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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   [임자면] 임자면 문화유산 신안문화원 2008/2/12 5153


    [임자면] 임자면의 문화유산
    출처 : 목포대학교박물관, 2008 《신안군문화유적분포지도》 신안군

    1. 新安 鎭里 鎭里遺物散布地 (신안 진리 진리유물산포지)
    소 재 지 : 임자면 진리 진리마을
    시 대 : 삼국
    종 류 : 유물산포지
    조사개요 : 임자선착장에서 면소재지 방향으로 0.8km 정도 가면 진리마을에 들어선다. 유물산포지는 진리마을의 동쪽에 위치하고 있는 나지막한 구릉(55.5m)의 남쪽 사면부(20~40m)에 자리하고 있다. 현재 대부분 밭으로 경작되고 있으며, 밭 주변을 중심으로 경질토기편들이 확인되었다. 그리고 유물산포지의 남서쪽으로 임자면사무소가 위치하고 있다.
    참고문헌 : 목포대학교박물관 2005,『신안군 임자면 지방상수도시설 사업지역내 문화유적 지표조사보고』.

    2. 新安 鎭里 荏子鎭址 (신안 진리 임자진지)
    소 재 지 : 임자면 진리 진리마을
    시 대 : 조선
    종 류 : 군영
    조사개요 : 조선 숙종 37년(1711) 순무어사(巡撫御使)의 서계(書啓)에 따라 설진(設鎭)된 첨사진(僉使鎭)이다. 임자진에 관해 지리지 및 진지를 중심으로 살펴보면, 그 내용은 설진연대 및 소재지, 관원 수 만을 기록하고 있을 뿐 진성의 규모나 시설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이 없다.『임자진지』의 기록을 살펴보면, 첨사가 감목관을 겸하였으며, 나주목장 소관의 자은도 토지 및 인민을 임자진에 소속시켰다. 헌종 40년(1714)에는 우수영의 계문(啓聞)에 의해 육지의 함평, 영광 소재의 진하산면을 임자진에 소속시키고 자은도는 나주목장에 환속시켰다. 주변 세 섬을 중봉(대둔산)에서 조망하였고 성첩(城堞)은 없다. 전선(戰船)은 서자전선 1척, 병선 1척, 사후선 2척이며, 전병선소재(戰兵船所載) 주사군 209명, 기나졸 41명, 관군 30명, 진무 30명, 사령 15명이 있다. 한편『임자진지도(荏子鎭地圖)』에 의하면 동헌, 내아, 작청, 사령청, 장청, 군기고, 화약고, 저미치고(儲米置庫), 세곡고(稅穀庫), 삼문, 선소 등의 관사와 함께 임자진 남쪽산에는 봉대가 표시되어 있는데 이곳은 현재 대둔산으로 추정된다. 한편『경종실록(景宗實錄)』3년(1723) 7월초에 전라감사 황이장 신설된 각진에 대한 존파이해를 논하는 가운데 임자진에 대한 기사의 일부가 전하는데, 그 내용의 핵심은 배가 정박하기에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으므로 혁파함은 불가하다는 주장이다. 이 기사내용을 통하여 임자진은 방수의 요해처였음을 알 수 있다.
    - 임자진은 설진 당시부터 진성에 대한 축성은 없었던 것으로 생각되며, 현존하는 유구 또한 남아 있지 않다. 임자도의 진도(鎭島), 지금의 진리가 당시의 진지였다.
    참고문헌 : 木浦大學校博物館 1987,『新安郡의 文化遺蹟』.

    3. 新安 鎭里 金亨培救恤紀念碑 (신안 진리 김형배구휼기념비)
    소 재 지 : 임자면 진리 진리마을
    시 대 : 1931년
    종 류 : 비갈
    조사개요 : 이 비는 전 의관(議官) 김형배의 공덕비로 1931년 섬 주민들이 공의 치적을 널리 알리기 위해 건립한 것이다. 비의 전면에 ‘前議官金亨培救恤紀念碑’라고 새겨져 있고, 공의 공적이 4행 15자가 새겨져 있다. 비의 내용은 ‘공은 기유년 3~4월, 춘궁기에 가난한 주민들이 목숨을 연명할 수 있도록 구휼하였으며, 계축년에는 주민들의 세금 납부를 위해 찬조금 500원을 후원하였다. 이에 섬 주민 모두가 김공의 구휼을 크게 칭송하였다.’ 라고 되어 있다. 비의 규모는 높이 158cm, 너비 50cm, 두께 20cm 이다.
    참고문헌 : 목포대학교박물관 2006,『신안군 임자면 하수처리시설 공사구간 문화유적지표조사보고』.

