽의 숲길을 따라 50m 정도 떨어진 곳에는 바다의 신인 용왕이 좌정한 용신당이 있다. 진리마을 당제는 제의 기간이나 절차로 보아 상당히 성대했다. 특히 제의 기간이 음력 정초부터 3일간이었던 것, 제관들이 들돌을 들어 보아 가벼우면 신들이 제물을 잘 흠양했다고 여겼던 의례, 그리고 갯제에서 무당을 불러 용왕굿을 성대하게 지내면서 뱃길의 무사와 풍어를 기원하는 특징을 지니고 있었다. 현재 당제는 전승되지 않고 있으나 상당 앞마당에서는 경로잔치를 비롯한 각종 마을 잔치와 집회가 열리고 있다.
    참고문헌 : 목포대학 도서문화연구소 1988, 『도서문화』제6집.

    5. 鎭里 招靈木 自生地 (진리 초령목 자생지)
    소 재 지 : 흑산면 진리 산77(진리마을)
    시 대 : 미상
    종 류 : 자생지
    유적현황 : 초령목 자생지는 진리마을 백사장에서 50m 정도 떨어진 산록에 위치한다. 초령목 아래로 작은 시냇물이 흐르고, 그 위에 ‘희망교’라는 다리가 있다. 초령목(학명 Michelia compressa)은 목련과 초령목속이며, 우리나라에는 제주도와 흑산도에서만 서식하는 수목으로 거의 멸종된 희귀수목이다. 초령목(招靈木)이란 이름은 이 나뭇가지를 불전(佛前)에 꽂아 귀신(鬼神)을 부른다는 설에 따라 붙여진 것이라 하여 일명 ‘귀신나무’라 부르기도 한다. 1992년 10월 22일 천연기념물 제369호로 지정되었으나, 1994년 초령목이 고사(수고 20m, 직경 2.4m)함에 따라 천연기념물 지정이 해제되고, 2004년 전라남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주변에 어린 초령목 43그루가 자생하고 있는데, 자생하고 있는 어린 초령목은 관목층과 초본층에 수고 30~250cm 크기로 확인된다.
    참고문헌 : 신안군 2005,『우리고장의 향토문화유적』.

    6. 新安 鎭里 邑洞遺物散布地① (신안 진리 읍동유물산포지①)
    소 재 지 : 흑산면 진리 읍동마을
    시 대 : 통일신라~고려
    종 류 : 유물산포지
    유적개요 : 상라산 정상부에서 동으로 뻗은 능선 줄기의 끝자락에 위치한다. 이곳은 읍동마을 주민인 최상출씨 소유의 밭으로 내영산도와 외영산도가 에워싸고 있으며, 바다가 훤히 조망되는 곳이다. 현재 밭으로 개간하고 있으며, 유물은 청자편, 어골문기와편, 경질토기편 등이 확인되었다. 유물로 볼 때 건물지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참고문헌 : 목포대학교 도서문화연구소 2003,『도서 문화유적 지표조사 및 자원화 연구3 -흑산면 편-』.

    7. 新安 鎭里 邑洞遺物散布地② (신안 진리 읍동유물산포지②)
    소 재 지 : 흑산면 진리 읍동마을
    시 대 : 통일신라~고려
    종 류 : 유물산포지
    유적개요 : 상라산 전망대에서 동쪽의 읍동마을을 향해 뻗은 능선의 끝자락에 동-서 방향으로 30m 정도 되는 평탄 대지가 형성되어 있는데 이곳에 유물산포지가 위치하고 있다. 기 조사에서 기와편과 와전편이 수습되었고, 남향의 건물지 초석이 일부 남아있다고 하며 이 건물지를 현청지 혹은 관사지로 추정하였다. 현재 민묘 조성과 밭으로 개간되고 있으며, 이곳에서 기와 및 와전편, 회청색경질토기편, 청자편 등이 확인되었다. 이들은 무심사지나 상라산 제사지에서 수습된 것들과 동시기의 것으로 판단된다.
    참고문헌 : 목포대학교 도서문화연구소 2003,『도서 문화유적 지표조사 및 자원화 연구3 -흑산면 편-』.

    8. 新安 鎭里 无心寺址 (신안 진리 무심사지)
    소 재 지 : 흑산면 진리 721-2(읍동마을)
    시 대 : 통일신라
    종 류 : 사지
    유적개요 : 읍동마을 뒤편의 속칭 ‘탑산골’ 골짜기 입구에 위치하고 있는데 상라산 북쪽 능선의 동쪽 끝자락에 해당된다. 이곳을 통해 대흑산도 서부지역으로 연결되며, 상라산성과는 300m 정도 떨어져 있다. 무심사는 ‘목포대학교 도서문화연구소’에서 흑산도 상라산성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통일신라시대「无心寺禪院」銘 숫키와편 4점이 발견됨으로서 선종계통의 无心寺로 밝혀지게 되었다. 현재 이곳에는 삼층석탑과 석등, 건물지의 축대 일부만이 남아있다. 유물로는 명문기와편, 막새류, 수키와, 암키와 등이 확인되었다.
    참고문헌 : 목포대학교 도서문화연구소 2000,『흑산도 상라산성 연구』.

    9. 鎭里 石塔 및 石燈 (진리 석탑 및 석등)
    소 재 지 : 흑산면 진리 721-2(읍동마을)
    시 대 : 통일신라
    종 류 : 사지ㆍ민속유적
    유적개요 : 읍동마을 뒤편의 속칭 ‘탑산골’ 골짜기 입구에 위치하고 있는데 상라산 북쪽 능선의 동쪽 끝자락에 해당된다. 사찰의 이름이 전해지지 않은 채 삼층석탑과 석등, 건물지의 축대 일부만이 전해져 오다가, ‘목포대학교 도서문화연구소’에서 흑산도 상라산성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통일신라시대 ‘无心寺禪院’ 銘 숫키와편 4점이 발견됨으로서 선종계통의 ‘无心寺’로 밝혀지게 되었다. 석탑의 높이 190cm, 석등의 높이는 160cm로 팽나무로 인해 10°정도 기울어져 있으며, 붕괴를 막기 위해 상대갑석 아래 부분은 시멘트로 보강되어 있다. 읍동마을 주민들은 이 석탑과 석등을 각각 ‘수탑’, ‘암탑’이라 부르며, 이곳은 읍동마을에서 매년 정월 초하루에 행하던 당제의 제장이기도 하였다. 탑과 석등과 함께 콘크리트 당집이 있었으나 당집은 유실되었고, 제의도 중단되었다.
    참고문헌 : 목포대학교 도서문화연구소 2000,『흑산도 상라산성 연구』.
    지도색인(사진번호) : /
    비 고 : 전라남도 문화재자료 제193호 (1994. 1. 31)

    10. 上羅山城址 (상라산성지)
    소 재 지 : 흑산면 진리 산6ㆍ7(읍동마을)
    시 대 : 통일신라~고려
    종 류 : 성곽
    유적개요 : 상라산성은 상라산 정상부에 있는 봉수대에서 1km 정도 떨어진 북쪽 능선에 위치한다. 산성의 형태가 반달모양과 흡사하다 하여 일명 ‘반월성(半月城)’이라 한다. 상라산성의 유형은 山腹式에 가까운 테뫼식 산성이다. 현재 상라산성은 읍동마을 뒷산의 해발 226m 정도에 부분적으로 남아 있다. 또한 산성과 관련하여 부대시설은 확인되지 않으나 동문지와 건물지 1개소 정도가 확인된다. 성축은 1m 정도이며, 자연석을 그대로 이용하였다. 규모는 높이와 폭은 각각 2m 정도이다.
    참고문헌 : 목포대학교 도서문화연구소 2000,『흑산도 상라산성 연구』.

    11. 新安 鎭里 烽燧臺ㆍ祭祀址 (신안 진리 상라산 봉수대ㆍ제사지)
    소 재 지 : 흑산면 진리 읍동마을 상라산
    시 대 : 통일신라~고려
    종 류 : 봉수ㆍ제사유적
    유적개요 : 봉수대와 제사지는 대흑산도의 가장 북쪽에 위치한 ‘상라산(226m)’ 정상부에 위치한다. 봉수대가 있는 산은 대부분 바위로 구성되어 있고, 이 산줄기에 상라산성이 자리잡고 있다. 또 봉수대 앞 능선 정상에는 상라산 전망대가 들어서 있으며, 남쪽을 제외한 나머지 삼면의 바다를 조망할 수 있다. 흑산도 봉수의 역할은 우리나라 변방에 위치하고 있는 지리적인 특징 때문에 중국이나 일본에서 입국할 때 주로 사용되는 항로의 기능을 하였다. 또한 인근 섬들 간에 긴급사항을 알리는 역할도 수행한 것으로 판단된다. 현재 봉수대의 일부는 복원되어 있으며, 규모는 직경 2m, 높이 1m 정도이다. 제사지로 추정되는 건물지의 흔적은 남아 있지 않은 것으로 보아 노천 제사 형태로 행해졌을 것으로 보인다. 기 조사에서 확인된 유물은 철마 3점, 주름무늬병, 줄무늬병편, 편병의 구연부편 등이 출토되었다.
    참고문헌 : 목포대학교 도서문화연구소 2000,『흑산도 상라산성 연구』.

