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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4   [안좌면] 안좌면 문화유산 신안문화원 2008/2/12 4726


    [안좌면] 안좌면의 문화유산
    출처 : 목포대학교박물관, 2008 《신안군문화유적분포지도》 신안군

    1. 新安 琴山里 安左船 (신안 금산리 안좌선)
    소 재 지 : 안좌면 금산리 갓섬
    시 대 : 고려
    종 류 : 유물산포지
    유적현황 : 유적은 금산리 갓섬의 해안일대에서 조사되었다. 이곳은 북쪽으로는 팔금면, 동쪽으로는 해남 화원반도를 마주보는 해역으로 좁고 완만한 만의 형태를 이루고 있다.
    주민에 의해 신고된 후, 2005년 국립해양유물전시관에서 고려시대 전통한선 1척과 고려청자 등을 발굴하였다. 선체는 3개의 저판재를 갖춘 고려시대 전통한선으로 평저형이며, 우현 외판 7단과 좌현 외판 2단이 남아있었다. 잔존길이 14.7m, 폭 4.53m, 깊이 1.4m로 발굴된 한선 중에서 가장 크며, 선체 구조의 특징을 밝히는 저판과 외판, 돛대를 지지하는 멍에형 가룡의 구조물이 인양되어, 고대선박의 연구에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이와 함께 선체내부에서 청자상감국화문잔과 청자소접시 등이 출토되어 안좌선의 시대편년을 14세기 중ㆍ후반으로 밝히는 근거자료가 되었다.
    참고문헌 : 국립해양유물전시관 2006,『安左船 發掘報告書』.

    2. 新安 大里 大里遺物散布地① (신안 대리 대리유물산포지①)
    소 재 지 : 안좌면 대리 대리마을
    시 대 : 청동기~삼국
    종 류 : 유물산포지
    유적현황 : 유물산포지는 대리마을 북동쪽에 위치하는 해발 152m 높이의 ‘후동산’ 남쪽사면부와 대리마을 사이의 구릉 전체에 위치한다. 이곳은 동쪽으로는 황해와 인접하고 서쪽은 ‘앞들’이 넓게 자리하며, 북쪽으로는 ‘후동산’이 마을을 감싸고 있다. 현재 밭으로 경작되고 있으며 석착, 적갈색연질토기편, 회청색경질토기편 등 다량의 유물이 수습되어 청동기시대부터 삼국시대에 이르는 유적이 존재한 가능성이 보인다. 대리마을을 경계로 북쪽은 대리유물산포지①, 남쪽은 대리유물산포지②로 나누어진다.
    참고문헌 : 신자료

    3. 新安 大里 大里遺物散布地② (신안 대리 대리유물산포지②)
    소 재 지 : 안좌면 대리 대리마을
    시 대 : 삼국
    종 류 : 유물산포지
    유적현황 : 유물산포지는 대리마을 남쪽에 위치하는 야산(42.6m)의 북쪽사면부와 대리마을 사이의 구릉 상에 위치한다. 이곳은 동쪽으로는 황해와 인접하고 서쪽은 ‘앞들’이 넓게 자리하며, 북쪽으로는 ‘후동산’이 마을을 감싸고 있다. 현재 밭으로 경작되고 있으며 적갈색연질토기편, 회청색경질토기편 등 다량의 유물이 수습되었다. 대리마을을 경계로 북쪽은 대리유물산포지①, 남쪽은 대리유물산포지②로 나누어진다.
    참고문헌 : 신자료

    4. 新安 大里 大里古墳 (신안 대리 대리고분)
    소 재 지 : 안좌면 대리 대리마을
    시 대 : 삼국
    종 류 : 고분
    유적현황 : 대리마을에서 서쪽으로 600m 정도 떨어진 곳의 야산(33.2m) 정상부 주변에 위치한다. 이곳은 해발 33m 정도 나지막한 구릉으로 고분군내에는 밀양박씨 선산(관리자:대리마을 박철완씨)이 자리하고 있다. 고분은 석실분으로 추정되며, 현재 3기 정도가 지표상에 노출되어 있으나 주변 지형으로 볼 때 많은 수의 석실분들이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 그러나 훼손정도가 심하여 정확한 규모나 형태 등은 확인할 수 없다.
    참고문헌 : 신자료

    5. 新安 大里 大里石室墳 (신안 대리 대리석실분)
    소 재 지 : 안좌면 대리 대리마을
    시 대 : 삼국
    종 류 : 고분
    유적현황 : 석실분은 대리마을 남쪽에 위치하는 해발 42.6m 높이 야산의 남쪽사면부와 골짜기 사이에 위치한다. 기존조사에서 “봉분은 모두 없어져서 평지가 되어 있으며 석재들은 대부분 파괴되거나 다른 용도로 사용되었다”라고 하여 과거에도 훼손이 심하게 이루어 졌음을 알 수 있다. 현재 1기의 석실만이 남아있으나 훼손이 심하여 원형을 파악할 수가 없다. 석실의 방향은 남-북으로 추정된다.
    참고문헌 : 木浦大學校博物館 1987,『新安郡의 文化遺蹟』.

    6. 新安 大里 배널리古墳群 (신안 대리 배널리고분군)
    소 재 지 : 안좌면 대리 대리마을
    시 대 : 삼국
    종 류 : 고분
    유적현황 : 고분은 대리마을에서 남동쪽으로 800m 정도 떨어진 바다와 인접한 지점의 ‘배널리’라고 불리는 곳에 3기가 위치해 있다. 이곳은 현재 박철완씨 소유의 밭으로 과거부터 ‘몰무덤’이라 불리던 곳이다. 고분의 동쪽으로는 황해와 인접해 있고 북쪽은 후동산이 뻗어 내려와 대리마을을 감싸고 있다. 또한 서쪽과 남쪽은 ‘당넘어들’이 넓게 자리하고 있다. 현재 고분은 밭 한가운데 있는 관계로 경작 시 봉분이 삭토된 것으로 보인다. 기존조사에서 “1호분에서 길이 50cm 정도의 쇠와 빨강, 파랑색의 구슬이 나왔으며 판석으로 벽을 쌓고 천개석이 덮어져 있다.” 라고 하는 것을 미루어 석실분으로 생각된다.
    1호분의 규모는 길이와 폭이 12m, 높이 2m의 원형분이다.
    2호분은 길이 10.5m, 폭 6m, 높이 1.5m이다. 장축방향은 동-서이고 형태는 타원형이다.
    3호분은 길이 10m, 폭 9m, 높이 1.5m이다. 장축방향은 남-북이고 형태는 타원형이다.
    참고문헌 : 木浦大學校博物館 1987,『新安郡의 文化遺蹟』.

