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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7   [자은면] 자은면 기념비군 신안문화원 2006/3/16 1816


    은암대교를 지나 자은으로 들어오는 도로 우측에 4기의 비석이 세워져 있다. 자은면 곳곳에서 방치되어 있던 것으로 이곳으로 옮겨왔다. 석씨묘비, 목사 김기현불망비, 일본해군용지 경계석, 계선주(공덕비)가 나란히 세워져 있다.
    “석씨묘비(1740년 건립, 높이 108cm, 너비 45cm, 두께 12cm)”는 자은면 입도자로 알려진 석씨 집안 후손의 묘비이다. 한운리 저수지 축조 때 제방위에 올려져 있던 것으로 발견하여 옮겨놓았다. 정면에 “○○將軍 石公萬之 後人鄭氏之墓 ”라고 쓰여 있고, 뒷면에는 후손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목사 김기현 불망비”는 1854년에 세워진 것으로 높이 127cm, 너비 44cm, 두께 18cm의 규모이다. 나주 목사 김기현이 자은면에 어떤 시혜를 베풀어서 면민들이 세운 것이다. 구진변 잡초 속에 방치되어 있던 것을 옮겨왔다. 정면에 “牧使金侯箕絢永世不忘碑”가 쓰여 있고, 뒷변에는 건립년도(함풍4년)만 표기 되어 있을 뿐 건립한 내력이 없어 그 유래를 알 길이 막연하다.
    “대일본해군용지” 경계석은 자은 용소 주변에서 발견되었다. 용소는 가뭄에도 물이 마르지 않는 것으로 유명한 자연호수이다. 일본은 목포가 개항되기 이전에 서남해 해역에 일본 해군기지를 두고 활동 근거지로 삼았다. 이 경계석은 당시 일본해군이 식수 공급을 위해 자은 용소 부근 기지를 나타내는 것이다. 용소에 일대에서 이와 같은 3기의 비석이 발견되었는데, 나머지 2기는 표성천 씨 집 정원에 보관되어 있다. 당시 일본 해군의 주 근거지 현 하의면 옥도였다. 옥도에도 이와 유사한 경계석들이 발견되고 있다.
    “계선주” 옛 구영리에서 발견되어 마을 주민들은 수군기지에서 큰 배를 묶어두었던 계선주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모양이 일반적인 계선주하고는 달리 공적비 모양을 하고 있고 상부는 갓머리 형태를 하고 있어 그 용도를 확인해 볼 필요가 있다. 절반가량이 부러졌다. 부러진 부분은 비석이 세워진 곳의 뒤편에 방치되어 있다.
    군집되어 있는 비석의 수는 그리 많지 않은편이나 자은면의 역사를 한눈에 살필 수 있는 소중한 자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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