    12. 新安 鎭里 金理守 墓 (신안 진리 김이수 묘)
    소 재 지 : 흑산면 진리 산38(읍동마을)
    시 대 : 조선
    종 류 : 위인선현유적
    유적현황 : 김이수 묘역은 읍동마을 남서쪽 ‘제1수원지’와 상라산 끝자락 사이에 위치한다. 김이수는 조선후기 1700년대 중ㆍ후반에 흑산면 대둔도에 살면서 닥나무 세금의 폐단을 시정하게 하였다. 이와 관련된 문헌기록이 조선왕조실록 1791(정조 15)년 5월 22일 기사에 “흑산도(黑山島) 백성이 닥나무 세금 폐단으로 인한 원통함을 징을 쳐 호소하니, 이를 시정하였다”라고 남아 있다. 묘비에는 김이수의 선조, 생몰년, 부인, 후손의 명단이 새겨져 있다. 내용을 살펴보면, 김이수는 首露王의 후예로써, 본관은 金海이다. 증조부는 金起寅, 조부는 金萬武 이며, 아버지 金坤이다. 1743년에 태어나 1805년에 세상을 떠났으며, 부인은 탐진최씨와 금성김씨이다. 비석의 앞면에는 <璿源錄 郎廳 金公之墓>라고 새겨져 있고, 비석의 측면에 후손들이 명단이 새겨져 있다.
    참고문헌 : 신자료

    13. 新安 曳里 淺村保護樹 (신안 예리 천촌보호수)
    소 재 지 : 흑산면 예리 521(천촌마을)
    시 대 : 조선
    종 류 : 노거수
    조사개요 : 천촌마을 입구에 위치한다. 수령 250년의 소나무로 나무의 높이 25m, 둘레 130cm에 이른다.
    참고문헌 :

    14. 新安 曳里 李吉斗不忘碑 (신안 예리 이길두불망비)
    소 재 지 : 흑산면 예리 천촌마을
    시 대 : 1936년
    종 류 : 비갈
    유적개요 : 천촌리 하촌 입구에 위치한 ‘최익현유허비’ 에서 도로를 따라 소사리 방면으로 향하는 길가 언덕위에 있다. 비의 전면에 ‘行敎官李吉斗施惠不忘碑’라고 새겨져 있으며, 측면에는 건립 주체(용흥1리 주민일동)가, 뒷면에는 건립년도(1936년)가 새겨져있다. 비의 내용은 ‘공이 베풀어준 恩德에 보답하기 위해 바위에 글씨를 새겨 놓는다’라고 되어 있으나, 더 이상의 상세한 내용은 나와 있지 않다. 규모는 높이 159cm, 너비 55cm, 폭 20cm이다. 한편 비리 소장도에도 ‘行敎官李公吉斗記念碑’가 있다.
    참고문헌 : 목포대학교박물관 2003,『신안군 흑산면 소사지구 지방상수도시설 사업지역내 문화재지표조사보고』.

    15. 新安 曳里 李敍珍頌德碑 (신안 예리 이서진송덕비)
    소 재 지 : 흑산면 예리 천촌마을
    시 대 : 1936년
    종 류 : 비갈
    유적개요 : 천촌리에서 소사리로 넘어가는 길목 도로변에 위치하며, 20m 정도 거리를 두고 ‘李吉斗不忘碑’가 있다. 비의 전면에 ‘行面長李敍珍頌德碑’라고 새겨져 있다. 이서진(李敍珍)은 면장으로 재직 시 연세가 많은 노인들의 역(役)을 삭감해 주는 등 선정을 베풀었다. 이에 소사리ㆍ청촌리ㆍ용흥리 주민 일동이 공적을 기리기 위해 1936년(昭和 11)에 건립한 비이다. 비의 규모는 높이 146cm, 너비 51cm, 폭19.5cm이다.
    참고문헌 : 목포대학교박물관 2003,『신안군 흑산면 소사지구 지방상수도시설 사업지역내 문화재지표조사보고』.

    16. 勉庵 崔益鉉 遺蹟地 (면암 최익현 유적지)
    소 재 지 : 흑산면 예리 521(천촌마을)
    시 대 : 1951년
    종 류 : 위인선현유적
    유적개요 : 천촌마을 하촌 입구 최익현 유적지에는 바위글씨와 유허비 1기가 있다. 면암 최익현(1833~1906)은 1876년 ‘조일수호조규(朝日修好條規)’(강화도조약) 체결을 반대하는 ‘병자지부소(丙子持斧疏)’로 인해 흑산도에 유배되었다. 유배된 면암 선생은 진리에 일신당(日新堂)이란 서당을 세워 후학을 양성하였고, 천촌마을 지장암(指掌岩)에 ‘기봉강산 홍무일월(箕封江山 洪武日月)’이란 글씨를 새기기도 하였다. 유허비는 선생의 애국정신과 후학양성의 뜻을 기리고자 면암의 문하생이었던 오준선(吳駿善), 임동선(任東善) 등이 1924년 9월 지장암 아래에 세웠으나, 현전하지 않고, 현재의 비는 1951년에 세운 것이다. 전면에 ‘勉庵崔先生謫廬遺墟碑’(높이 130cm, 너비 49cm, 폭 22cm)라 새겨져 있고, 후면에 26행 40자의 비문이 있다.
    참고문헌 : 목포대학교박물관 2003,『신안군 흑산면 소사지구 지방상수도시설 사업지역내 문화재지표조사보고』.

    17. 新安 曳里 淺村祭堂 (신안 예리 천촌제당)
    소 재 지 : 흑산면 예리 천촌마을
    시 대 : 미상
    종 류 : 민속유적
    유적현황 : 천촌마을에서는 매년 정월 초하루 자시에 당제를 지냈다. 지장암 뒤편 야산 중턱에 자리 잡은 당집은 높이 80cm의 돌담으로 둘러 싸여 있는 기와집이다. 처음에는 마을 호수대로 띠짚을 가지고 와서 생기 좋은 날에 지붕을 이어 당집을 조성했으나, 1919년에 기와집으로 지은 것이다. 당집에는 ‘당할아버지’와 ‘할머니’를 모시며, 당집에서 10m 거리에 있는 바위동굴에서는 ‘산신’을 모신다. 상당(당집)에서 제를 지낸 후 새벽에 내려와 하당제와 장승제를 지내는데, 하당은 두 그루의 동백나무이며, 장승제는 3년마다 만드는 목장승이나 장승은 유실되었다. 현재는 제의가 행해지지 않으며, 이러한 이유로 관리가 되지 않아서인지 당집 건물이 많이 훼손되었다.
    참고문헌 : 목포대학교 도서문화연구소 2003,『도서 문화유적 지표조사 및 자원화 연구3 -흑산면 편-』.

    18. 新安 曳里 少沙里祭堂 (신안 예리 소사리제당)
    소 재 지 : 흑산면 예리 소사리마을
    시 대 : 미상
    종 류 : 민속유적
    유적현황 : 소사리마을에서는 매년 음력 정월 1일 자시에 당제가 행해진다. 마을에 있는 산에 신당이 있는데, 폐사터에 당신을 모시게 된 이야기가 전하며, 주민들의 합의에 의해 丙子年(1966) 정월 14일에 당집을 지었다고 한다. 당집은 높이 65cm의 돌담으로 둘러 싸여 있으며, ‘당할아버지’와 ‘당할머니’가 모셔져 있다. 제의순서는 축원하고, 마을 호수대로 소지를 올리는 등 간소하다. 제가 끝나면 마을사람들끼리 음식을 나누어 먹고, 마을회의를 열어 한해의 마을 계획을 세운다. 당제는 1990년대부터 지내지 않고 있다.
    참고문헌 : 목포대학교 도서문화연구소 2003,『도서 문화유적 지표조사 및 자원화 연구3 -흑산면 편-』.

