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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   [증도면] 송․원대 유물매장 해역(국가사적 274호) 신안문화원 2006/3/16 1575


    신안해저유물은 1975년 5월, 신안군 증도․임자도로부터 약 4Km 떨어진 지점에서 어부에 의해 발견되었다. 발굴은 1976년 10월 신안군 증도면 방축리 앞 바다에서 문화재관리국의 「신안해저발굴조사단」에 의해 시작되었다. 이후 1984년 9월까지 10차례에 걸쳐 발굴 작업이 실시되었으며, 해군(海軍) 지원단의 적극적인 협조아래에 이루어졌다. 발굴현장의 수심은 평균 20m정도, 약 4m의 수심 변화, 유속은 평균 2.5노트이며, 조수가 가장 높이 올라갈 때는 3.5노트, 가장 낮을 때는 1.5노트이다.
    조사 결과 선체 길이는 28.4m, 너비는 6.6m, 갑판(甲版) 이상은 해충에 의해 완전히 침식되어 있었다. 인양된 선체편은 720여편으로, 선체 원형 복원이 가능하다. 발굴된 유물은 총 22,007점인데, 7개의 격벽(隔壁)으로 구획된 짐칸 속에서 인양되었다. 출토된 유물은 침몰 당시의 해상운송 규모를 말해주며, 중국․고려․일본 등 3국의 경제적인 교류가 이루어졌음을 입증해준다. 유물은 주로 송․원대에 사용하였던 물건이 주를 이루며, 고려자기를 비롯해 고려 유물과 나막신․칼코 등 일본 유물도 20여점이 발견되었다.
    신안해저유물은 중국 원나라 때인 14세기 전반기의 유물로 학술적 가치가 크다. 특히 대량으로 출토된 도자기는 세계 수중 고고학사상 유례없는 것으로써 편년과 생산지 등을 밝힐 수 있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 또 침몰선은 용골(龍骨)을 갖춘 첨저형(尖底型)으로 격벽(隔壁)이 설치되어 있어 당시의 조선술을 알아 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 신안선은 중국에서 일본으로 향하던 무역선(貿易船)으로 추정된다. 인양 유물 중 청동추에 주자(鑄字)된 「경원로(慶元路)」(현 중국 절강성 영파항)는 당시의 출항지를 밝히는 근거가 된다. 침몰 연대는 도자기의 양식, 동전, 목패(木牌) 등을 통해 추정이 가능하다. 예를 들어, 원의 지대(至大) 연간(1308~1312)의 동전인 지대통보(至大通寶)와 8차 발굴 당시 인양된 목패에 새겨진 「지치3년(至治三年, 1323년) ○월 ○일」의 명문은 침몰 시기를 추정할 수 있는 유물로 평가된다. 신안 해저발굴은 원나라의 사회․경제상, 조선술(造船術), 국제교역사, 공예미술 등의 연구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의 수중고고학(水中考古學)의 첫 장을 열게 한 해양발굴이었다는 점에서 의의가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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