    7. 新安 大里 大里保護樹 (신안 대리 대리보호수)
    소 재 지 : 안좌면 대리 산912(대리마을)
    시 대 : 조선
    종 류 : 노거수ㆍ민속유적
    유적현황 : 대리마을 북서쪽에 마을을 감싸듯 팽나무 60기가 일렬로 서있다. 대리마을의 우실로 이 중 10기가 보호수로 지정되어 있다. 대표적인 팽나무의 수령은 350년, 나무의 높이는 17m, 둘레는 3.8m에 이른다. 과거 대리마을은 해변과 매우 가깝게 있었고, 우실이 방풍림의 역할을 위하여 조성되었다. 후에 간척이 되면서 매립지는 농지로 바뀌고 원래의 숲은 그 원형이 많이 사라지면서 현재는 농지 한가운데에 위치하고 있다. 주민들은 이 우실(우슬이라고도 함)을 신성하게 여겨 나뭇가지를 부러뜨리거나 땔감으로 사용하지 않는 금기를 가지고 있으며, 우실 안에 남근(男根) 형태의 입석 1기가 서있다. 우실과 입석은 정월 초사흘에 거행되던 ‘당제’의 하당(下堂)이기도 하다.
    참고문헌 : 목포대학교 도서문화연구소 2005,『도서 문화유적 지표조사 및 자원화 연구5 -안좌ㆍ팔금면 편-』.

    8. 新安 大里 김채성家屋 (신안 대리 김채성가옥)
    소 재 지 : 안좌면 대리 830(대리마을)
    시 대 : 1900년대 초
    종 류 : 주거건축
    유적현황 : 전형적인 신안도서지방 민가구조를 보인다. 정지 전면 모퉁이에 모방이 있다. 마래, 안방, 정지, 모방의 4실로 이루어진 형식으로, 모방이 전면의 퇴주선(退柱線)보다 약 1m 정도 앞쪽으로 돌출되어 있어 ‘一’ 자형 평면 이지만 ‘ㄱ' 자형을 연상케 한다. 현재 옛집 옆에 새집을 지어 살고 있고, 옛집은 그대로 보존되고 있다.
    참고문헌 : 목포대학교 도서문화연구소 2005,『도서 문화유적 지표조사 및 자원화 연구5 -안좌ㆍ팔금면 편-』.

    9. 新安 大里 전양례家屋 (신안 대리 전양례가옥)
    소 재 지 : 안좌면 대리 대리마을
    시 대 : 1900년대
    종 류 : 주거건축
    유적현황 : 전형적인 신안도서지방 민가구조를 보인다. 초가지붕으로 마래, 안방, 정지, 모방의 4실로 이루어진 형식이다. 모방이 전면의 퇴주선(退柱線)보다 1m 정도 앞쪽으로 돌출되어 있어 ‘一’ 자형 평면이지만 ‘ㄱ' 자형을 연상케 한다. 가옥규모에 비해 마루가 넓으며 현재 사람이 살고 있지 않으나, 원형그대로 보존되어있다.
    참고문헌 : 목포대학교 도서문화연구소 2005,『도서 문화유적 지표조사 및 자원화 연구5 -안좌ㆍ팔금면 편-』.

    10. 新安 大里 大里立石 (신안 대리 대리입석)
    소 재 지 : 안좌면 대리 대리마을
    시 대 : 미상
    종 류 : 거석기념물ㆍ민속유적
    유적현황 : 대리마을에 남근(男根)모양의 입석 2기가 100m 정도의 거리를 두고 서있다. ①은 우실(대리보호수)과 함께 있으며, 높이 260cm, 폭 40cm의 화강석으로 남근형태를 조각해놓았는데, 상부 40cm는 삿갓을 씌운 듯한 형태이다. ②는 우실의 맞은편 밭 가운데 위치하며 166cm의 높이에 남근(男根)의 형태가 사실적으로 표현되어있다. 이들 입석은 우실과 함께 대리마을 ‘당제’의 하당(下堂)이기도 하다.
    참고문헌 : 목포대학 도서문화연구소 1986,『도서문화』제4집.

    11. 新安 大里 大里祭堂 (신안 대리 대리제당)
    소 재 지 : 안좌면 대리 대리마을
    시 대 : 미상
    종 류 : 민속유적
    유적현황 : 대리마을에서는 매년 음력 정월 초사흘밤에 마을의 번영과 부귀영화, 농사풍년을 기원하기 위한 ‘당제’ 혹은 ‘신당제(神堂祭)’, ‘사당제(祠堂祭)’, ‘수호제’라 부르는 마을공동체 의례를 행하였다. 상당(上堂)은 마을 남쪽 야산(案山) 중턱(농협창고 뒤)에 위치한 당집으로, ‘佑里神主大察之位’라고 쓰여진 신위가 있었다고 전한다. 그러나 현재 당집은 많이 훼손되었고, 신위도 찾아볼 수 없으며, 주위는 나무가 우거져있다. 제신(祭神)은 ‘당할머니’이며, 제는 진설ㆍ헌작ㆍ독축ㆍ소지 순으로 진행되었으나, 10여년 전부터 제의가 행해지지 않는다. 한편 하당(下堂)은 마을 북쪽에 있는 우실(대리보호수)과 길가에 있는 2기의 입석(대리입석)이다.
    참고문헌 : 목포대학 도서문화연구소 1986,『도서문화』제4집.

    12. 新安 者羅里 者羅遺物散布地 (신안 자라리 자라유물산포지)
    소 재 지 : 안좌면 자라리 자라마을
    시 대 : 삼국
    종 류 : 유물산포지
    유적현황 : 자라도는 안좌면 남동쪽에 위치한 섬으로 비교적 넓은 구릉과 간척지가 잘 발달된 섬이다. 유물산포지는 자라마을에서 남쪽으로 500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하는 야산(107.6m)의 동쪽사면부와 골짜기 사이의 구릉일대이다. 현재 밭으로 경작되고 있으며 회청색경질토기편이 수습되었다.
    참고문헌 : 신자료

    13. 新安 者羅里 李鎬俊不忘碑 (신안 자라리 이호준불망비)
    소 재 지 : 안좌면 자라리 자라마을
    시 대 : 1872년
    종 류 : 비갈
    유적현황 : 자라도 선착장 길가에 있는 농협창고 옆에 위치하고 있다. 비의 전면에 ‘觀察使李公鎬俊永世不忘碑’라 새겨져 있고, 뒷면에 건립년도(1872년)가 새겨져 있다. 비의 규모는 높이 116cm, 너비 41cm, 두께 18cm이다. 이호준의 불망비는 자라도 뿐 아니라 하의면 옥도(1873년), 암태면(1873년), 신의면 상태서리에서도 확인된다. 이러한 내용으로 보아 자라도의 이호준불망비 또한 하의도 농민운동과 관련이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참고문헌 : 목포대학교 도서문화연구소 2005,『도서 문화유적 지표조사 및 자원화 연구5 -안좌ㆍ팔금면 편-』.