    19. 新安 曳里 竹項貝塚 (신안 예리 죽항패총)
    소 재 지 : 흑산면 예리 죽항마을
    시 대 : 신석기
    종 류 : 패총
    유적개요 : 패총은 대흑산도 중심부와 그 동북쪽의 대봉산(120m)을 연결하는 접합부분의 북쪽 경사면에 위치한다. 이 패총은 1954년에 처음 발견되어 골제품과 토기편이 출토되었다. 1967년에는 서울대 동아문화연구소에서 남해도서지역조사의 일환으로 일부 시굴을 통해 토기류와 석기류 등을 확인하였다. 1987년 조사에서는 유적 주변으로 건물이 들어서고 패총이 자리하던 소로는 시멘트로 포장되면서 파괴되어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그러나 당시 조사에서 토기편, 토제어망추, 타제석부 등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 후 2000년, 2002년, 2005년, 2007년에도 조사를 실시하였으나 신축건물과 포장도로로 인하여 패총의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그러나 주변 민가나 텃밭 주변에서도 패각과 석재들이 확인되고 있어 보다 넓은 범위에 패총이 분포할 가능성이 높다.
    참고문헌 : 木浦大學校博物館 1987,『新安郡의 文化遺蹟』.

    20. 新安 比里 比里祭堂 (신안 비리 비리제당)
    소 재 지 : 흑산면 비리 비리마을
    시 대 : 미상
    종 류 : 민속유적
    유적개요 : 비리마을에서는 매년 정월 초하루부터 초사흘까지 3일간 ‘당제’를 지낸다. 제장인 당산은 마을 북쪽 산중턱에 있는데, 주민들은 제를 지내는 곳을 ‘상당’, 제주가 거주하는 곳을 ‘하당’이라 부르고 있다. ‘상당’, ‘하당’ 모두 단칸 맞배지붕 집이다. 당신(堂神)은 ‘堂영감’과 ‘할머니’ 부부이다. 상당 내에는 당신의 화상이 있고, 한지로 만든 지전(紙錢)이 걸려있다. ‘당거리’라고 불리우는 이 지전이 당신의 신체이다. 제는 설상ㆍ재배ㆍ구축ㆍ소지ㆍ헌식의 순으로 이루어진다. 제가 끝나면 제관은 촛불을 흔들어 마을에 제가 끝났음을 알리고, 마을 주민들은 농악대와 함께 굿을 올리며 당에 올라가 제관들을 데리고 마을로 내려와 제물을 먹으면서 굿을 치고 즐긴다.
    참고문헌 : 목포대학교 도서문화연구소 2003,『도서 문화유적 지표조사 및 자원화 연구3 -흑산면 편-』.

    21. 新安 比里 李敍珍記念碑 (신안 비리 이서진기념비)
    소 재 지 : 흑산면 비리 마리마을
    시 대 : 1936년
    종 류 : 비갈
    유적현황 : 마리마을로 들어가는 비의 전면에 ‘面長李敍珍氏記念碑’라고 새겨져 있다. 이서진(李敍珍)은 면장으로 재직 시 연세가 많은 노인들의 역(役)을 삭감해 주는 등 선정을 베풀었다. 이에 소사리ㆍ청촌리ㆍ용흥리 주민 일동이 공적을 기리기 위해 1936년(昭和 11년)에 건립한 비이다. 비의 규모는 높이 146cm, 너비 51cm, 폭19.5cm이다.
    참고문헌 : 신자료

    22. 新安 比里 馬里祭堂 (신안 비리 마리제당)
    소 재 지 : 흑산면 비리 마리마을
    시 대 : 미상
    종 류 : 민속유적
    유적현황 : 마리마을에서는 마을의 안녕과 평안, 풍요를 기원하는 ‘당제’ 또는 ‘산제’를 매년 음력 정월 초사흘에 거행한다. 당은 원래 마을 북쪽 산에 있는 바위였으나, 마을 남쪽의 산중턱에 새로 당집을 지어 옮겨왔다. 당은 본당(本堂)과 화당(火堂)으로 구분된다. 본당은 신체인 한지(韓紙)가 걸린 곳으로써 상당과 하당으로 나뉜다. 상당(上堂)과 하당(下堂)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니고, 한지가 3개 걸린 좌측이 상당, 2개 걸린 우측이 하당으로, 상당에서는 산신(山神)에게 ‘산제(山祭)’를, 하당에서는 이보다 격이 낮은 것으로 인식되는 당신(堂神)에게 제사를 지낸다. 화당(火堂)은 제물을 준비하는 곳이다. 제는 초사흘 자정부터 새벽 4~5시까지 지내며 설상ㆍ구축ㆍ재배ㆍ소지ㆍ사신의 순으로 진행된다. 제가 끝나면 제주는 불을 피워 주민들에게 알리고 마을주민들은 농악을 앞세우고 당으로 올라와 제주를 데리고 마을로 내려온 다음 마을 축제를 벌인다. 한편 마리마을에서는 해산물의 풍요를 기원하는 ‘둑제’ 또한 성대하게 거행되었으나, 현재는 지내지 않는다.
    참고문헌 : 목포대학교박물관 2003, 『신안군 흑산면 소사지구 지방상수도시설 사업지역내 문화유적지표조사보고』.

    23. 新安 比里 長島祭堂 (신안 비리 장도제당)
    소 재 지 : 흑산면 비리 장도
    시 대 : 미상
    종 류 : 민속유적
    유적현황 : 장도마을에서는 매년 설에 당제를 지냈었는데, 발전소 바로 위에 당집이 있다. 마을 사람들의 전언에 따르면 장도는 바람이 많이 불어 나무가 자라지 않는데 당집이 있는 자리만 나무가 자라 영험하게 여긴다고 한다. 당집은 제를 지내는 ‘상당’과 제기실로 쓰이는 ‘중당’으로 이루어져있다. 당제는 음식장만이 용이한 설에 한번 지낸다. 제주는 덕망이 있고 깨끗한 사람이 선발되면 이틀정도 당제 준비를 하고 3일 동안 당집에서 기거하면서 당제를 지낸다. 음식은 바다고기와 더덕 등을 올린다. 상당에서 제를 마치고 음식을 가지고 내려와 바다에 조금 던진 후 마을사람들이 함께 나누어먹는데 그날은 마을 잔치하는 날이라고 한다. 당집이 예전에는 초가로 되어 있었지만 6년 전에 다시 건립하였다. 그러나 현재는 기독교신자가 많아지면서 제를 지내지 않게 되었다고 한다.
    참고문헌 : 신자료

    24. 新安 比里 長島濕地 (신안 장도리 장도습지)
    소 재 지 : 흑산면 비리 장도 일원 90.414㎡
    시 대 : 미상
    종 류 : 천연보호구역
    유적현황 : 장도는 흑산면 장도리에 딸린 섬으로, 大長島와 小長島로 이루어져 있다. 습지는 대장도에 있으며, 면적은 9만 414㎡이다. 이 습지는 소규모 도서 지역으로서는 드물게 이탄층이 발달하여 수자원 보존과 수질 정화 기능이 뛰어나다. 멸종위기종 1급인 수달과 매, 멸종위기종 2급인 솔개와 조롱이, 제주 도롱뇽 등이 서식한다. 습지에 서식하는 야생동물의 종류로는 포유류 7종을 비롯하여 조류 44종, 양서류·파충류 8종, 육상곤충 126종이 있다. 식물로는 춘란이라고도 하는 보춘화 등 습지식물 294종이 서식하고, 후박나무 등의 식물군락 26개가 있다. 이처럼 자연생태적 보전 가치가 뛰어나 2004년 환경부에서 습지보전법에 따라 습지보호지역으로 지정하였다. 이어 우리나라에서 3번째이며, 세계에서 1423번째로 국제습지조약에 따른 습지보호구역, 이른바 람사조약습지로 등록되었다.
    참고문헌 :

    25. 新安 比里 李吉斗記念碑 (신안 비리 이길두기념비)
    소 재 지 : 흑산면 비리 소장도
    시 대 : 1930년대
    종 류 : 비갈
    유적현황 : 소장도에는 집이 한 채 있는데 현재는 폐가로 남아있다. 비는 폐가 아래 바위위에 위치하고 있다. 바위는 바로 바다와 맞닿아있다. 이 비는 이길두를 기념하기 위해 세운 것으로, 건립연대는 확인할 수 없다. 다만 흑산면 예리 천촌마을에 세워진 ‘이길두불망비’의 이길두와 동일인물인 것으로 보인다. 비석의 전면에는 ‘行校官李公吉斗記念碑’라 새겨져 있고, 공의 행적에 대해서 4언 절구로 새겨져 있다. 규모는 높이 150㎝, 너비 51㎝, 두께 20㎝이다.
    참고문헌 : 신자료