    4. 新安 鎭里 鎭里保護樹 (신안 진리 진리보호수)
    소 재 지 : 임자면 진리 466-2(진리마을)
    시 대 : 조선
    종 류 : 노거수
    조사개요 : 수종은 팽나무이며, 수령 300년이다. 수고 18m, 둘레 3.6m로, 현재 여름철 피서목으로 이용되고 있다. 과거 이곳에서 음력 정월 대보름에 당제를 지냈으나 한국전쟁 무렵에 폐지되었다. 당제는 팽나무에 깃들여 있는 ‘당할머니’께 마을의 평안과 무사를 기원하기 위한 제의로 제관이 밤 11시부터 12시까지 거행하였다. 자식 없는 사람들이 동산바위나 노거수에 기원한 후 자식을 얻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참고문헌 : 木浦大學校博物館 1987,『新安郡의 文化遺蹟』.

    5. 新安 水島里 水島祭堂 (신안 수도리 수도제당)
    소 재 지 : 임자면 수도리 수도마을
    시 대 : 미상
    종 류 : 민속유적
    조사개요 : 수도리는 임자 본도에서 동쪽으로 2km 지점에 위치하고 있는 섬이다. 수도마을의 당제는 매년 정월 대보름에 마을로부터 북서쪽으로 100m 정도 떨어진 제당에서 마을의 평안과 풍년을 비는 제의를 지냈다고 한다. 이곳은 수도에 처음 입도한 봉씨가 선녀를 기다렸던 자리라는 전설이 서려 있는 곳이기도 하다. 그러나 당제의 제의과정이나 순서를 아는 분은 생존에 있지 않다. 현재 당제는 1950년대부터 제를 지내지 않고 있으며, 제당에는 방형의 돌담만이 남아 있다. 규모는 길이 740cm, 너비 500cm, 높이 180cm 정도이다. 이 돌담은 ‘장조단’으로 불리우기도 한다. ‘장조단’은 사도세자의 빈 위패를 모시던 장소로 철마가 출토되기도 하였다.
    참고문헌 : 목포대학교 도서문화연구소 2006,『도서 문화유적 지표조사 및 자원화 연구8 -임자면 편-』.

    6. 新安 道贊里 掛吉保護樹 (신안 도찬리 괘길보호수)
    소 재 지 : 임자면 도찬리 산83-2(괘길마을)
    시 대 : 조선
    종 류 : 노거수ㆍ민속유적
    조사개요 : 괘길마을 입구로부터 북쪽으로 100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한다. 수종은 소나무이고, 수령 500년, 수고 20m, 둘레 340cm 정도이다. 이곳에 있는 소나무숲에서는 20여년 전까지 당제를 지냈다고 한다. 또한 마을주민들에 의하면 아이를 못 가진 부부가 와서 당산목에 제를 모시면 아이가 생긴다는 전설이 서려 있기도 하다.
    참고문헌 :
    7. 新安 掛吉里 掛吉甕器窯址 (신안 괘길리 괘길옹기요지)
    소 재 지 : 임자면 도찬리 괘길마을
    시 대 : 미상
    종 류 : 요업
    유적현황 : 괘길마을의 북서쪽에 자리 잡고 있는 산(37m)의 동쪽 산사면 끝자락에 옹기요지가 있었다고 한다. 인근에 있는 전장마을의 전장포는 새우젓으로 유명한데 이 새우젓을 담는 옹기를 주로 생산 했던 것으로 보인다. 현재는 밭에 물을 대기위한 덤벙을 만들면서 파괴되어 남아있지 않다. 유물은 요벽편과 옹기편이 소량 확인되었다. 주변의 경작지가 모두 모래흙인 것과는 달리 이곳의 땅은 흙이 황토라서 태토를 채집하는데 용이했을 것으로 보인다.
    참고문헌 : 신자료