    14. 新安 者羅里 者羅祭堂 (신안 자라리 자라제당)
    소 재 지 : 안좌면 자라리 자라마을
    시 대 : 미상
    종 류 : 민속유적
    유적현황 : 자라마을에서는 매년 정월 초사흘날에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는 '당제'를 지냈다. 제장은 마을 동남쪽 ‘당네메’라 불리는 곳에 있는 숲이다. 원래 대나무숲이었다고 전해지나, 현재는 후박나무가 군집을 이루고 있으며, 숲 안에 1칸의 시멘트당집이 있다. 제의가 중단된 지는 30여년이 넘었으나, 현재 남아있는 당집은 10여 년 전에 주민들의 합의로 재건한 것이다.
    참고문헌 : 신자료

    15. 新安 如屹里 如屹遺物散布地 (신안 여흘리 여흘유물산포지)
    소 재 지 : 안좌면 여흘리 여흘마을
    시 대 : 청동기ㆍ삼국
    종 류 : 유물산포지
    유적현황 : 유물산포지는 대리마을 남쪽과 인접한 나지막한 구릉(22.8m)일대에 해당한다. 이곳은 마을 북쪽에 위치하는 ‘큰산(148.8m)’이 남쪽으로 뻗어 내려와 나지막한 구릉들이 마을을 감싸고, 서쪽으로 ‘포수제들’과 동쪽으로 ‘만들’이 넓게 형성되어 있다. 현재 논과 밭으로 경작되고 있으며 유물은 석부편, 회청색경질토기편이 수습되었다.
    참고문헌 : 신자료

    16. 新安 如屹里 김봉흥家屋 (신안 여흘리 김봉흥가옥)
    소 재 지 : 안좌면 여흘리 287(여흘마을)
    시 대 : 1930년경
    종 류 : 주거건축
    유적현황 : 마래, 안방, 정지, 모방의 4실로 이루어진 형식에 정지와 모방 측면으로 외양간(헛간)과 갓방이 겹집형식으로 추가되어 실이 4실에서 6실로 늘어나는 형식이다. 비교적 경제규모가 큰 중농가일수록 이러한 유형이 많이 나타난다. 현재 지붕은 개량되었으나 내부구조는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참고문헌 : 목포대학교 도서문화연구소 2005,『도서 문화유적 지표조사 및 자원화 연구5 -안좌ㆍ팔금면 편-』.

    17. 新安 如屹里 安敎翼孝子碑 (신안 여흘리 안교익효자비)
    소 재 지 : 안좌면 여흘리 여흘마을
    시 대 : 1942년
    종 류 : 비갈
    유적현황 : 여흘리 마을회관에서 여흘제일교회로 향하는 길목에 위치한다. 전면에 ‘安孝子孝靖公碑銘’이라 새겨져 있으며 규모는 높이 123cm, 너비 48cm, 두께 16cm이다. 안교익(安敎翼)의 자(字)는 익현(益現), 호(號)는 약헌(藥軒)으로 어려서부터 부모님을 잘 섬겼으며, 어머니가 병환으로 세상을 떠나자 3년 동안 시묘살이를 하였다. 이러한 효행사실을 기념하기 위해 1942년 건립된 비이다.
    참고문헌 : 신자료

    18. 新安 如屹里 如屹保護樹 (신안 여흘리 여흘보호수)
    소 재 지 : 안좌면 여흘리 산163(여흘마을)
    시 대 : 미상
    종 류 : 노거수
    유적현황 : 여흘마을 북서쪽으로 수십 기의 팽나무가 일렬로 서 있다. 여흘마을의 우실로 이 중 20기는 보호수로 지정되어 있다. 우실이 언제 조성되었는지는 전하지 않으며, 마을사람들은 우실을 사람이 함부로 들어갈 수 없고, 나무도 훼손할 수 없는 구역으로 신성하게 여겼다.
    참고문헌 :

    19. 新安 如屹里 如屹祭堂 (신안 여흘리 여흘제당)
    소 재 지 : 안좌면 여흘리 여흘마을
    시 대 : 미상
    종 류 : 노거수ㆍ민속유적
    유적현황 : 여흘마을에서는 정월 초하루에, 동네에 사고나 병고 없이 한 해가 잘 넘어가게 해달라고 기원하는 ‘동제’, ‘당제’를 거행한다. 제장은 마을회관이 위치한 넓은 공터로, 둘레 175cm, 수령 100년인 구수나무(주민들은 ‘당산나무’로 부른다) 한 그루가 서있다. 제는 진설ㆍ소지 등으로 간단하게 진행된다. 4~5년 전까지 설날에 내려오는 귀성객들과 함께 제를 지냈으나, 현재는 지내지 않는다.
    참고문헌 : 목포대학교 도서문화연구소 2005,『도서 문화유적 지표조사 및 자원화 연구5 -안좌ㆍ팔금면 편-』.

    20. 新安 南江里 오재단家屋 (신안 남강리 오재단가옥)
    소 재 지 : 안좌면 남강리 129(진변마을)
    시 대 : 1900년대
    종 류 : 주거건축
    유적현황 : 진변마을에 위치한다. 안방, 마래, 소청, 정지, 사랑(찬장), 갓방, 모방, 고방, 나무청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정지 전면에 모방이 있으며, 소청과 정지가 한실로 이루어져 있다. 그리고 갓방 옆으로 마래설치가 설치되어 있으며, 찬장이 매우 넓은 것이 특징이다. 현재 옛집 옆에 새집을 지어서 살고 옛집은 원형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참고문헌 : 목포대학교 도서문화연구소 2005,『도서 문화유적 지표조사 및 자원화 연구5 -안좌ㆍ팔금면 편-』.

    21. 新安 南江里 진변ㆍ원두祭堂 (신안 남강리 진변ㆍ원두제당)
    소 재 지 : 안좌면 남강리 진변ㆍ원두마을
    시 대 : 미상
    종 류 : 노거수ㆍ민속유적
    유적현황 : 진변ㆍ원두마을에서는 매년 정월 초하루에 마을의 번영, 질병ㆍ재앙방지와 나쁜 사람 퇴치, 단결을 목적으로 하는 ‘당제’를 지낸다. ‘당’ 또는 ‘당산’이라 불리는 제당은 진변마을에서 원두마을로 넘어가는 소로의 언덕에 위치하며, 7~8그루의 소나무가 숲을 이루는 곳이었으나 현재 3그루의 소나무만 남아있다. 제는 진설ㆍ헌작ㆍ재배ㆍ구축ㆍ소지 순으로 진행되며, 보통 12시경 끝이 나고, 당에서 내려오면 거릿제를 지냈다. 현제 제의는 지내지 않는다.
    참고문헌 : 목포대학교 도서문화연구소 2005,『도서 문화유적 지표조사 및 자원화 연구5 -안좌ㆍ팔금면 편-』.