    26. 新安 深里 深里保護樹 (신안 심리 심리보호수)
    소 재 지 : 흑산면 심리 298(심리마을)
    시 대 : 조선
    종 류 : 노거수ㆍ민속유적
    유적현황 : 마을 가운데 있는 언덕위에 심리제당과 10m 거리를 두고 위치한다. 수령 205년의 후박나무로 둘레 11m, 높이는 30m에 이른다. 이 후박나무는 심리 마을에서 매년 정월 초사흘에 거행되는 당제의 신체(당할머니)이기도 하다.
    참고문헌 :

    27. 新安 深里 朴奉化紀念碑 (신안 심리 박봉화기념비)
    소 재 지 : 흑산면 심리 심리마을
    시 대 : 1936년
    종 류 : 비갈
    유적현황 : 심리마을어귀(사리마을에서 심리마을로 가는 길)에 있다. 전면에 ‘前都事朴奉化永世紀念碑’라고 명문되어 있으며, 여백에 ‘약한 자를 구제하고, 가난한 사람에게 덕을 베풀었다’라는 행적이 4언 절구로 새겨져 있다. 건립연대는 1936년(昭和11년)이며, 비의 규모는 높이 145cm, 너비 51cm, 폭20cm이다. 또한 흑산면 사리 사리마을에도 같은 해에 세워진 ‘朴奉和記念碑(1937년)’가 있다.
    참고문헌 : 신자료

    28. 新安 深里 深里祭堂 (신안 심리 심리제당)
    소 재 지 : 흑산면 심리 심리마을
    시 대 : 미상
    종 류 : 민속유적
    유적현황 : 심리마을에서는 매년 정월 초사흘에 당제를 모신다. 상당은 마을 가운데 있는 언덕위에 보호수로 지정되어 있는 후박나무와 10m 간격을 두고 위치한다. 현재 시멘트 담장이 둘러져 있고, 내부에 제단이 있었던 흔적이 남아있다. 상당에서는 ‘당할아버지’를 모시고, 상당과 10m 정도 떨어진 하당은 ‘당할머니’(심리보호수)를 모시고 있다. 제가 끝난 정초에 박으로 된 활방구와 물방구를 치는 ‘둥당기타령’과 뜀뛰기 놀이를 하며 온 마을이 축제를 벌인다. 한편 심리마을에서는 바닷가에서 해산물의 풍요를 기원하는 ‘둑제’를 지냈으나, 1970년대에 당제와 함께 중단되었다.
    참고문헌 : 목포대학교 도서문화연구소 2003,『도서 문화유적 지표조사 및 자원화 연구3 -흑산면 편-』.

    29. 新安 沙里 朴奉和記念碑 (신안 사리 박봉화기념비)
    소 재 지 : 흑산면 사리 사리마을
    시 대 : 1936년
    종 류 : 비갈
    유적개요 : 사리마을 흑산초등학교 서분교 동남쪽 담장 아래에 있다. 전면에 ‘行都事朴奉和施惠記念碑’라고 명문되어 있고, 여백에 ‘약한 자를 구제하고, 가난한 사람에게 덕을 베풀었다’라는 행적이 4언 절구로 새겨져 있다. 이러한 은덕을 기리기 위해 1936년에 건립된 비이다. 또한 흑산면 심리 심리마을에도 같은 해에 세워진 ‘朴奉化紀念碑’가 있다.
    참고문헌 : 목포대학교박물관 2003,『신안군 흑산면 소사지구 지방상수도시설 사업지역내 문화재지표조사보고』.

    30. 新安 沙里 慶州李氏孝烈閣 (신안 사리 경주이씨효열각)
    소 재 지 : 흑산면 사리 사리마을
    시 대 : 1942년
    종 류 : 유교건축
    유적개요 : 사리에서 심리로 넘어가는 길목 도로변 좌측에 위치한다. 정면 1칸 측면 1칸의 석조 건물 안에 ‘慶州李氏孝烈紀行碑’(높이 128cm, 너비 46cm, 폭 17cm)가 있다. 경주 이씨 부인은 남편과 사별한 후에도, 아이와 연로하신 시아버님을 모시고 살았다. 이러한 부인의 효열을 기리기 위해 1942년에 건립된 것으로, 비각 주변은 돌담이 둘러져 있다.
    참고문헌 : 목포대학교박물관 2003,『신안군 흑산면 소사지구 지방상수도시설 사업지역내 문화재지표조사보고』.

    31. 新安 沙里 漢陽趙氏紀蹟碑 (신안 사리 한양조씨기행비)
    소 재 지 : 흑산면 사리 사리마을
    시 대 : 1944년
    종 류 : 비갈
    유적현황 : 비는 사리마을 ‘흑산초교서분교’와 마을 사이에 위치한다. 전면에 ‘節婦漢陽趙氏紀蹟碑’라고 명문되어 있으며, 뒷면에 조씨부인의 행적이 적혀있다. 한양조씨는 박한수(朴漢守)의 처로, 남편이 죽은 후에도 절의를 지키며 가정을 돌보았다. 이를 기념하기 위해 1944년에 세운 비이다. 비는 좌대와 이수를 갖추고 있으며 현재 주변에 잡목과 수풀이 우거져 있다.
    참고문헌 : 신자료

    32. 사촌서당(복성재) (沙村書堂(復性齋))
    소 재 지 : 흑산면 사리 213ㆍ214
    시 대 : 1998년 복원
    종 류 : 유교건축
    유적개요: 마을의 동남쪽 천주교회 뒤편에 자리하며, 손암 정약전(巽庵 丁若銓, 1758~1816)이 흑산도 유배 시 머물던 곳이다. 1998년 복원되었으며, 목조초가 서당, 사랑채, 부속사, 사주문등의 건물이 있다. 이곳에서 정약전은 학문을 가르치는 등 후학을 양성하였고, 흑산도와 우이도에 15년간 머물면서 『자산어보(玆山魚譜)』, 『표해시말(漂海始末)』등의 저술을 남기고, 1816년 우이도에서 세상을 떠났다.
    참고문헌 : 목포대학교박물관 2003,『신안군 흑산면 소사지구 지방상수도시설 사업지역내 문화재지표조사보고』.

    33. 新安 沙里 船柱木 (신안 사리 선주목)
    소 재 지 : 흑산면 사리 사리마을
    시 대 : 미상
    종 류 : 생활유적
    유적개요 : 마을 진입로에서 직진하여 마을 중앙으로 들어서면 박도순씨 집 대문 옆에 선주목이 서 있다. 줄을 멜 수 있도록 다듬어진 돌로, 규모는 높이 127cm, 둘레 92cm이다. 주민들의 말에 따르면 현재 선주목이 서 있는 곳까지 바닷물이 들어왔었고, 예로부터 마을 주민들은 바다에서 돌아오면 반드시 이 바위에 배를 정박해 놓았다고 하여 ‘船柱木’이라 부른다고 한다. 현재는 사리마을의 포구 주변이 매립되면서 마을의 중앙에 위치하고 있다.
    참고문헌 : 목포대학교박물관 2003,『신안군 흑산면 소사지구 지방상수도시설 사업지역내 문화재지표조사보고』.