    8. 新安 道贊里 道贊保護樹 (신안 도찬리 도찬보호수)
    소 재 지 : 임자면 도찬리 산133(도찬마을)
    시 대 : 조선
    종 류 : 노거수ㆍ민속유적
    조사개요 : 도찬리 노인회관에서 북쪽으로 250m 정도 떨어진 나지막한 구릉 상에 위치한다. 수종은 소나무이며, 수령은 200년, 수고 20m, 둘레 325cm 정도이다. 현재 이곳에서는 매년 정월 초하루날 당제를 지내고 있다. 당제는 마을회의에서 유사를 뽑고 마을 주민이 공동으로 준비하여 제를 모시고 있다.
    참고문헌 :

    9. 新安 大機里 晋州姜氏烈婦碑閣 (신안 대기리 진주강씨열부비각)
    소 재 지 : 임자면 대기리 삼막마을
    시 대 : 1922년
    종 류 : 유교건축
    조사개요 : 대기리 삼막마을 마을회관 옆에 위치하고 있는 이 비각은 진주강씨 부인의 열행을 기념하기 위해 건립한 것이다. 전면 1칸, 측면 1칸의 석조 비각 안에 ‘烈婦孺人晋州姜氏之碑’라 쓰여진 비가 있다. 비의 규모는 높이 140cm, 너비 47cm, 두께 18cm이다. 진주강씨는 임자도 대기리에 거주하였던 김현순(金顯詢)과 혼인하였으나 얼마 되지 않아서 남편이 병을 얻어 세상을 떠났다. 강씨 부인은 3년 동안 남편 상을 치른 이후 시부모 봉양하고, 어린 아이들을 정성을 다하여 보살폈다. 이에 마을 주민들은 ‘하늘이 내린 효부’라 칭송하고, 석축에 새겨 후세사람들에게 귀감이 되도록 하였다.
    참고문헌 : 목포대학교박물관 2006,『신안군 임자면 하수처리시설 공사구간 문화유적지표조사보고』.

    10. 新安 大機里 三幕保護樹 (신안 대기리 삼막보호수)
    소 재 지 : 임자면 대기리 252(삼막마을)
    시 대 : 조선
    종 류 : 노거수
    조사개요 : 삼막경로당에서 서쪽으로 80m 정도 떨어진 마을 길가에 있는 느티나무 3그루가 보호수로 지정되어 있다. 수령은 300년이며, 수고 13m, 둘레 450cm에 이른다. 수관이 화려하다.
    참고문헌 :

    11. 新安 大機里 大機支石墓群① (신안 대기리 대기지석묘군①)
    소 재 지 : 임자면 대기리 대기마을
    시 대 : 청동기
    종 류 : 지석묘
    조사개요 : 대기리는 면소재지에서 북서쪽으로 3km 정도 떨어진 지점에 자리하고 있으며, 대기마을의 앞쪽으로 넓은 농경지가 형성되어 있다. 지석묘는 대기마을의 서쪽에 위치하는 대망산(56m)의 남쪽사면(10m)에 2기가 있다. 현재 이곳은 밭으로 경작되고 있으며, 주변에는 ‘의령남씨세장산비’가 위치하고 있다. 1호 지석묘는 비를 세울 때 원위치에서 움직인 듯 상석이 비스듬히 경사져 있고, 2호는 보존상태가 양호하다. 대표적인 1호 지석묘의 규모는 장축길이 290cm, 단축길이 180cm, 두께 60cm 정도이며, 하부구조로 지석 3개가 노출되어 있다.
    참고문헌 : 木浦大學校博物館 1987,『新安郡의 文化遺蹟』.

    12. 新安 大機里 大機支石墓群② (신안 대기리 대기지석묘군②)
    소 재 지 : 임자면 대기리 대기마을
    시 대 : 청동기
    종 류 : 지석묘
    조사개요 : 대기리는 면소재지에서 북서쪽으로 3km 정도 떨어진 지점에 자리하고 있으며, 대기마을의 앞쪽으로 넓은 농경지가 형성되어 있다. 대기지석묘군②는 대기지석묘군①에서 북쪽으로 200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한다. 이곳은 대망산으로 불리는 야산의 사면부로 지석묘군은 의령남씨와 김해김씨선산 경계지점 서쪽에 자연석과 함께 5기가 남-북으로 열을 이루며 확인되었다. 현재는 잡목과 수풀이 우거져 있어 접근이 어렵다.
    참고문헌 : 木浦大學校博物館 1987,『新安郡의 文化遺蹟』.