    22. 新安 大尺里 윤방하家屋 (신안 대척리 윤방하가옥)
    소 재 지 : 안좌면 대척리 456(대척마을)
    시 대 : 1900년대
    종 류 : 주거건축
    유적현황 : 마래, 안방, 정지, 모방의 4실로 이루어진 형식에 정지와 모방 측면으로 외양간(헛간)과 갓방이 겹집형식으로 추가되어 실이 4실에서 6실로 늘어나는 형식이다. 모방 옆으로 갓방이 설치되어 있으며 정지가 매우 넓다. 비교적 경제규모가 큰 중농가일수록 이러한 유형이 많이 나타난다. 현재 옛집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참고문헌 : 목포대학교 도서문화연구소 2005,『도서 문화유적 지표조사 및 자원화 연구5 -안좌ㆍ팔금면 편-』.
    23. 新安 大尺里 大尺碑群 (신안 대척리 대척비군)
    소 재 지 : 안좌면 대척리 대척마을
    시 대 : 1855~1971년
    종 류 : 비갈
    유적현황 : 대척마을 충혼탑 양옆으로 8기의 비가 서있다. 안좌면 읍동리와 마진리 일대에 있던 비들을 옮겨온 것이다. 비의 규모와 건립연대는 다음과 같다.

    번호 / 비명 / 연대 / 규모(높이, 너비, 두께 cm) / 비고
    1 / 郡守宋公祥熙愛民不忘碑 / 1903년 / 160, 49, 21 /
    2 / 牧使朴公奎東恤民不忘碑 / 1855년 / 150, 48, 21 /
    3 / 風憲崔碩獻恤民不忘碑 / 1880년 / 114, 43, 16 /
    4 / 行都護府使趙公義林永世不忘碑 / 1889년 / 140, 45, 13 /
    5 / 京監尹公泓定恤民不忘碑 / 1899년 / 150, 47, 15 /
    6 / 內需司次知金公圭復永世不忘碑 / 1899년 /140, 47, 16 /
    7 / 學生金公擎淑之不忘碑 / 1861년 / 112, 48, 22 /
    8 / 고김종석잔교구축유공불망비 / 1971년 / 87, 33, 12.5 /

    참고문헌 : 목포대학교 도서문화연구소 2005,『도서 문화유적 지표조사 및 자원화 연구5 -안좌ㆍ팔금면 편-』.

    24. 新安 大尺里 大尺保護樹 (신안 대척리 대척보호수)
    소 재 지 : 안좌면 대척리 산86(대척마을)
    시 대 : 미상
    종 류 : 노거수
    유적현황 : 대척마을의 북서쪽으로 팽나무가 일렬로 서있고, 중간에 시누대가 들어서 있다. 대척마을로 부는 북서풍을 막아주며 마을의 액운을 막아주는 우실로, 이 중 팽나무 15기가 보호수로 지정되어 있다. 예전에는 우실 중간에 당집이 있었다고 전하나, 현재는 남아 있지 않다.
    참고문헌 :

    25. 新安 所谷里 所谷保護樹 (신안 소곡리 소곡보호수)
    소 재 지 : 안좌면 소곡리 산10(소곡마을)
    시 대 : 조선
    종 류 : 노거수ㆍ민속유적
    유적현황 : 소곡마을 뒷산 능선에 있다. 높이 15m, 둘레 4.8m의 팽나무 1기로, 소곡마을 당제의 제의대상이기도 하다. 마을 사람들은 팽나무를 ‘당나무’라고 부른다. 소곡마을에서는 매년 정월 초사흘에 마을의 평안과 풍년, 번영과 질병ㆍ재앙 방지를 기원하는 ‘당지’ 혹은 ‘당제산신령’을 모신다. 제는 헌작ㆍ재배ㆍ뫼올림ㆍ축문ㆍ소지ㆍ음복 순으로 진행되며, 제가 끝난 후 초사흩날은 동네회의를 하고 주민들끼리 제물을 나누어 먹는다. 현재는 제의가 행해지지 않는다.
    참고문헌 :

    26. 新安 所谷里 두리祭堂 (신안 소곡리 두리제당)
    소 재 지 : 안좌면 소곡리 두리마을
    시 대 : 미상
    종 류 : 노거수ㆍ민속유적
    유적현황 : 두리마을에서는 매년 음력 정월 초하루에 마을번영, 질병방지, 후손번창을 기원하는 ‘당제’ 혹은 ‘서낭제’로 부르는 마을공동체 의례를 거행한다. 당은 마을 동쪽에 있는300여 년생 소나무 숲이며, 당신(堂神)은 ‘당할아버지’, ‘당할머니’, ‘아들’이다. 정월 초하루 밤11시에 제가 시작되어 제관이 당신(堂神)의 연령순에 따라 소지를 올리면 제가 끝이 난다. 당에서 제가 끝나면 마을 사거리에 전염병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거러지’를 놓는다고 한다. 현재 제의는 거행되지 않고 있다.
    참고문헌 : 목포대학교 도서문화연구소 2005,『도서 문화유적 지표조사 및 자원화 연구5 -안좌ㆍ팔금면 편-』.

    27. 新安 朴只里 朴只祭堂 (신안 박지리 박지제당)
    소 재 지 : 안좌면 박지리 박지마을
    시 대 : 미상
    종 류 : 노거수ㆍ민속유적
    유적현황 : 박지마을에서는 매년 음력 정월 보름에 당제를 거행한다. 제장은 마을 뒷산(137.9m)에 위치한 300~400년생 팽나무 고목과 그 밑의 토석제단(土石祭壇)이다. 팽나무는 당신의 신체로 ‘당할매’ 또는 ‘할머니당’으로 불린다. 박지마을의 당제는 소를 잡는 관습으로 인근에 널리 알려져 있다. 당제를 지낼 때 평시에는 소 한 마리를 잡으며 흉년에는 송아지를 잡기도 하고 장에서 머리만 사오기도 한다. 제는 진설ㆍ헌주ㆍ재배ㆍ소지ㆍ음복의 순으로 이뤄지며, 음복 후에는 마을회의가 이루어지고 그 뒤에 걸궁(농악)이 행해진다. 10여 년 전부터 제의가 중단되고 제당의 흔적만이 남아있다.
    참고문헌 : 목포대학교 도서문화연구소 2005,『도서 문화유적 지표조사 및 자원화 연구5 -안좌ㆍ팔금면 편-』.