    34. 黑山島 沙里마을 옛 담장 (흑산도 사리마을 옛 담장)
    소 재 지 : 흑산면 사리 13외(사리마을 일원)
    시 대 : 미상
    종 류 : 생활유적
    유적현황 : 사리마을의 담장(약 4000m)은 가옥의 담장과 밭 경계에 있는 담장으로 구분된다. 후자의 담장은 가옥이 철거되면서 담장만 남은 옛 가옥의 담장으로 이 경우는 대체로 그 높이가 낮다. 새마을 운동 당시 부분적으로 이축이 있었지만 전체적으로 축조당시의 원형이 잘 보존되어 있다. 돌담은 밑이 넓고 위가 좁은 형태로 안정감이 있다. 즉, 담을 쌓으면서 안팎의 담벼락을 약간씩 퇴 물려 쌓은 것으로, 마치 작은 성처럼 견고한 느낌을 준다. 돌을 쌓으면서 작은 호박돌과 길고 평평한 돌을 교차시켜 쌓아 올려 구조적으로 안정감이 있다. 바람이 많은 도서지방의 환경에 맞게 강담구조로 견고하고 높게 축조되어 있으며, 담쟁이넝쿨, 능소화, 호박넝쿨 등 넝쿨성 식물로 덮여 있어 옛 정취를 자아내고 있다.
    참고문헌 :

    35. 新安 永山里 永山祭堂 (신안 영산리 영산제당)
    소 재 지 : 흑산면 영산리 영산마을
    시 대 : 미상
    종 류 : 민속유적
    유적현황 : 영산마을에는 매년 정월 초하루에 지내던 ‘당제’가 지금은 거행되지 않지만, 당집이 남아있다. 선착장에서 영산마을로 가는 길을 따라가면 ‘永山祭堂復元記念碑’가 있으며 그 뒤로 당집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있다. 계단 바로 위에 신위를 모신 ‘하당’이 있으며, 산 중턱까지 올라가면 ‘상당’ 당집과 ‘중당’인 제기실이 있다. ‘상당’에는 ‘당할아버지’, ‘당할머니’, ‘별방도련님’, ‘소조아기씨님’, ‘산신님’을 모시고 하당에는 ‘김첨지영감’의 신체를 허수아비로 만들어 용왕 또는 어장신으로 모신다. 특히 ‘상당’ 내부에는 ‘소조아기씨님’의 초상화가 놓여있는데 진리당에서 모셔왔다고 전한다. 당을 지내지 않은지는 3년 정도 되었지만 이번조사에서 ‘상당’ 내에 모셔진 5명의 신위 앞에 지폐와 사탕 등 제물이 놓여있어 현재도 개인적인 소원 등을 빌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지금의 당집은 98년도에 새로 건축하였으며 이를 기념하는 기념비가 마을 입구에 세워져 있다.
    참고문헌 : 목포대학교 도서문화연구소 2003,『도서 문화유적 지표조사 및 자원화 연구3 -흑산면 편-』.

    36. 新安 梧里 梧里祭堂 (신안 오리 오리제당)
    소 재 지 : 흑산면 오리 오리마을
    시 대 : 미상
    종 류 : 민속유적
    유적현황 : 오리마을에서는 매년 음력 섣달 그믐날부터 당제를 준비하여 정월 초하루날 새벽에 제의를 지냈다. 제의는 마을 동쪽 해안가 기슭에 위치한 당집에서 진행하였다. 제의순서는 구축으로 축원하여 마을 호수대로 소지를 올렸다고 한다. 음식은 산나물과 떡등을 장만하고 경비는 마을공동회비에서 충당하였다. 현재 당제는 1970년대 초반부터 제의를 지내지 않고 있으며, 당집 또한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아 허물어져 있다.
    참고문헌 : 木浦大學校博物館 1987,『新安郡의 文化遺蹟』.

    37. 新安 水里 金理守生家 (신안 수리 김이수생가)
    소 재 지 : 흑산면 수리 수리마을
    시 대 : 미상
    종 류 : 탄생지
    유적개요 : 김이수생가는 수리마을 내에 위치하고 있다. 현재 생가의 일부는 개보수를 하여 원형이 남아있지 않다. 김이수는 조선후기 1700년대 중ㆍ후반에 흑산면 대둔도에 살면서 닥나무 세금의 폐단을 시정하게 하였다. 이와 관련된 문헌기록이 조선왕조실록 1791(정조 15)년 5월 22일 기사에 “흑산도(黑山島) 백성이 닥나무 세금 폐단으로 인한 원통함을 징을 쳐 호소하니, 이를 시정하였다”라고 남아 있다.
    참고문헌 : 신자료
    38. 新安 水里 水里祭堂 (신안 수리 수리제당)
    소 재 지 : 흑산면 수리 수리마을
    시 대 : 미상
    종 류 : 민속유적
    유적현황 : 수리마을에서는 매년 음력 섣달 그믐날부터 당제를 준비하여 정월 초사흘날 새벽에 제의를 지냈다. 제의는 마을로부터 50m 정도 떨어진 야산(40m)에 위치한 당집에서 상당제를 지내고 마을로 내려와 하당제, 둑제 순으로 진행하였다고 한다. 당제를 진행하는 사람은 마을회의에서 생기복덕한 남자 2명을 선출하여 당집에서 음식을 장만하고 제의를 모셨다. 또한 마을에는 무당이 상주하고 있어 당제를 주도하고 마을의 평안과 풍요 등을 기원하였다. 현재 당제는 1970년대부터 제의를 지내지 않고 있다.
    참고문헌 : 木浦大學校博物館 1987,『新安郡의 文化遺蹟』.

    39. 新安 多物島里 金柄寅施惠不忘碑 (신안 다물도리 김병인시혜불망비)
    소 재 지 : 흑산면 다물도리 다촌마을
    시 대 : 1939년
    종 류 : 비갈
    유적현황 : 다촌교회 아래에 위치하고 있다. 김병인은 성품이 강직하고 덕이 있었으며, 돈과 곡식으로 가난한 사람들을 도와주었다. 이에 마을에서 1939년(소화14년)에 세운 것이다. 비의 전면에는 ‘前嘉善大夫金公炳寅施惠不忘碑’라고 새겨져 있고, 공의 행적에 대해서 4언 절구로 새겨져 있다. 규모는 높이 126㎝, 너비 43㎝, 두께 16㎝이다.
    참고문헌 : 신자료

    40. 新安 多物島里 多物祭堂 (신안 다물도리 다물제당)
    소 재 지 : 흑산면 다물도리 다촌마을
    시 대 : 미상
    종 류 : 민속유적
    유적현황 : 다촌마을 서남쪽 산중턱에 당집이 있으며 주민들은 이곳을 당산이라고 부른다. 당집은 1채로 정면 3칸, 측면 1칸이다. 모시는 신은 당할아버지, 당할머니이다. 당제는 제주 4명을 선발하여 2~3일 동안 당집에 머무르며 지냈다고 한다. 음식은 산채와 해물 등을 올렸다. 제주가 제를 지내고 내려와 허수아비를 만들어 바다에 띄우면 당제가 끝난다. 당제를 지낸 후 바로 길맞이 행사를 하는데 5~6명의 당골네들이 하루 종일 굿을 했다고 한다. 당집이 원래는 초가였으나 100년 전 기와지붕으로 개축하였다고 한다. 당제는 1960년대부터 중단되어 제일이나 제사과정을 자세히 기억하는 사람이 없다.
    참고문헌 : 신자료

    41. 紅島 天然保護區域 (홍도 천연보호구역)
    소 재 지 : 흑산면 홍도리
    시 대 : 미상
    종 류 : 천연보호구역
    유적현황 : 홍도(紅島)는 규암과 사암으로 이루어진 섬으로 해질 무렵 멀리서 바라보면 섬 전체가 붉게 타오르는 것처럼 보인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홍도는 거부바위, 독립문바위, 종바위, 탑바위, 공작새바위, 병풍바위, 기둥바위, 남문바위, 사자바위 등이 절경을 이루고 있고, 귀중한 동ㆍ식물들이 많이 살고 있어 천연보호지역으로 지정되었다. 홍도에는 남북계 식물 545종류가 섞여서 자생하고 있다. 그 중에서 표고 100m이상의 산사면과 산등성의 숲속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홍도서덜취’와 ‘홍도까치수염’은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는 희귀식물이다. 설풍서곡(雪風嶼谷)에서는 식나무와 흰동백, 나도풍란이 자라고 있다. 홍도에서 살아가는 동물로는 2개의 다리를 가진 것이 4종, 여러 개의 다리를 가진 것 2종, 곤충류 165종, 파충류 4종, 조류 54종, 포유류 1종 등 총 234종이 알려져 있다.
    참고문헌 : 신안군 2005,『우리고장의 향토문화유적』.