    13. 新安 大機里 大機遺物散布地 (신안 대기리 대기유물산포지)
    소 재 지 : 임자면 대기리 대기마을
    시 대 : 삼국
    종 류 : 유물산포지
    조사개요 : 대기리는 면소재지에서 북서쪽으로 3km 정도 떨어진 지점에 자리하고 있으며, 대기마을의 앞쪽으로 넓은 농경지가 형성되어 있다. 유물산포지는 대기마을의 서쪽에 위치하며, 지석묘 가군이 자리하고 있는 낮은 구릉 상(10~15m)에 위치하고 있다. 또한 유물산포지의 남쪽에는 궁계들로 불리는 넓은 들이 펼쳐져 있다. 현재 이곳은 밭으로 경작되고 있으며, 유물은 경질토기편들이 확인되었다.
    참고문헌 : 목포대학교박물관 2006,『신안군 임자면 하수처리시설 공사구간 문화유적지표조사보고』.

    14. 新安 大機里 大興遺物散布地 (신안 대기리 대흥유물산포지)
    소 재 지 : 임자면 대기리 대흥마을
    시 대 : 삼국
    종 류 : 유물산포지
    조사개요 : 대기리는 면소재지에서 북서쪽으로 3km 떨어진 지점에 자리하고 있으며, 대흥마을의 앞쪽으로 넓은 농경지가 형성되어 있다. 유물산포지는 대흥마을의 북동쪽에 자리하고 있는 농경지에 넓게 분포하고 있으며, 대흥패총이 유물산포지내에 위치하고 있다. 유물은 경질토기편과 패각류 등이 확인되었다.
    참고문헌 : 목포대학교박물관 2006,『신안군 임자면 하수처리시설 공사구간 문화유적지표조사보고』.

    15. 新安 大機里 大興貝塚 (신안 대기리 대흥패총)
    소 재 지 : 임자면 대기리 대흥마을
    시 대 : 삼국
    종 류 : 패총
    조사개요 : 대기리는 면소재지에서 북서쪽으로 3km 떨어진 지점에 자리하고 있으며, 대흥마을의 앞쪽으로 넓은 농경지가 형성되어 있다. 패총은 대흥마을 박판일씨 댁 마당으로부터 마을회관 앞까지 분포하고 있었으나, 마을포장공사로 인하여 대부분 파괴되었다. 현재는 마을입구부에 자리하고 있는 밭에 패각류와 토기편들만이 확인되고 있다.
    참고문헌 : 木浦大學校博物館 1987,『新安郡의 文化遺蹟』.

    16. 新安 大機里 朱氏三孝子碑閣 (신안 대기리 주씨삼효자비각)
    소 재 지 : 임자면 대기리 대흥마을
    시 대 : 미상
    종 류 : 유교건축
    조사개요 : 대흥리 경로당에서 남서쪽으로 200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하는 신안 주씨 3형제인 주낙인(朱洛仁)ㆍ주낙신(朱洛信)ㆍ낙율(朱洛律) 삼효자의 행적을 기리기 위하여 건립한 비각이다. 비문에 ‘3형제는 어려서부터 성품이 순후하고, 서로 화목하며, 부모님에 대한 효성이 지극하였다. 그런데 부친이 병을 얻어 자리에 눕자, 3형제는 단을 쌓아 놓고 아버님의 쾌유를 하늘에 기도하였다. 또 손가락을 단지하여 수혈함으로써 부친의 목숨을 연명하도록 정성을 다하였다. 이런 효행은 3형제의 나이 겨우 약관에 불과할 때의 일이다. 이에 “마을 사람들이 한 집안에서 3명의 효자가 나왔다고 칭송하였다.”라는 내용이 기록되어있다. 비문은 14행 39자인데, 정두칠이 서(書)하고, 양회갑이 찬(撰)하였다. 비의 규모는 높이 150cm, 너비 52cm, 두께 26cm 이다. 비각은 정면 1칸, 측면 1칸의 팔작지붕이며, 기둥은 석축으로 되어 있다. 외삼문은 석축으로 출입구 형태만 만들어져 있고, 그 주변에 철재 담장이 둘러져 있다.
    참고문헌 : 목포대학교박물관 2006,『신안군 임자면 하수처리시설 공사구간 문화유적지표조사보고』.

