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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   [장산면] 장산면 문화유산 신안문화원 2008/2/12 5073


    [장산면] 장산면의 문화유산
    출처 : 목포대학교박물관, 2008 《신안군문화유적분포지도》 신안군

    1. 長山島 들노래 (장산도 들노래)
    소 재 지 : 장산면 일원
    시 대 : 미상
    종 류 : 음악
    유적현황 : 장산도 들노래는 신안군 장산면의 여자들이 논일을 하면서 부르는 민요로 가락과 내용이 다른 지방의 노동요와 달리 경쾌하면서도 외로운 섬마을의 애수적인 한이 서려 있어 특이하다. 구성은 모를 찔 때 부르는 <모찌기 노래>, 모를 심을 때 부르는 <모내기소리>, 논에서 논매기를 할 때 부르는 <논매기 노래>, 논을 다 매고 돌아올 때 부르는 <길꼬냉이>로 되어 있다. 기능보유자는 전라남도 신안군 장산면 공수리 847번지의 강부자이며, 장산도 들노래 전수관이 장산면소재지 도창리 노거수림 뒤에 위치해있다. 전수관은 2002년 건립되었으며, 규모는 1동 471.45m (철근콘크리트조 2층)이다. 전수관 앞에는 노래비 1기가 세워져있다.
    참고문헌 : 목포대학교박물관 2003,『신안군 장산면 지방상수도시설 사업지역내 문화유적지표조사보고』.

    2. 新安 五音里 五音遺物散布地 (신안 오음리 오음유물산포지)
    소 재 지 : 장산면 오음리 오음마을
    시 대 : 청동기
    종 류 : 유물산포지
    유적현황 : 유물산포지는 오음마을 북쪽에 위치한 ‘오음산(208.2m)’의 남쪽 산사면에 위치한다. 북쪽에 위치한 ‘오음산(208.2m)’과 남쪽의 ‘토미산(95.0m)’ 사이에 마을이 자리하고, 동쪽으로는 간척된 ‘와사지들’이 형성되어 있다. 유물산포지는 마을의 북쪽과 오음산 사이의 밭 주변으로 1985년 조사에서 장석반암제의 석부가 수습되었다. 그러나 이번조사에서는 유물이 확인되지 않았다.
    참고문헌 : 목포대학교박물관 2003,『신안군 장산면 지방상수도시설 사업지역내 문화유적지표조사보고』.

    3. 新安 大里 대신터支石墓 (신안 대리 대신터지석묘)
    소 재 지 : 장산면 대리 대리마을
    시 대 : 청동기
    종 류 : 지석묘
    유적현황 : 지석묘는 대리 대신터 마을 북쪽 김창인씨 소유의 밭에 위치한다. 지석묘의 상석은 장축 470㎝, 단축 250㎝, 두께 95㎝로 타원형이다. 장축방향은 북서-동남이고 지석은 보이지 않는다. 기존조사 시 지석묘 부근에는 토기편과 자기편들이 흩어져 있었다고 하나 이번 조사에서는 지석묘와 관련된 유물은 확인할 수 없었다. 주민들에 의하면 이곳에 모두 7개의 지석묘가 있었다고 하나 현재는 1기만 남아있다.
    참고문헌 : 목포대학교 도서문화연구소 1985,『도서문화』제3집.

    4. 新安 大里 大里支石墓 (신안 대리 대리지석묘)
    소 재 지 : 장산면 대리 대리마을 산259-1(대리마을)
    시 대 : 청동기
    종 류 : 지석묘ㆍ민속유적
    유적현황 : 장산초등학교 서쪽 구릉에 있는 정씨 선산에 위치하고 있다. 상석만 노출되었는데 상석의 크기는 장축 530㎝, 단축 170㎝, 두께 50㎝의 마름모형이며, 장축방향은 남서-동북 방향이다. 하부는 노출되어 있어 훼손된 것으로 보이며 지석은 보이지 않는다. 현재는 잡초가 우거져 정확한 형태를 확인하기 어렵다. 마을주민의 말에 의하면 과거 이곳에서 당제를 지내기도 했으나 교회가 들어서면서 제를 그만두었다고 한다.
    참고문헌 : 목포대학교 도서문화연구소 1985,『도서문화』제3집.