    28. 新安 半月里 半月保護樹 (신안 반월리 반월보호수)
    소 재 지 : 안좌면 반월리 산237(반월마을)
    시 대 : 조선
    종 류 : 노거수ㆍ민속유적
    유적현황 : 반월마을 입구에 들어서면 팽나무, 버드나무, 동백나무 등의 고목 20여기가 군집을 이루고 있으며, 이 중 팽나무 3기가 보호수로 지정되어 있다. 대표적인 팽나무의 수령은 305년, 규모는 높이 15m, 나무둘레는 3.5m이다. 이 나무들과 함께 1m 정도 높이의 돌담장 안에 마을사람들이 ‘당나무’라고 부르는 팽나무 수기가 있는데, 정월 15일에 행해지는 반월마을 당제의 ‘할매당’이었으나, 현재는 제의가 행해지지 않는다.
    참고문헌 :

    29. 新安 舊垈里 舊垈祭堂 (신안 구대리 구대제당)
    소 재 지 : 안좌면 구대리 구대마을
    시 대 : 미상
    종 류 : 노거수ㆍ민속유적
    유적현황 : 마을에서는 매년 음력 정월 초이튿날에 ‘당제’ 또는 ‘신당제’를 지낸다. 제당은마을 동쪽 어귀에 있는 팽나무로, ‘당할아버지’, ‘할머니’를 모시다가 ‘하늘영감’을 함께 모신다. ‘하늘영감’은 구대리 마을에 좋은 일을 많이 한 영스러운 영감으로 할멈, 자식이 없다. 제는 진설ㆍ재배ㆍ소지 순으로 진행된다. 구대리는 이러한 당제를 지내는 것이 미신이라 하여 20여년 전부터 지내지 않는다.
    참고문헌 : 목포대학교 도서문화연구소 2005,『도서 문화유적 지표조사 및 자원화 연구5 -안좌ㆍ팔금면 편-』.

    30. 新安 新村里 치동支石墓群 (신안 신촌리 치동지석묘군)
    소 재 지 : 안좌면 신촌리 치동마을
    시 대 : 청동기
    종 류 : 지석묘
    유적개요 : 치동마을 내에 위치하고 있다. 이곳은 남쪽에 자리한 나지막한 구릉의 북쪽 말단부로 치동저수지와 인접한 곳이다. 지석묘는 저수지와 바로 접하고 있으며, 총 3기가 동-서 방향 1열로 배치되어 있다. 대표적인 3호 지석묘 상석형태는 방형이며, 규모는 장축길이 405cm, 단축길이 260cm, 두께 110cm 이다. 상석의 하단에는 지석 3개가 노출되어 있다.
    참고문헌 : 木浦大學校博物館 1987,『新安郡의 文化遺蹟』.

    31. 新安 大芋里 大芋支石墓 (신안 대우리 대우지석묘)
    소 재 지 : 안좌면 대우리 대우마을
    시 대 : 청동기
    종 류 : 지석묘
    유적개요 : 대우마을 박국화씨 댁 돌담장과 시멘트담장 사이에 1기의 지석묘가 위치한다. 지석묘는 마을길과 담을 조성하면서 훼손되었으나 상석은 비교적 잘 남아 있다. 하부구조는 파괴된 것으로 보인다. 지석묘의 평면형태는 장방형이며, 규모는 장축길이 230cm, 단축길이 219cm, 두께 55cm 이다.
    참고문헌 : 신자료

    32. 新安 大芋里 고산월家屋 (신안 대우리 고산월가옥)
    소 재 지 : 안좌면 대우리 550(대우마을)
    시 대 : 1900년대
    종 류 : 주거건축
    유적개요 : 전형적인 신안도서지방 민가구조를 보인다. 마래ㆍ안방ㆍ정지ㆍ모방의 4실로 이루어진 형식에 헛간과 고방이 추가되었다. 정지 전면 모퉁이에 모방이 있으며, 모방은 정지 안쪽으로 반쯤 침투되어 있어 완전한 ‘一’자형을 이루고 있다. 상대적으로 정지공간이 축소되고, 구조적으로 단순화되었다. 현재 사람이 거주하지 않아 훼손이 심하다.
    참고문헌 : 목포대학교 도서문화연구소 2005,『도서 문화유적 지표조사 및 자원화 연구5 -안좌ㆍ팔금면 편-』.

    33. 新安 大芋里 김정순(최태섭)家屋 (신안 대우리 김정순(최태섭)가옥)
    소 재 지 : 안좌면 대우리 343(대우마을)
    시 대 : 1934년
    종 류 : 주거건축
    유적개요 : 전형적인 신안도서지방 민가구조를 보인다. 마래, 안방, 정지, 모방의 4실로 이루어진 형식이다. 큰방과 마래사이 대청이 설치되었고 정지 전면 출입구를 툇마루로 개수하였다. 마래에는 별도의 제사 공간과 고방이 구획되어 있다. 정지 전면 모퉁이에 모방이 있으며, 모방은 정지 안쪽으로 반쯤 침투되어 있어 완전한 ‘一’ 자형을 이루고 있다. 상대적으로 정지공간이 축소되고, 구조적으로 단순화되었다. 현재 원형 그대로 보존되고 있다.
    참고문헌 : 목포대학교 도서문화연구소 2005,『도서 문화유적 지표조사 및 자원화 연구5 -안좌ㆍ팔금면 편-』.

    34. 新安 大芋里 정상호家屋 (신안 대우리 정상호가옥)
    소 재 지 : 안좌면 대우리 535(대우마을)
    시 대 : 1950년대
    종 류 : 주거건축
    유적개요 : 전형적인 신안도서지방 민가구조를 보인다. 마래, 안방, 정지, 모방의 4실로 이루어진 형식이다. 큰방과 마래사이에 대청이 설치되어 있다. 정지 전면 모퉁이에 모방이 있으며, 모방은 정지 안쪽으로 반쯤 침투되어 있어 완전한 ‘一’ 자형을 이루고 있다. 상대적으로 정지공간이 축소되는 반면, 구조적으로는 단순화되고 있다. 현재 원형 그대로 보존되고 있다.
    참고문헌 : 목포대학교 도서문화연구소 2005,『도서 문화유적 지표조사 및 자원화 연구5 -안좌ㆍ팔금면 편-』.