    17. 新安 大機里 校洞貝塚 (신안 대기리 교동패총)
    소 재 지 : 임자면 대기리 교동마을
    시 대 : 삼국
    종 류 : 패총
    조사개요 : 교동패총은 구산지석묘에서 남쪽으로 400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한다. 또한 패총의 남쪽에는 임자중학교와 임자중앙초등학교가 자리하고 있다. 이곳은 교동마을의 남창식씨 집 뒤에 위치하며, 패각층은 많은 부분이 유실되어 보존상태가 양호하지 못하다. 기존조사에서 석기 1점이 수습되었다.
    참고문헌 : 木浦大學校博物館 1987,『新安郡의 文化遺蹟』.

    18. 新安 大機里 回山支石墓① (신안 대기리 회산지석묘군①)
    소 재 지 : 임자면 대기리 회산마을
    시 대 : 청동기
    종 류 : 지석묘
    조사개요 : 회산마을은 해발 100m 미만 구릉의 곡간지 사이에 형성된 마을이다. 지석묘는 곡간지에 위치하며, 마을주민들은 ‘당제바위’또는 ‘당제할머니’로 부르고 있다. 평면형태는 장방형이며, 규모는 장축길이 250cm, 단축길이 140cm, 두께 65cm 정도이다. 또한 상석의 상면에는 성혈흔적이 관찰되며, 지석 1개가 확인된다.
    참고문헌 : 신자료

    19. 新安 大機里 回山支石墓② (신안 대기리 회산지석묘군②)
    소 재 지 : 임자면 대기리 회산마을
    시 대 : 청동기
    종 류 : 지석묘
    조사개요 : 회산마을은 해발 100m 미만 구릉의 곡간지 사이에 형성된 마을이다. 지석묘는 권백주씨 집 마당에 위치하고 있다. 평면형태는 장타원형이며, 규모는 장축길이 520cm, 단축길이 180cm, 두께 120cm 정도이다. 지석 1개가 확인된다.
    참고문헌 : 신자료

    20. 新安 大機里 回山遺物散布地① (신안 대기리 회산유물산포지①)
    소 재 지 : 임자면 대기리 회산마을
    시 대 : 삼국
    종 류 : 유물산포지
    조사개요 : 회산마을은 면소재지의 북서쪽에 자리하며, 나지막한 구릉(23.5m)을 끼고 마을이 형성되어 있다. 또한 이곳은 대광해수욕장으로 들어가는 길목에 자리하고 있다. 유물산포지는 마을의 북쪽 구릉사면(5m)에 위치하며, 현재 대부분 밭으로 쓰이고 있다. 유물은 경질토기편, 기와편 등을 확인하였다.
    참고문헌 : 목포대학교박물관 2006,『신안군 임자면 하수처리시설 공사구간 문화유적지표조사보고』.

    21. 新安 大機里 回山遺物散布地② (신안 대기리 회산유물산포지②)
    소 재 지 : 임자면 대기리 회산마을
    시 대 : 삼국
    종 류 : 유물산포지
    조사개요 : 회산마을은 면소재지의 북서쪽에 자리하며, 나지막한 구릉(23.5m)을 끼고 마을이 형성되어 있다. 유물산포지는 마을의 남서쪽에 위치하며, 회산유물산포지①과는 남서쪽으로 300m 정도 떨어져 있다. 현재 밭으로 대부분 경작되고 있으며, 유물은 경질토기편 등이 확인되었다. 그리고 유물산포지 앞에는 영사재가 자리하고 있다.
    참고문헌 : 목포대학교박물관 2006,『신안군 임자면 하수처리시설 공사구간 문화유적지표조사보고』.