    42. 新安 紅島里 金永春紀念碑 (신안 홍도리 김영춘기념비)
    소 재 지 : 흑산면 홍도리 죽항마을
    시 대 : 1952년
    종 류 : 비갈
    유적현황 : 죽항마을 홍도우체국 아래, 국립공원 철새연구센터 맞은편 길에 위치하고 있다. 비의 전면 중앙에 ‘前務安郡守金公永春功績紀念碑’라 새겨져 있고, 좌우에 4언 절구의 공적내용이 새겨져 있다. 김영춘(金永春)은 농토가 3.7半步에 불과했던 홍도 주민들에게 벌목을 허가해주고 주민들이 나무를 내다팔아 생계를 있도록 도와준 인물로 알려져 있다. 비의 뒷면에는 ‘檀紀四二八五年壬辰五月’(서기 1952년)에 홍도리 주민 일동이 세웠다고 적고 있다. 비석은 하단 기대석과 몸돌, 갓석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몸돌과 갓석이 재질이 다름을 한눈에 알 수 있다. 이 중 몸돌의 규격은 높이 132cm, 너비 45cm, 폭 13cm이고, 하단 기대석은 가로 66㎝, 세로 34㎝, 높이 19㎝이다.
    참고문헌 : 신자료

    43. 新安 紅島里 숯가마 (신안 홍도리 숯가마)
    소 재 지 : 흑산면 홍도리 깃대봉 부근
    시 대 : 미상
    종 류 : 요업
    유적현황 : 홍도는 일제강점기 하에 숯을 구워 공출했던 섬으로 알려져 있다. 주민의 기억에 따르면, 홍도의 깃대봉(352.2m) 아래 설풍리(雪風里) 쪽으로 4~5기의 숯굴이 있었고, 내연발전소 위쪽에 있는 ‘웇골’에 견산(見山)의 숯굴이 10여기 있었다고 한다. 현재 가장 잘 남아있는 숯가마가 깃대봉 해발 320m 부근, 죽항에서 석촌으로 이어지는 길가에 남아있다. 주민들은 이 숯가마를 ‘정숙숯굴’이라고 말한다. 일제하 1925~1935년 사이에 정숙이라는 사람이 숯을 구워 공출했던 유명한 원형 가마이다. ‘정숙숯굴’은 2구 석촌 주민들이 노역을 했던 가마이고, 견산의 숯굴은 1구 죽항 주민들이 노역을 했던 가마로 알려진다. 이들 숯굴이 있는 곳은 도토리나무 등 낙엽활엽수에 속하는 참나무가 많이 자생하여 숯을 굽기에 적합한 자연조건을 갖고 있다. 현재 남아있는 ‘정숙숯굴’은 직경 300~330cm 크기로 높이 80cm 정도의 가마벽을 자연석과 흙을 섞어 원형으로 쌓아올렸다. 전면에는 아궁이가 뚫려 있고 반대쪽에 굴뚝 역할을 했음직한 구멍이 보인다. 원형의 숯가마는 다시 주위의 외벽으로 둘러싸여 있다. 외벽시설로 왼편에 돌담을 쌓고, 오른편에 흙두둑을 조성하여 가마 내 불길이 밖으로 새어나가 산불이 발생하는 것을 막고 있다. 숯은 가마 내에 참나무를 쌓고 아궁이에 불을 지펴 태우다가 장작이 어느 정도 타면, 가마 상단부를 흙을 덮어 불길을 잡는다. 흙을 덮고 3~4일 기다리면 장작에 열이 식고 보통 일주일이 지나면 숯을 가마에서 꺼낼 수 있었다. 이런 방식으로 홍도에서는 1940년까지 숯을 구어 공출해갔으나 그 뒤 폐쇄되었다고 한다.
    참고문헌 : 신자료

    44. 新安 紅島里 竹項祭堂 (신안 홍도리 죽항제당)
    소 재 지 : 흑산면 홍도리 죽항마을
    시 대 : 미상
    종 류 : 민속유적
    유적현황 : 죽항마을에는 매년 정월 초사흘이 되면 마을공동체의 안녕과 평안을 기원하던 제당이 남아있다. 제당터는 ‘당산숲’을 이루고 있는데, 그 숲속을 들어가면 길이 10m, 너비 4m20㎝의 장방형에 높이 1m, 너비 1m 가량의 돌담이 둘러져 있다. 구전에 의하면, 죽항제당은 150년 이전에 조성되었다가 1847년(헌종 13) 감찰 벼슬을 한 김씨에 의해 와가로 건립되었다고 한다. 이때 건립된 당집은 높이 약 90㎝의 축대에 의하여 상당과 하당으로 구분되어 있었다. 그러나 1972년 제관의 집에 우환이 들어 당제가 중지되고 1975년 관리부족으로 당집이 허물어진 채 유지되어오다가 문화재청이 2003년 당터를 복원하고 2005년 2채의 당집을 복원하고 있는 중이다. 당산숲은 3백여년이 된 동백나무가 대부분 군락을 이루고 있으며 이밖에도 구실잣밤나무와 후박나무, 황칠나무도 상당수 자생하고 있다. 이 마을의 당신은 ‘산신’과 ‘당할아버지’로 인식되고 있다. 매년 초사흘 자시에 위쪽에 있는 동백나무 신목 밑에 ‘산신제’를 올리고, 바로 밑에 있는 잣밤나무 신목 밑에 ‘당할아버지’를 위한 제를 올린다. 당제가 끝나면, 다음날 낮에 선창에서 풍어를 기원하는 ‘둑제’를 지내고 홍도의 수호신인 ‘거북바위’가 있는 곳으로 가서 ‘용왕허수아비’를 띄워 재액을 물리치는 의례를 행하였다.
    참고문헌 : 목포대학교 도서문화연구소 2003,『도서 문화유적 지표조사 및 자원화 연구3 -흑산면 편-』.

    45. 新安 紅島里 竹項彌勒 (신안 홍도리 죽항미륵)
    소 재 지 : 흑산면 홍도리 죽항마을
    시 대 : 미상
    종 류 : 민속유적
    유적현황 : 미륵은 홍도1리(죽항마을)의 흑산초등학교 홍도분교장 정문에서 깃대봉으로 난 산길을 오르다보면 오른편에 있다. 높이 42cm, 둘레 85cm 크기의 이 미륵은 달걀모양의 타원형이다. 본래 이곳에 2기의 미륵이 병렬로 세워져 있었고, 이들 미륵은 한 쌍으로 여겨져 이중 1기는 ‘남자미륵’, 다른 1기는 ‘여자미륵’으로 불렸다. 본래 남자미륵은 깨끗하고 문양이 없는 차돌이었으나 4~5년 전 유실되었고 그 자리에 높이 64㎝, 폭 17㎝의 자연석이 대신 세워져 있으며, 달걀모양을 한 ‘여자미륵’은 예전 그 돌이 제 자리를 지키고 있다. 주민들에 의하면, 고기잡이 그물에 자꾸 걸려든 돌을 전망이 좋은 이곳에 모셔놓았다는 얘기가 있으며, 봄부터 가을까지 고기잡이를 하던 전국의 중선, 안강망 선주들이 풍어를 빌던 장소, 개인이 어떤 바람을 기원하던 장소, 가끔 무속인이 찾아와 기도를 올리던 장소로 알려져 있다. 미륵이 서있는 곳은 지금도 홍도1리(죽항)와 홍도2리(석촌)을 잇는 산길로 이곳을 오가는 주민들이 개인구복을 위해 쌓아놓은 잡석들이 ‘미륵’ 주위로 성황당을 이루고 있다.
    참고문헌 : 신자료

    46. 新安 紅島里 紅島燈臺 (신안 홍도리 홍도등대)
    소 재 지 : 흑산면 홍도리 산5-2(석촌마을)
    시 대 : 1931년
    종 류 : 교통통신유적
    유적현황 : 홍도등대는 목포항과 서해안의 남북항로를 오가는 선박들이 주로 이용하는 연안등대이다. 1931년 2월에 일본이 대륙침략에 참여하는 자국 함대의 안전을 위하여 ‘조선총독부 체신국 홍도등대’로 처음 신설하였다. 이곳에 1931년 홍도등대가 신설된 당시 건립된 건물인 사각형 콘크리트 등탑 1동(13m)이 잘 남아있는데, 전체높이 14.3m, 건물기초 36.2㎡, 1층 넓이 32.73㎡, 2층 넓이 32.08㎡로 오각형 모양을 한 건물이다. 이 등탑은 등대를 밝히기 위한 공간과 사무공간이 함께 배치된 복합건축물로 외관의 조형미가 뛰어나고 원형이 잘 보존되어 있어 역사적 가치가 높은 건축물이다. 현재 1층 사무공간은 사무실 신축으로 비어있으나 등탑은 여전히 사용되고 있다. 한편 등탑 건물 옆에는 직사각형 비석형태의 ‘初點燈記念碑’(높이 61cm, 폭 64cm, 두께 12.5cm, 1931년 건립) 1기와 ‘霧鐘’(길이 75cm, 종의 둘레 120㎝) 1기가 남아있다. 기념비는 전면 상단에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初點燈記念碑’라는 글씨와 하단에 한문과 일본어가 섞인 찬양시가 새겨져 있다. 뒷면에는 ‘昭和六年二月□一日’이라는 연대(1931년)와 건립에 참여한 ‘角田建三’과 ‘久保田茂富’의 일본인 이름이 새겨져 있다. 霧鐘은 안개가 심할 때 종을 쳐 등대의 위치를 알렸던 도구이나 지금은 에어싸이렌이 그 기능을 대신하면서 기능이 상실된 채 걸려 있다. 무종의 외면에는 ‘항로표시공장근제’라는 글씨가 선명하고 범종처럼 유두가 상하로 4~5개씩 배열되어 있음을 볼 수 있다. 홍도등대는 1996년 8월부터 ‘목포지방해양수산청 홍도항로표지관리소’에 속한 등대로 20초에 3번 반짝이는 등대불빛(광달거리 44㎞)과 안개가 심해 시계가 불량할 때는 에어싸이렌(음달거리 5.5㎞)을 울려 선박에게 등대의 위치를 알려주고 있다.
    참고문헌 : 신자료