    35. 新安 大芋里 비화支石墓群 (신안 대우리 비화지석묘군)
    소 재 지 : 안좌면 대우리 비화마을
    시 대 : 청동기
    종 류 : 지석묘
    유적개요 : 비화마을에서 북서쪽으로 100m 정도 떨어져 있는 구릉의 경사면에 위치한다. 이곳은 마을 뒷편에 자리한 야산(149.9m)의 남동쪽사면 말단부에 형성된 구릉으로 바다가 한눈에 조망되는 곳이다. 현재 지석묘군은 동-서 방향 1열로 배치되어 있고, 주변에는 잡목과 수풀이 무성하게 우거져 있다. 대표적인 2호 지석묘 상석형태는 타원형이며, 규모는 장축길이 182cm, 단축길이 115cm, 두께 55cm 이다.
    참고문헌 : 木浦大學校博物館 1987,『新安郡의 文化遺蹟』.

    36. 新安 方月里 方月遺物散布地 (신안 방월리 방월유물산포지)
    소 재 지 : 안좌면 방월리 방월마을
    시 대 : 청동기
    종 류 : 유물산포지
    유적개요 : 방월마을에서 서쪽으로 500m 정도 떨어져 있는 나지막한 구릉일대(40m)에 위치한다. 유물은 1980년대 초에 구릉을 관통하여 지나가는 길을 확장하다가 유구석부, 편평단인석부, 양인석부가 출토되어 광주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다. 현재 이곳은 소나무가 울창하게 우거져 있으며, 일부면적은 밭으로 이용되고 있다. 유물산포지의 동쪽에는 방월지석묘군②와 방월지석묘군③이 자리하고 있다.
    참고문헌 : 木浦大學校博物館 1987,『新安郡의 文化遺蹟』.

    37. 方月里 支石墓 (방월리 지석묘)
    소 재 지 : 안좌면 방월리 186-3(방월마을)
    시 대 : 청동기
    종 류 : 지석묘ㆍ민속유적
    유적개요 : 방월마을 입구의 공동우물 주변에 위치한다. 마을주민에 의하면 지석묘는 ‘칠성바위’라고 부르며, 매년 정월 15일에 거행되던 방월마을 당제의 ‘하당’이기도 하였다. 총 7기의 지석묘가 있었다고 전해지나 현재는 4기만이 남아 있다. 4기 중 1호 지석묘는 보호책 안에 있으며, 나머지 3기는 주변 민가에 자리한다. 대표적인 1호 지석묘 상석형태는 방형이며, 규모는 장축길이 375cm, 단축길이 260cm, 두께 100cm 이다. 상석의 하단에는 지석 3개가 노출되어 있다.
    참고문헌 : 木浦大學校博物館 1987,『新安郡의 文化遺蹟』.

    38. 新安 方月里 方月支石墓群① (신안 방월리 방월지석묘군①)
    소 재 지 : 안좌면 방월리 방월마을
    시 대 : 청동기
    종 류 : 지석묘
    유적개요 : 방월마을에서 남동쪽으로 1km 정도 떨어진 안좌서부교회 뒤편의 솔밭 속에 위치한다. 이곳은 동쪽에 위치한 야산(158m)의 말단부에 형성된 나지막한 구릉지로 서쪽에는 바다가 내려다보인다. 지석묘군은 총 17기로 남동-북서방향 2열로 군집을 이루고 있다. 대표적인 1호 지석묘 상석의 평면형태는 타원형이며, 규모는 장축길이 246cm, 단축길이 130cm, 두께 58cm 이다.
    참고문헌 : 木浦大學校博物館 1987,『新安郡의 文化遺蹟』.

    39. 新安 方月里 方月支石墓群② (신안 방월리 방월지석묘군②)
    소 재 지 : 안좌면 방월리 방월마을
    G P S : N34° 45′ 06.3″ E126° 05′ 18.4″
    시 대 : 청동기
    종 류 : 지석묘
    유적개요 : 방월마을에서 남쪽으로 200m 정도 떨어진 밭에 위치한다. 이곳은 동쪽과 서쪽의 야산 사이에 형성된 곡간지로 1980년대 후반까지 소나무숲이었으나 90년대에 들어오면서 밭으로 개간되었다. 지석묘군은 총 15기가 확인되나 13기는 북동-남서방향으로 군집을 이루고 있으며, 나머지 2기는 북서쪽으로 50m 정도 떨어져 있다. 대표적인 7호 지석묘 상석의 평면형태는 방형이며, 규모는 장축길이 280cm, 단축길이 210cm, 두께 90cm 이다. 상석의 하단에는 지석 4개가 기둥과 같은 형태로 상석을 받치고 있다.
    참고문헌 : 木浦大學校博物館 1987,『新安郡의 文化遺蹟』.

    40. 新安 方月里 方月支石墓群③ (신안 방월리 방월지석묘군③)
    소 재 지 : 안좌면 방월리 방월마을
    시 대 : 청동기
    종 류 : 지석묘
    유적개요 : 방월마을에서 서쪽으로 150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한다. 이곳은 방월마을의 서쪽편에 자리한 나지막한 구릉의 말단부로 밭으로 이용되고 있다. 마을주민에 의하면 총 5기의 지석묘가 있었다고 전해지나 현재는 1기만이 남아 있다. 4기는 마을길 조성과 밭으로 개간되면서 훼손되었다고 한다. 지석묘의 상석형태는 장방형이며, 규모는 장축길이 300cm, 단축길이 260cm, 두께 60cm 이다.
    참고문헌 : 木浦大學校博物館 1987,『新安郡의 文化遺蹟』.

    41. 新安 方月里 方月支石墓群④ (신안 방월리 방월지석묘군④)
    소 재 지 : 안좌면 방월리 방월마을
    시 대 : 청동기
    종 류 : 지석묘
    유적개요 : 방월마을에서 동쪽으로 100m 정도 떨어져 있는 야산(151m)의 말단부에 위치한다. 이곳은 방월마을과 서쪽의 해안이 한눈에 바라보이는 곳으로 밭으로 활용되었으나 현재는 갈대숲이 무성하게 자라있다. 대표적인 1호 지석묘 상석형태는 장방형이며, 규모는 장축길이 438cm, 단축길이 300cm, 두께 150cm 이다. 상석의 하단에는 지석 2개가 노출되어 있다.
    참고문헌 : 신자료

    42. 新安 方月里 方月祭堂 (신안 방월리 방월제당)
    소 재 지 : 안좌면 방월리 방월마을
    시 대 : 미상
    종 류 : 민속유적
    유적개요 : 방월마을에서는 매년 정월 15일에 ‘당지’라고 부르는 마을공동체 의례가 행해졌다. 제는 상당과 하당 두 곳에서 거행되었는데, 상당은 마을 뒷산 ‘당바우’ 정상에 있고, 하당은 마을내에 있는 지석묘(방월리 지석묘)이다. 상당은 높이 55~110cm의 돌담이 쌓여 있으며, 돌담 안 북쪽에는 토석제단(土石祭壇)이 있다. 하당은 ‘칠성바위’라 불리는 지석묘로, 원래는 7기가 있었으나 현재는 4기만이 남아있다. 상당에는 ‘당할머니’를 모시고, 하당에는 ‘당할아버지’와 ‘칠성신’을 모신다. 당제는 1970년대부터 거행되지 않고 있다.
    참고문헌 : 목포대학교 도서문화연구소 2005,『도서 문화유적 지표조사 및 자원화 연구5 -안좌ㆍ팔금면 편-』.