    22. 新安 大機里 永思齋 (신안 대기리 영사재)
    소 재 지 : 임자면 대기리 회산마을
    시 대 : 1942년
    종 류 : 유교건축
    조사개요 : 김해김씨 문중에서 1942년에 건립한 문중재각이다. 회산 김두후가 상량문을 지었고, 부동 이학재는 ‘영사재기(永思齋記)’를 지었다. 초창기 영사재를 건립할 때 기와를 목포에서 구입해와서 사용하였다고 한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건물이다. 또 재각 뒤편에 ‘道林壇享碑’, ‘松沙奇先生’, ‘農山金先生’을 추모하는 비 3기가 위치한다.
    참고문헌 : 목포대학교박물관 2006,『신안군 임자면 하수처리시설 공사구간 문화유적지표조사보고』.

    23. 新安 大機里 回山祭堂 (신안 대기리 회산제당)
    소 재 지 : 임자면 대기리 회산마을
    시 대 : 미상
    종 류 : 민속유적
    조사개요 : 회산마을에서는 음력 보름에 당제를 모신다. 당할아버지, 할머니께 제를 드리는데 한분은 마을에 있고 한분은 장동에 있다. 회산에 있는 당할머니를 모시는 자리는 마을회관으로 가는 오른쪽 밭에 있는 바위이다(회산지석묘군①). 바위를 부르는 이름은 ‘당제할머니’, ‘당제바위’라 부르고 있다. 이 바위는 지석묘로 평면형태는 장방형이며, 하부에는 지석 1개가 확인된다. 제의는 마을에서 깨끗하다고 생각되는 사람을 제 지내기 3일전에 선정하여 몸을 정결하게 하여 집에서 기거하다가 1월 14일 12시 이전에 제를 모시로 간다. 제는 12시를 기준으로 마감을 하며, 제가 끝나면 당제바위에 금줄을 쳐놓는다. 오전 11시경에는 마을주민들이 당제할머니 있는 곳에서 금고를 치면서 절을 올리고 술도 올린다. 금고는 ‘당제굿’ 또는 ‘당사굿’ 이라고 부른다. 이러한 절차로 당제를 진행 후 다시 굿을 시작하여 집집마다 돌아다니면서 마을의 평안과 풍요를 기원한다. 장동에는 ‘당할아버지’를 모시는데 제의를 지내는 장소를 당집 또는 당사라고 부른다. 현재 당집은 남아 있지 않으며, 제의도 50년 전부터 지내지 않고 있다고 한다.
    참고문헌 : 목포대학교 도서문화연구소 2006,『도서 문화유적 지표조사 및 자원화 연구8 -임자면 편-』.

    24. 新安 光山里 南陽洪氏烈婦碑 (신안 광산리 남양홍씨열부비)
    소 재 지 : 임자면 광산리 광산마을
    시 대 : 1954년
    종 류 : 비갈
    조사개요 : 남양홍씨 부인의 열행을 기리기 위한 비로 광산마을회관과 인접해 있다. 비의 전면에 ‘烈婦南陽洪氏碑’라고 새겨져 있고, 뒷면에 장손 임동선(任東宣)이 쓴 홍씨부인의 열행내용 12행 29자가 새겨져 있다. 홍씨부인은 풍천임씨 임영재(任英宰)의 부인으로, 혼인 후 시부모를 봉양하면서 생활하던 중 남편이 병을 얻어 자리에 눕자, 백방으로 약을 구하고 정성을 다하여 간호하였다. 이러한 부인의 열행을 기리기 위해 무안지역 유림들이 열부로 천거하였고, 풍천임씨 문중에서 부인의 행적을 비에 새겼다. 건립연도는 1954년이며, 비의 규모는 높이 115cm, 너비 40cm, 두께 20cm 이다.
    참고문헌 : 목포대학교박물관 2006,『신안군 임자면 하수처리시설 공사구간 문화유적지표조사보고』.

    25. 新安 光山里 光山祭堂 (신안 광산리 광산제당)
    소 재 지 : 임자면 광산리 광산마을
    시 대 : 미상
    종 류 : 민속유적
    조사개요 : 광산마을에서는 음력 정월 보름 14일 날 당제를 모셨다. 제당은 마을로부터 북쪽으로 100m 정도 떨어진 산의 경사면에 위치하며, 당할머니를 모시고 제를 지내고 있다. 당제는 마을회의에서 매년 유사를 뽑고 제 지내기 2~3일 전부터 준비를 한다. 제의 때는 마을의 평안과 풍년을 기원하고 제의과정은 삼작의 순으로 진행한다. 현재 제의는 계속 지내고 있으며, 제당터는 15년 전에 옮겼다고 한다. 본래의 제당터는 현재 자리에서 좌측으로 500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다. 제당에는 ‘당할머니’라고 쓰여져 있는 비가 세워져 있으며, 규모는 높이 1m, 너비 30cm, 두께 15cm 정도이다.
    참고문헌 : 목포대학교 도서문화연구소 2006,『도서 문화유적 지표조사 및 자원화 연구8 -임자면 편-』.

