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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하의면] 옥도 팔구포 일본해군기지터 및 일본우물 신안문화원 2006/3/16 17734


    현 하의면 옥도는 목포가 개항된 1897년 보다 훨씬 이전(1894년 청일전쟁시기)부터 일본 해군의 근거지로 이용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옥도가 일본해군기지로 본격적으로 활용 된 것은 1904년 러일전쟁 시기부터이다. 러일전쟁을 일으킨 일본은 한반도 서남해역에서의 해상권을 제어하기 위해 옥도를 점령하고 해군기지로 사용하였다. 일본해군이 이곳을 선택했던 이유는 무엇보다 지리적인 특성상 지역의 해로를 최대한 활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기 때문이다. 조선시대부터 옥도는 목포진의 8군데 요망대(要望臺) 중의 하나였다는 점이 역사적으로 지리적 위치를 가늠할 수 있게 한다. 무엇보다 ‘팔구포(八口浦)’라는 지명이 유래되게 된 데서 옥도가 지니는 해상 지리적 장점을 알 수 있게 한다. 일제강점기에는 옥도 앞 바다 일대를 팔구포(八口灣) 혹은 팔구포(八口浦)라고 불렀는데, 옥도를 기점으로 주변에 8군데 물길(水道)이 열려있어 외양(外洋) 및 시아(時牙) 바다로 통하게 되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①북방 도초도와 수치도 사이의 수도, ②수치도와 사치도 사이의 수도, ③사치도와 기좌도 사이의 수도, ④동방 반월도와 옥도 사이의 수도, ⑤남방 옥도와 장병도간의 수도, ⑥하의도와 능산도 사이의 수도, ⑦능산도와 대야도 사이의 수도, ⑧서방 대야도와 도초도 사이의 수도”
    또 하나 중요한 요소는 옥도 주변의 식수사정이 매우 좋았다는 것이다. 러일전쟁 때 일본함대가 팔구포에 들어왔는데, 여기가 급수지로 선정되어 당시 우물 9개를 팠다. 옛 일본해군기지 터에는 이 우물들 중 몇 개가 지금도 현존하고 있다. 또한 옥도에는 물과 관련된 흔적으로 일본인들이 목욕탕으로 사용했다는 석조로 된 욕조도 남아 있다.
    가장 대표적인 유물은 일본해군이 사용했던 우물이다. 선착장에서 내려 약 300~400미터 정도 마을 쪽으로 걸어가다 보면 좌측 언덕(송홍주씨 밭) 부분에 원형의 우물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이 우물의 옆면에는 “八口浦海軍井”이라고 표기되어 있고, 그 우측에 세로로 “昭和拾壹年八月建立”이라고 적혀있다. 이를 통해 이 일대가 일본 해군기지였음이 확인된다. 1936년에 조성된 이 우물은 일본군의 식수로 사용된 것으로, 크기는 깊이 6m15cm, 폭 92cm, 높이 9.5cm이다. 건립 년대가 일본 해군이 주둔하기 시작한 시기보다 한참 뒤진다는 생각이 들어, 다른 우물은 없는지 마을 주민에게 확인해 본 결과 50여 미터 정도 떨어진 지역에 훨씬 규모가 큰 우물을 하나 찾을 수 있었다. 이 곳에서 살고 있는 송홍주(63세)씨의 증언에 의하면 이 큰 우물이 러일전쟁 당시 일본군이 이용을 하던 원래우물이라고 한다. 원래 크기가 현재보다 더 넓었는데, 마을 사람들이 아이들이 추락할 위험이 있어 입구의 폭을 줄여서 지금의 형태를 갖추게 되었다고 한다.
    1936년에 만든 ‘팔구포해군정’의 근처에서 이곳이 일본해군기지였다는 또 다른 결정적인 증거를 발견할 수 있었다. 송홍주씨 집으로 올라오는 초입부분(밭 모퉁이)에 두 개의 입석 같은 것이 쓰러져 있는데, 확인결과 당시 이곳이 일본해군기지임을 보여주는 경계석이었다. 원래는 지금 송홍주씨 밭 감나무 자리에 있었던 것이라고 한다.
    사각형 돌기둥으로 세로 122cm, 폭 32cm크기이다. 한쪽에 “大日本帝國海軍用地”라고 표기되어 있고, 반대 면에 화살표 모양과 함께 “第六七号”라고 적혀있다. 일본해국용지 경계석과 함께 좀더 두께가 작은 돌기둥이 그 옆에 나란히 있다. 표면에 “海軍 第八八”이라고 표기되어 있고, 크기는 세로 112cm, 가로 15cm이다.
    또 다른 유적은 이 일본해군기지터에서 좀 떨어진 곳에 있는데, 이른바 “일본인 목욕탕”이라고 불리는 것이다. 당시 일본해군기지가 있는 곳에서 기상대가 있었던 자리로 연결되는 길을 일본인들이 조성해 놓았었다. 그 길을 통해 기상대 자리로 가는 도중 망마산 아래에는 “일본인 목욕탕”을 발견할 수 있었다. 산에서 흘러 내려온 지하수 물을 담아 목욕탕으로 사용했던 것으로 보이는 데, 지금도 욕조 모양의 석조가 현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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