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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   [흑산면] 대둔도 김이수 생가 신안문화원 2006/3/16 2221


    대둔도 김이수 생가
    흑산면 대둔도 오리에 자리하고 있다. ‘김이수’는 조선후기 1700년대 중․후반에 지금의 흑산면 대둔도에 살면서, 흑산도를 비롯한 인근 섬 지역 사람들의 민원을 대변하는 역할을 했다. 그의 삶은 조선 후기 민권운동의 선구자로서의 면모를 보여준다. 조선왕조실록의 1791(정조 15)년 5월 22일 기사에는 “흑산도(黑山島) 백성이 닥나무 세금 폐단으로 인한 원통함을 징을 쳐 호소하니, 이를 시정하였다”는 기록이 등장한다. 이 기록에서 지칭하는 “흑산도의 백성”이 바로 ‘김이수’이다. 그는 1767년부터 약 40여 년의 세월동안 섬 주민들의 손과 발이 되어 폐단을 시정코자 노력했으며, 실제로 많은 성과를 거두어 내기도 하였다. 당시 관료들은 ‘김이수’의 활동을 눈엣가시처럼 여기며, 미워했지만 이에 굴하지 않고 오직 민중의 권익을 위해 개혁을 소리 높여 외쳤다. ‘김이수’의 활동 가운데서 가장 주목되는 것은 1791년 정조 임금의 행차를 가로막고 ‘격쟁(擊錚)’을 올린 일이다. ‘격쟁’은 임금의 행차 길에 징이나 꽹꽈리를 치면서 시선을 집중시킨 후 직접 백성들의 민원을 호소하는 방법이다. 그는 당시 흑산도민들이 겪고 있던 가장 큰 폐단인 ‘닥나무 세금’을 시정하기 위해 관청이나 상부에 소송을 내고 수 차례 시정을 요청했으나, 효과를 거두지 못하자 최후의 수단으로 천리만길 한양까지 찾아가 임금에게 직접 개혁을 호소하였다. 김이수의 격쟁은 정조 임금에게 받아들여져 이에 대한 폐단이 시정되었다. 그 결과 다시 섬으로 되돌아오는 주민들이 늘어났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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