    43. 新安 柿西里 拾個里不忘碑ㆍ拾貳個里不忘碑 (신안 시서리 십개리불망비ㆍ십이개리불망비)
    소 재 지 : 안좌면 시서리 오동마을
    시 대 : 1941ㆍ1959
    종 류 : 비갈
    유적개요 : 오동마을 입구 도로변에 3개의 비가 서있다. ‘拾個里施惠不忘碑’라 명문된 비는 오동마을 인근 10개리(시서리, 마진리, 방월리, 읍동리, 마명리, 대우리, 구대리, 한운리, 신촌리, 창마리) 주민들이 1941년에 교각을 세우고, 이를 기념하기 위해 세운 것이다. 비의 규모는 높이 93cm, 너비 42cm, 두께 12.5cm이다. ‘拾貳個里施惠不忘碑’ 역시 오동마을 인근 12개리 주민들이 1959년에 2개의 다리를 건립하고 난후 세운 비이다. 비의 규모는 높이 70cm, 너비 28cm, 두께 13cm이다. 이 2기의 비와 함께 마을회관 건립에 도움을 준 공적을 기념하기위한 ‘尹柄柱功德碑’(1963년)가 함께 있다.
    참고문헌 : 목포대학교 도서문화연구소 2005,『도서 문화유적 지표조사 및 자원화 연구5 -안좌ㆍ팔금면 편-』.

    44. 新安 邑洞里 邑洞支石墓群 (신안 읍동리 읍동지석묘군)
    소 재 지 : 안좌면 읍동리 읍동마을
    시 대 : 청동기
    종 류 : 지석묘
    유적개요 : 읍동마을의 북서쪽에 자리한 나지막한 구릉사면부에 위치한다. 이곳은 읍동마을에서 신촌리로 가는 고개마루로 주변에 해발 100m 정도의 야산이 병풍처럼 둘러쌓여 있고 넓은 논 경지와 밭이 조성되어 있다. 지석묘는 총 5기가 확인되나 밭 경작으로 인하여 대부분 묻혀있거나 훼손되었다. 대표적인 1호 지석묘 상석형태는 방형이며, 규모는 장축길이 160cm, 단축길이 160cm, 두께 75cm 이다. 상석의 하단에는 지석 1개가 노출되어 있다.
    참고문헌 : 신자료

    45. 新安 邑洞里 邑洞遺物散布地① (신안 읍동리 읍동유물산포지①)
    소 재 지 : 안좌면 읍동리 읍동마을
    시 대 : 삼국~고려
    종 류 : 유물산포지
    유적개요 : 읍동마을의 북서쪽에 자리한 나지막한 구릉사면부에 위치한다. 이곳은 읍동마을에서 신촌리로 가는 고개마루로 주변에 해발 100m 정도의 야산이 병풍처럼 둘러쌓여 있고 넓은 논 경지와 밭이 조성되어 있다. 유물은 적갈색연질토기편, 회청색경질토기편, 청자편등이 확인되었다. 또한 맞은편 구릉에는 읍동유물산포지②가 자리하고 있다.
    참고문헌 : 木浦大學校博物館 1987,『新安郡의 文化遺蹟』.

    46. 新安 邑洞里 邑洞遺物散布地② (신안 읍동리 읍동유물산포지②)
    소 재 지 : 안좌면 읍동리 읍동마을
    시 대 : 삼국
    종 류 : 유물산포지
    유적개요 : 읍동마을의 남쪽에 자리한 안산(132.2m)의 북쪽사면부에 위치한다. 이곳은 안산에서 흘러내려와 형성된 곡간평지부로 읍동마을이 한눈에 조망되는 곳이다. 현재 밭으로 대부분 이용되고 있으며, 맞은편 구릉에는 읍동유물산포지①가 자리하고 있다. 유물은 적갈색연질토기편, 회청색경질토기편 등이 확인되었다.
    참고문헌 : 신자료

    47. 新安 邑洞里 邑洞遺物散布地③ (신안 읍동리 읍동유물산포지③)
    소 재 지 : 안좌면 읍동리 읍동마을
    시 대 : 청동기~삼국
    종 류 : 유물산포지
    유적개요 : 읍동마을의 남동쪽에 위치한 야산(58.4m)의 서쪽사면부에 위치한다. 이곳의 남쪽에는 안좌종합고등학교가 자리하고 있으며, 현재 대부분 밭으로 경작되고 있다. 또한 유물산포지의 동쪽 끝에는 읍동고분이 위치하고 있다. 유물은 석착, 적갈색연질토기편, 회청색경질토기편등이 확인되었다.
    참고문헌 : 신자료

    48. 新安 邑洞里 邑洞古墳 (신안 읍동리 읍동고분)
    소 재 지 : 안좌면 읍동리 읍동마을
    시 대 : 삼국
    종 류 : 고분
    유적개요 : 읍동마을 사거리에서 남동쪽으로 700m 정도 떨어진 야산(58.4m)의 남쪽 사면 끝자락에 위치한다. 마을주민들에 의하면 이곳을 ‘고려장’이라 부르며, 총 3~4기의 고분이 있었다고 한다. 현재는 2기만이 확인되며, 고분의 좌측에는 안좌종합고등학교가 자리하고 있다. 대표적인 1호분의 규모는 길이 17.5m, 너비 16.2m, 높이 2m로 봉분의 중앙에는 석실이 위치하고 있다.
    참고문헌 : 木浦大學校博物館 1987,『新安郡의 文化遺蹟』.

    49. 新安 邑洞里 김운기家屋 (신안 읍동리 김운기가옥)
    소 재 지 : 안좌면 읍동리 1388(읍동마을)
    시 대 : 1800년대 말
    종 류 : 주거건축
    조사개요 : 전형적인 신안도서지방 민가구조를 보인다. 초가지붕으로 마래, 안방, 정지, 모방의 4실로 이루어진 형식이다. 모방이 전면의 퇴주선(退柱線)보다 약 1m 정도 앞쪽으로 돌출되어 있어 ‘一’ 자형 평면 이지만 ‘ㄱ' 자형을 연상케 한다. 후면과 우측면은 퇴칸으로 이용되고 있으며 고방, 마루, 헛간 등이 부설되어 있다. 현재 원형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참고문헌 : 목포대학교 도서문화연구소 2005,『도서 문화유적 지표조사 및 자원화 연구5 -안좌ㆍ팔금면 편-』.