    26. 大屯山城址 (대둔산성지)
    소 재 지 : 임자면 삼두리 산15(대둔산)
    시 대 : 조선
    종 류 : 성곽
    조사개요 : 이흑암리 대둔산(280m) 정상에 위치한 테뫼식 산성이다. 대둔산성은 대체로 朝鮮 肅宗 37년(1711) 임자진이 설진될 당시에 초축된 것으로 추정된다.《荏子鎭地圖》에는 烽台로 표시되어 있어 본래 이 산성은 봉태를 겸한 焞台地였을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학자에 따라 대둔산성이 삼국~고려시대 성지의 유적으로 비정하고 있으나, 산성 축조방식인 ‘물려쌓기’방법으로 볼 때 조선시대로 보는 것이 타당할 것으로 보인다. 현재 이곳은 헬기장으로 거의 파괴되어 성벽이 부분적으로만 남아 있다. 잔존 성벽은 남북 20m, 동서 10m로 평면형태는 타원형이다. 성벽은 가로 50cm, 세로 25cm 정도의 할석을 이용하여 俠築法에 의해 축석한 산성의 둘레는 100m 정도이다. 또한 부분적으로 암벽을 이용한 곳도 있다. 그리고 대둔산성의 서쪽으로 재원도, 동쪽으로는 지도, 남쪽으로는 바다, 북동쪽으로 진리(진리:조선시대 임자진지)가 위치하고 있는데 大屯山頂에서는 이들 섬들이 한눈에 조망된다.
    참고문헌 : 木浦大學校博物館 1987,『新安郡의 文化遺蹟』.

    27. 新安 在遠里 在遠支石墓 (신안 재원리 재원지석묘)
    소 재 지 : 임자면 재원리 재원마을
    시 대 : 청동기
    종 류 : 지석묘
    유적개요 : 재원마을의 북쪽에 위치하고 있다. 이곳은 봉산에서 흘러내려와 형성된 나지막한 구릉의 끝자락으로 바다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곳이다. 현재 밭으로 경작되고 있으며, 주변에는 지석묘 상석으로 보이는 석재들이 분포하고 있다. 지석묘의 상석형태는 장타원형이며, 규모는 장축길이 410cm, 단축길이 250cm, 두께 130cm 정도이다. 상석의 하단에는 지석 1개가 노출되어 있다.
    참고문헌 : 신자료

    28. 新安 在遠里 在遠遺物散布地 (신안 재원리 재원유물산포지)
    소 재 지 : 임자면 재원리 재원마을
    시 대 : 삼국
    종 류 : 유물산포지
    유적개요 : 재원마을의 북쪽에 위치하고 있다. 이곳은 봉산에서 흘러내려와 형성된 나지막한 구릉이 병풍처럼 둘러싸인 곳으로 바다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곳이다. 현재 밭으로 경작되고 있으며, 유물산포지내에는 재원지석묘가 자리하고 있다. 유물은 적갈색연질토기편, 회청색경질토기편, 자기편 등이 확인되었다.
    참고문헌 : 신자료