    47. 新安 紅島里 朴賢植紀念碑 (신안 홍도리 박현식기념비)
    소 재 지 : 흑산면 홍도리 석촌마을
    시 대 : 1940년
    종 류 : 비갈
    유적현황 : 홍도2리(석촌마을) 흑산초등학교 신흥분교 정문에 위치한다. 전면에 ‘朴公賢植勸學紀念碑’라고 새겨져 있고, 그의 공적을 칭송하는 내용이 새겨져 있다. 비의 뒷면에는 정내언(鄭乃彦) 외 8명의 건립참여자 명단과 ‘庚辰六月 日’이라는 건립연대가 새겨져 있다. 이 비석은 학교건립에 공을 세운 박현식을 기념하는 비로, 비의 규모는 높이 101cm, 너비 43cm, 폭 16.5cm이다.
    참고문헌 : 신자료

    48. 新安 紅島里 石村祭堂(신안 홍도리 석촌제당)
    소 재 지 : 흑산면 홍도리 석촌마을
    시 대 : 미상
    종 류 : 민속유적
    유적현황 : 석촌마을은 1970년대까지 매년 음력 정월 초하루부터 초사흘까지 ‘당제’를 지냈다. 당시 제의는 마을입구에서 남쪽으로 200m 정도 떨어진 당숲에서 거행되었다. 당숲에는 원형 돌담 안에 당집이 있었는데, ‘용왕당’ ‘총각당’으로 불렸다. 이 당집은 신당과 제실로 구분되었고, 당신으로 ‘할아버지’와 ‘할머니’, ‘총각’을 모셨다. 신당 안에는 긴 신베(보수베, 당베)가 걸려 있었고, 쌀이 들어있는 ‘성조동이’가 있었다. 당집은 흑산 진리의 본당인 처녀당과 음양의 조화를 이루는 설화가 전승되고 있었다. 당제가 끝나면, 초사흗날 바다 용왕신에게 일 년간 바다에서의 무사고와 가정의 평안을 기원하는 둑제를 거행하였다. 오늘날 석촌마을은 당제가 거행되고 있지는 않지만, 동백나무, 황칠나무, 구실잣밤나무, 후박나무가 자생하고 있는 당숲이 잘 보존되어 있고, 원형 돌담과 당집이 남아 있다. 최근 이곳에 문화재청이 전통문화를 되살린다는 취지로 옛 당집을 헐고 당집을 복원 중에 있지만, 주민 가운데 기독교인이 많아 당제가 복원될 가능성은 희박하다.
    참고문헌 : 목포대학교 도서문화연구소 2003,『도서 문화유적 지표조사 및 자원화 연구3 -흑산면 편-』.

    49. 新安 苔島里 上苔島祭堂 (신안 태도리 상태도제당)
    소 재 지 : 흑산면 태도리 상태도
    시 대 : 미상
    종 류 : 민속유적
    유적현황 : 상태도는 중태도, 하태도와 함께 태도리에 속한다. 상태도에서는 매년 음력 정월 초하루에 당제를 지냈다. 현재 당제는 행해지지 않지만, 흑산 내연발전소 뒤편의 후박나무 숲 안에 당집이 남아있다. 주민들은 높이 24cm, 너비 17cm의 사각형 위패모양의 시멘트로 된 것을 ‘윗당’이라고 부르며, 바로 밑에 있는 높이 160cm의 1칸 시멘들 벽돌 당집을 ‘아랫당’이라고 부른다. 상당제에는 제물의 진설 외에 별다른 의례가 없고, 하당제는 진설ㆍ헌작ㆍ재배ㆍ구축ㆍ소지의 절차로 진행된다. 하당에서의 의례가 끝나면 바닷가로 가서 ‘용왕제’를 지낸다.
    참고문헌 : 신자료

    50. 新安 苔島里 下苔島貝塚 (신안 태도리 하태도패총)
    소 재 지 : 흑산면 태도리 하태도
    시 대 : 신석기
    종 류 : 패총
    유적현황 : 마을에서 남쪽으로 100m 정도 떨어져 있는 산의 정상부 주변에 위치한다. 이곳은 마을주민들 사이에 샘너머로 불리고 있으며, 사면으로 바다가 잘 조망되는 곳이다. 유물은 1987년도 조사에서 압인문토기편과 즐문토기편 등이 출토되었다. 현재는 KTF기지국 건설로 인하여 패총의 일부분이 유실되었다. 기지국 주변으로는 패각류가 산재해 있다.
    참고문헌 : 木浦大學校博物館 1987,『新安郡의 文化遺蹟』.

    51. 新安 苔島里 趙正官功績碑 (신안 태도리 조정관공적비)
    소 재 지 : 흑산면 태도리 하태도
    시 대 : 1953년
    종 류 : 비갈
    유적현황 : 제방에서 마을로 향하는 길목에 비가 위치하고 있다. 비의 전면 중앙에는 ‘面長趙公正官功績碑’라고 새겨져 있고, 공의 행적이 4언 절구로 비의 좌우에 새겨져있다. 조정관은 면장 재직 시에 하태도 제방을 쌓아, 그 공적을 기리기 위해 1953년에 비를 세웠다. 규모는 높이 120cm, 너비 40cm, 두께 18cm 이다.
    참고문헌 :

    52. 新安 苔島里 下苔島祭堂 (신안 태도리 하태도제당)
    소 재 지 : 흑산면 태도리 하태도
    시 대 : 미상
    종 류 : 민속유적
    유적현황 : 하태도에서는 매년 정월 초하루날 새벽에 마을로부터 서쪽으로 100m 정도 떨어진 당집에서 제의를 지냈다. 당집주변으로는 누럭나무, 재배나무, 팽나무, 동백나무가 울창하게 우거져 있다. 제의는 마을회의를 통해 생기복덕한 남자 2명을 선출하고 산나물로만 제상을 차렸다. 당신으로 ‘할아버지’, ‘할머니’, ‘딸’을 모시고 있으며, 신위의 신체로 흰옷을 모셨다고 한다. 제의를 진행하면서 마을의 풍요와 안녕을 기원하였다. 당제가 끝나면 각호에서 마련한 제상을 해변에 차리고, 부녀자들이 둑제를 행하였다. 당제는 1980년대부터 제의를 지내지 않고 있다.
    참고문헌 : 木浦大學校博物館 1987,『新安郡의 文化遺蹟』.

    53. 新安 可居島里 大里祭堂 (신안 가거도리 대리제당)
    소 재 지 : 흑산면 가거도리 대리마을
    시 대 : 미상
    종 류 : 민속유적
    유적현황 : 대리마을에서는 매년 음력 정월 초하루에 ‘당제’가 거행되었다. 상당은 ‘승당(僧堂)’이라고도 불리며, 할아버지와 세 동자, 산신을 모시고 있었으나 최근 전력발전소가 개설되면서 훼손되었다고 한다. 하당은 가거항 입구에 위치한 산중턱에 위치하며, 당집은 1985년도에 시멘트 건물로 개축되었다. 하당의 당신은 멍씨 할멈과 산신, 용신이며 그 외에 동자와 잡신 등 모두 12신이 있다. 제는 구축ㆍ소지ㆍ헌식 순으로 진행된다. 당제 후에 고씨, 최씨, 김씨 등의 씨족제를 올리고 갯가에 내려와 둑제를 지냈다. 마을에서는 더 이상 제의를 지내지 않고 있으나, 매년 정월 초하루날 일부 마을주민들이 하당에 음식을 차리고 개인의 안녕을 기원하고 있다.
    참고문헌 : 木浦大學校博物館 1987,『新安郡의 文化遺蹟』.