    50. 新安 邑洞里 고순례家屋 (신안 읍동리 고순례가옥)
    소 재 지 : 안좌면 읍동리 읍동마을
    시 대 : 1900년대 초
    종 류 : 주거건축
    조사개요 : 전형적인 신안도서지방 민가구조를 보인다. 초가지붕으로 마래, 안방, 정지, 모방의 4실로 이루어진 형식이다. 모방이 전면의 퇴주선(退柱線)보다 약 1m 정도 앞쪽으로 돌출되어 있어 ‘一’ 자형 평면 이지만 ‘ㄱ' 자형을 연상케 한다. 마래 옆으로 따로 실이 부설되어 있다. 현재 사람이 살고 있지 않으나, 원형그대로 보존되어있다.
    참고문헌 : 목포대학교 도서문화연구소 2005,『도서 문화유적 지표조사 및 자원화 연구5 -안좌ㆍ팔금면 편-』.

    51. 新安 邑洞里 이길동家屋 (신안 읍동리 이길동가옥)
    소 재 지 : 안좌면 읍동리 939(읍동마을)
    시 대 : 1900년대 초~중
    종 류 : 주거건축
    조사개요 : 마래, 안방, 정지, 모방의 4실로 이루어진 형식에 정지와 모방 측면으로 외양간(헛간)과 갓방이 겹집형식으로 추가되어 실이 4실에서 6실로 늘어나는 형식이다. 모방이 전면의 퇴주선(退柱線)보다 약 1m 정도 앞쪽으로 돌출되어 있어 ‘一’ 자형 평면 이지만 ‘ㄱ' 자형을 연상케 한다. 정지 우측에 소청, 갓방의 겹집 구성으로 되어 있으며, 비교적 규모가 큰 편이다. 현재 원형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참고문헌 : 목포대학교 도서문화연구소 2005,『도서 문화유적 지표조사 및 자원화 연구5 -안좌ㆍ팔금면 편-』.

    52. 金煥其 生家 (김환기 생가)
    소 재 지 : 안좌면 읍동리 955(읍동마을)
    시 대 : 1910년
    종 류 : 주거건축ㆍ탄생지
    유적개요 : 수화(樹話) 김환기(金煥其, 1913~1974)선생이 태어난 곳이다. 선생은 1934년 일본에서 대학을 다니며, 추상미술운동에 참여하였다. 1946년부터 1949년까지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교수로 재직하면서 신사실파(新寫實派)를 조직하여 창작활동을 하였다. 선생은 동양의 직관과 서양의 논리를 결합한 한국적 특성과 현대성을 겸비한 그림을 구상과 추상을 통해서 실현시킨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서양화가이다. 이 가옥은 1910년 백두산에서 자란 나무를 이곳까지 운반하여 건축한 북방식 ‘ㄱ’자형 집으로, 김환기 선생이 일본유학을 마치고 돌아와 머무는 동안 작품활동을 했던 곳이기도 하다.
    참고문헌 : 신안군 2006,『우리고장의 향토문화유적』.


    53. 新安 邑洞里 金海金氏孝烈閣 (신안 읍동리 김해김씨효열각)
    소 재 지 : 안좌면 읍동리 읍동마을
    시 대 : 1890년
    종 류 : 유교건축
    유적개요 : 효열각은 마을 남쪽에 위치한 안산(132.2m)의 북쪽사면에 위치한다. 2동의 목조건물이 ‘ㄱ’자형으로 배치되어 있는 구조로, 외삼문의 오른쪽에 위치한 효열각에 孝子 金擎河와 烈女 密城朴氏(金炳翰의 妻)가 봉안되어 있고, 외삼문의 정면에 위치한 효열각에 金雲其의 부인 礖山宋氏가 봉안되어 있다. ‘金擎河孝子閣’은 정면 2칸 측면 1칸의 팔작지붕으로, 오른쪽에 「효자각」이라 새겨진 편액이 걸려있고, 왼쪽에「열녀각」이라 쓰여진 편액이 걸려있다. 효자각 내부에는 현판 3기가 걸려 있는데,「孝子贈童蒙敎官朝奉大夫金海金公擎河之閭」(上之二十六己丑, 1889년, 고종 26년 命旌, 二十七 庚寅年, 1890년 命職),「童蒙敎官靑松公金孝子旌閭序」(金奎弘 書),「上樑文」(1890년, 崔丙斗 撰) 등이다. 열녀각 내부에는「贈戶曹參判金海金公炳翰妻烈女贈貞夫人密城朴氏閭命旌」이라 새겨진 현판이 걸려있다. 그리고 외삼문 정면에 礖山宋氏가 봉안되어 있는 열녀각은 정면 2칸 측면 1칸의 팔작지붕 건물이다. 역시 2개의 공간으로 구분되어 있으며, 오른쪽에「열녀각」이 왼쪽에「효열각」이라 새겨진 편액이 각각 걸려있다. 효열각에는 2개의 현판이 걸려있고, 열녀각에는 현판이 걸려있지 않다. 효열각 내부에 걸려있는 현판은「贈莊陵參奉金海金公雲其妻孝烈贈宣人礖山宋氏閭」(上之二十八年, 1891년, 고종 28년 4월 命職),「孝烈婦礖山宋氏表閭記」(庚辰年, 尹甯求 撰)등이다. 한편 礖山宋氏의 열녀각 왼편에 ‘金炳癸記念碑’가 있다.
    참고문헌 : 목포대학교 도서문화연구소 2005,『도서 문화유적 지표조사 및 자원화 연구5 -안좌ㆍ팔금면 편-』.

    54. 新安 邑洞里 金炳癸記念碑 (신안 읍동리 김병계기념비)
    소 재 지 : 안좌면 읍동리 읍동마을
    시 대 : 1920년
    종 류 : 비갈
    유적현황: 김해김씨효열각(金海金氏孝烈閣)의 여산송씨(礖山宋氏)열녀각 왼편에 있다. 비의 전면 중앙에 ‘前參奉金炳癸愛民記念碑’라고 새겨져 있고, 전면 좌우에 4언 절구의 행적이 기록되어 있다. 농사에 도움을 준 공적을 기리기 위해 1920년(庚申十二月), 안좌면유지일동(安佐面有志一同)에 의해 건립되었다. 비의 규모는 높이 161cm, 너비 52cm, 두께 20cm이다.
    참고문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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