    29. 新安 在遠里 在遠祭堂 (신안 재원리 재원제당)
    소 재 지 : 임자면 재원리 재원마을
    시 대 : 미상
    종 류 : 민속유적
    조사개요 : 재원도는 임자면 소재지에서 서쪽으로 9k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다. 섬의 평면형태는 북으로 길게 뻗어 있는 형상이다. 재원마을에서는 정월 14일에 제관 1명과 집사 1명이 마을의 평안과 풍년을 기원하며 당제를 지냈다. 현재 제의는 1960년대부터 지내지 않으나 제를 모셨던 제당터는 남아 있다. 제당터는 상당터와 하당터로 구분되어 있다. 상당(①)은 ‘당할아버지’라 불리며, 봉산 정상부 아래(166.5m)에 위치하고 있다. 현재 이곳은 동백나무 수십그루가 심어져 있으며, 안쪽에는 제당터의 흔적으로 보이는 돌담이 남아 있다. 돌담은 훼손되어 정확한 규모나 형태 등은 파악할 수 없다. 하당(②) ‘당할머니’라 불리고 있으며, 마을 중앙에 위치한 팽나무군이다. 팽나무는 총 7그루가 있었으나 2006년 여름 태풍으로 인하여 한그루가 부러지고 6그루가 서있다.
    참고문헌 : 木浦大學校博物館 1987,『新安郡의 文化遺蹟』.

    30. 新安 二黑岩里 趙熙龍謫居址 (신안 이흑암리 조희룡적거지)
    소 재 지 : 임자면 이흑암리 이흑암마을
    시 대 : 1851년
    종 류 : 위인선현유적
    유적현황 : 마을회관 앞뜰에 조희룡 기념비가 세워져 있으며, 마을 뒤편에 경작되고 있는 밭둑에 ‘우봉 조희룡 선생 적거지’라 새겨진 표지석이 세워져있다. 이는 조희룡의 업적을 기념하기 위하여 2005년도에 건립되었다. 기념비 전면에는 ‘조선문인화의 영수 조희룡 기념비’라 새겨져 있으며, 뒷면에는 조희룡의 생애와 업적이 새겨져있다. 우봉 조희룡(1789-1866)은 조선후기의 시서화 삼절, 수예론을 강조함으로써 매화도와 묵란도에서 고유의 화풍을 확립하였다. 1847년 벽오시사(碧梧時社)를 결성하여 후배화가들을 이끌고 문인화단의 중심인물로 활동하면서 중국 남종 문인화로부터 이념미를 배제하고 조선적 감각을 가미하여 ‘조선 문인화’의 독창적 예술세계를 열었다. 조희룡은 1851년 전라남도 신안군 임자도 이흑암리에 유배된 후 유배지에 지은 오두막에 ‘만구음관’이라는 편액을 걸고 왕성한 작품 활동을 통해 그림세계를 완성하였고 이 지역 출신 홍재욱과 주준석을 제자로 양성하였다. 현재 적거지의 흔적은 남아있지 않으며 그 터만을 확인하여 표지석을 세워놓았다.
    참고문헌 : 목포대학교 도서문화연구소 2006,『도서 문화유적 지표조사 및 자원화 연구8 -임자면 편-』.

    31. 新安 二黑岩里 花山支石墓群 (신안 이흑암리 화산지석묘군)
    소 재 지 : 임자면 이흑암리 화산마을
    시 대 : 청동기
    종 류 : 지석묘
    조사개요 : 화산마을은 임자면의 남서쪽에 위치한다. 지석묘군은 화산마을 김기지씨 집 마당과 뒷 터에 지석묘 3기가 있다. 일명「개구리돌」이라고 불리는 상석은 6.25전쟁 당시에 깨졌다고 하는데 흔적을 확인할 수 없다. 1호는 김기지씨집 마당에 위치하며, 마당을 보수하면서 하부가 매몰되었다. 2호와 3호는 김기지씨 집 뒷 터에서 확인되며, 하부가 매몰되어 있다.
    참고문헌 : 木浦大學校博物館 1987,『新安郡의 文化遺蹟』.

    32. 華山壇 (화산단)
    소 재 지 : 임자면 이흑암리 123-1(화산마을)
    시 대 : 1916년
    종 류 : 비갈
    조사개요 : 화산단은 화산마을 뒤편 야산에 위치한다. 1916년 유림들이 선현을 추모하기 위해 사재를 출원하여 壇을 건립하였다. 창설 당시 이항로ㆍ기정진ㆍ김평묵 등을 배향하였으나, 1961년에 임행재ㆍ박종현ㆍ이학재 등을 추가로 배향하여 현재 6위가 봉안되어 있다. 관련유적으로는 화산단 앞에 <화산단향비>와 <화산단추향비>가 서 있다.
    참고문헌 : 목포대학교박물관 2006,『신안군 임자면 하수처리시설 공사구간 문화유적지표조사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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