    54. 新安 可居島里 項里遺物散布地 (신안 가거도리 항리유물산포지)
    소 재 지 : 흑산면 가거도리 항리마을
    시 대 : 신석기
    종 류 : 유물산포지
    유적개요 : 항리는 ‘목리’라고도 불리는데 모가지처럼 생긴 곳이라는 뜻이다. 또한 항리는 ‘항탄(項灘)’ 또는 ‘목여울’이라고도 하고, ‘목애’라고도 불렸다. 80년대에는 46호가 살았으나 최근에는 20여 호가 살고 있다. 유물산포지는 마을 서쪽 사면에 위치하고 있다. 이곳은 가거도의 서쪽 해안가로 바다가 조망되는 곳이다. 유물은 2005년도 국립광주박물관 조사에서 즐문토기편과 불에 구워져 경화된 토제덩어리가 확인되었다.
    참고문헌 : 국립광주박물관 2006,『신안 가거도 패총』.

    55. 新安 可居島里 項里祭堂 (신안 가거도리 항리제당)
    소 재 지 : 흑산면 가거도리 항리마을
    시 대 : 미상
    종 류 : 민속유적
    유적개요 : 항리마을 제당은 마을에서 유인등대로 가는 길목에 위치한다. 이곳은 ‘산귀골’이라 불리고 있으며, 바다가 잘 조망되는 곳이다. 당제는 매년 정월 초하루날에 우리나라에서 유일하다고 학계에 보고된 나무아래에서 진행되었다. 제의는 마을회의에서 생기복덕한 남자 2명을 선발하여 섣달 그믐부터 준비하여 정월 초하루날 모시고 마을주민들의 건강과 풍어를 기원하였다. 제의가 끝나면 마을잔치로 이어졌다. 당제는 1980년대 초반부터 제의를 지내지 않고 있다.
    참고문헌 : 국립광주박물관 2006,『신안 가거도 패총』.

    56. 新安 可居島貝塚 (신안 가거도패총)
    소 재 지 : 흑산면 가거도리 산4
    시 대 : 신석기
    종 류 : 패총
    유적개요 : 패총은 가거도의 북쪽 끝에 위치하며, 북서쪽으로 돌출된 곳에 자리한다. 이곳은 등대가 설치되어 있는 구릉 정상부의 남서쪽 사면 끝자락으로 해풍을 견딜 수 있는 양지바른 곳이다. 가거도 패총은 2005년 국립광주박물관에 의해 학술조사되었다. 그 결과 신석기시대 전기부터 말기에 걸친 문화요소들을 확보할 수 있었고, 패총의 중심연대가 신석기시대 전기와 말기였음을 밝힐 수 있었다. 유물로는 토기류, 석기류, 골각기류 등이 출토되었다.
    참고문헌 : 국립광주박물관 2006,『신안 가거도 패총』.

    57. 新安 可居島里 燈臺 (신안 가거도리 등대)
    소 재 지 : 흑산면 가거도리 산9-2번지
    시 대 : 1935년
    종 류 : 교통통신유적
    유적개요 : 등대는 가거도의 북쪽 끝에 위치하며, 북서쪽으로 돌출된 곳에 자리한다. 이곳은 먼 바다까지 잘 조망되는 곳으로 1935년도에 처음으로 등대가 설치된 이후 현재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주요 업무로는 항로표지 기능유지, 시설물 관리, 인근 무인표지의 기능 감시, 복구지원, 기상, 해양관측활등을 하고 있다. 주요 시설물로는 영조물(8동), 등명기(1대), 공기압축기(2대), 발전기(2대), 축전지(108개) 등을 갖추고 있다. 현재 3명이 상주하여 24시간 교대근무를 하고 있다.
    참고문헌 : 신자료

    58. 新安 可居島里 大豊祭堂 (신안 가거도리 대풍제당)
    소 재 지 : 흑산면 가거도리 대풍마을
    시 대 : 미상
    종 류 : 민속유적
    유적개요 : 대풍마을 제당은 마을로부터 남동쪽으로 100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한다. 당제는 자물쇠통이 바다를 통해 떠내려와 당신의 신체로 삼고 담을 쌓아 당제를 지냈다고 한다. 이런 연유로 인하여 ‘쇠통당제’로 불리우고 있다. 제의는 매년 정월 초하루날 새벽에 나물종류를 차리고 마을의 풍요와 안녕을 기원하였다. 제당에서 제의가 끝나면 뗏목에 허수아비를 실어 바다로 띄어 보내는 것으로 당제가 마무리 되었다. 현재 제당에는 방형의 돌담만이 남아 있으며, 규모는 장축길이 10m, 단축길이 4m, 높이 1m 40cm 정도이다. 당제는 1960년대부터 지내지 않고 있다.
    참고문헌 : 신자료

    59. 可居島 멸치잡이 노래 (가거도 멸치잡이 노래)
    소 재 지 : 흑산면 가거도리 일원
    시 대 : 미상
    종 류 : 음악
    유적현황 : 가거도 멸치잡이 노래는 고된 작업을 하는 어부들의 피로를 덜어주고 일체감을 높이기 위해 부르는 민요이다. 고기잡이와 관련하여 부르는 노래에는 바다에서 일을 하면서 부르는 노래와 노를 저으면서 부르는 뱃노래가 있는데 가거도 멸치잡이 노래는 두 유형의 민요가 복합되어 있다. 구성은 멸치어장으로 가면서 노를 저을때 부르는 ‘놋소리’, 멸치가 발견되었을 때 횃불을 켜들고 멸치를 모는 ‘멸치몰이소리’, 그물을 넣는 ‘그물치는 소리’ 멸치를 가래로 퍼 올리는 ‘술비소리’, ‘긴소리’, ‘잦은소리’, ‘역수타는 소리’, ‘긴뱃소리’, ‘작은뱃소리’, 포구로 돌아 올 때 부르는 ‘풍장소리’등으로 이루어져있다. 특히 ‘놋소리는’는 설소리(앞소리ㆍ매김소리)꾼이 소리를 메기면 뒷소리(받는소리)꾼들이 소리를 받고 그 사이사이에 구음으로 된 샛소리를 내는 삼중창이 특징이다. 대리마을 내에 자리한 가거도 출장소 앞에는 무형문화재 지정기념비와 노래비가 위치하고 있다.
    참고문헌 : 신안군 2005,『우리고장의 향토문화유적』.

    60. 九屈島 海鳥類 繁殖地 (구굴도 해조류 번식지)
    소 재 지 : 흑산면 가거도리 산2ㆍ3(구굴도)
    시 대 : 미상
    종 류 : 번식지
    유적현황 : 구굴도는 우리나라 최서남단에 위치한 섬이다. 이 지역은 1년 내내 기온이 온화하여 해조류가 번식하기에 적합하다. 뿔쇠오리, 바다제비, 슴새 등 희귀한 바다철새들이 번식하고 있다. 뿔쇠오리는 바다오리과의 일종으로 일본과 한국의 난류 해역에서 서식하는 특산종으로 번식이 확인된 섬은 대구굴도와 소구굴도 뿐이다. 또한 바다제비는 1986년 번식기에 조사된 결과에 따르면 10만 쌍 정도 이상이 해마다 찾아와 집단번식하고 있다. 슴새는 매우 적은 수가 번식하고 있다.
    참고문헌 : 신안군 2005,『우리고장의 향토문화유적』.

    61. 新安 晩才島里 晩才祭堂 (신안 가거도리 만재제당)
    소 재 지 : 흑산면 만재도리 만재마을
    시 대 : 미상
    종 류 : 민속유적
    유적개요 : 만재마을 제당은 마을 안 발전소 밑의 하당과 마을 북쪽 야산(176.7m)의 등대 있는 곳에 위치하는 상당으로 구성되어있다. 당제는 정월뿐만 아니라 3ㆍ4월에도 날을 받아 제를 지냈다고 한다. 제의는 생기복덕한 당주와 하주를 선출해 3일전부터 몸을 깨끗하여 준비한다. 당샘에서 음식을 장만하여 ‘웃당(상당)’에 10시경 소지하고, ‘아랫당(하당)’으로 내려와 12시경 제를 지낸다. 아침에는 마을 앞 해변의 ‘작별’에서 무당굿을 크게 하고, 당제의 마지막 과정인 ‘용왕제’를 지낸다. 주로 마을의 풍요와 안녕을 기원하였다. 당제는 1960년대부터 지내지 않고 있다.
    참고문헌 : 신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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