    5. 新安 大里 大里遺物散布地ㆍ長山縣址 (신안 대리 대리유물산포지ㆍ장산현터)
    소 재 지 : 장산면 대리 대리마을
    시 대 : 삼국~고려
    종 류 : 유물산포지
    유적현황 : 유물산포지는 장산초등학교 맞은편에 넓게 개간되고 있는 논과 밭에 위치한다. 유물산포지는 남쪽에 형성된 대성산(196m)에서 뻗어 나온 산맥이 동서 양방향을 감싸고 있는 형태를 띠며 북쪽으로는 넓은 들이 형성되어 있다. 기존조사에서는 장산현터가 있던 곳으로 보고되었으며, 이번 조사에서는 적갈색연질토기편, 회청색경질토기편 등 삼국시대의 유물과 고려시대의 청자해무리굽완, 도기편, 기와편 등이 확인되고 있어 장산현터를 포함한 유물산포지로 정정하고자 한다. 또한 기존의 조사에서 ‘도창리 장산현터’로 보고되었으나 행정리가 대리로 되어 있어 이를 정정하여 ‘대리 유물산포지’로 명명하였다.
    참고문헌 : 목포대학교박물관 2003,『신안군 장산면 지방상수도시설 사업지역내 문화유적지표조사보고』.

    6. 新安 大里 김영택家屋 (신안 대리 김영택가옥)
    소 재 지 : 장산면 대리 458(대리마을)
    시 대 : 1815년
    종 류 : 주거건축
    유적현황 : 김영택가옥은 대리마을 내에 위치하고 있다. 본 가옥은 안채의 종도리에서 “嘉慶貳拾年乙亥十月初貳日癸丑時…”란 상량문이 발견되어 건축 연대가 純祖 15년(1815)으로 밝혀진 오래된 고가이다. 배치는 안채를 戌座辰向으로 앉혔다. 안채는 전후로 퇴를 둔 정면 5칸 규모의 비교적 큰 건물이다. 지붕은 현재 슬레이트이며, 이는 1981년에 초가에서 개량한 것이다. 평면형태는 좌측으로부터 차례로 마루ㆍ안방ㆍ정지를 배치하고 다시 정지 앞으로 모방을 드렸다. 마루는 2칸으로 비교적 크며 바닥에는 우물마루를 깔았다. 마루 뒤쪽의 퇴에는 고방 2개를 설치하였는데 안방쪽의 부분은 본래 툇마루가 놓여 졌던 곳이다. 모방은 정지 안으로 반 칸 정도 맞물려 들어가 있는데 이 부분도 최근에 넓힌 것이다. 구조는 2고주 5량가로 18×18㎝ 크기의 방주를 세우고 방형의 대들보를 걸었다. 도리는 종도리와 전면의 퇴주 위로만 장혀를 받힌 굴도리를 사용하였고 나머지는 납도리를 걸었다. 초석은 막돌초석을 사용하였고 기단은 현재 시멘트몰탈로 마감되어 있다. 이 밖에 본 가옥은 1999년 전면에 유리창을 설치하는 등 수리를 하였다. 또한 과거에는 안채의 전면 우측으로 사랑채를 배치하고 그 뒤로 측간채를 배치한 특별한 경우였으나 현재는 모두 허물어져 없는 상태이다. 현재 본 가옥에는 김영택의 모친 이금례(여 78세)씨가 홀로 거주하고 있다.
    참고문헌 : 木浦大學校博物館 1987,『新安郡의 文化遺蹟』.

    7. 新安 大里 頌德碑群 (신안 대리 송덕비군)
    소 재 지 : 장산면 대리 265-3(대리마을)
    시 대 : 1906ㆍ1909ㆍ1910ㆍ1911년
    종 류 : 비갈
    유적현황 : 송덕비는 대리마을에 위치하고 있다. 한말 기근이 심하게 들었을 때 주민들에게 선정을 베푼 사람들의 공덕을 기리기 위해 건립된 비이다. 총 5기가 세워져 있는데 이중
    張鎭邦頌德碑(1909, 1910) 2기, 張鎭伯頌德碑(1906, 1909, 1911)가 3기이다.
    비의 명칭과 규모는 다음과 같다.

    번호 / 비석명 / 연대 / 규모(높이, 너비, 두께 cm) / 비고
    1 / 張鎭邦頌德碑 / 1909년 / 170, 53, 18 /
    2 / 張鎭邦頌德碑 / 1910년 / 170, 53, 18 /
    3 / 張鎭伯不忘碑 / 1906년 / 130, 53, 19 /
    4 / 嘉善大父兼五衛將長公鎭伯之頌德碑 / 1909년 / 160, 53, 17 /
    5 / 嘉善大父兼五衛將長公鎭伯之頌德碑 / 1911년 / 170, 50, 17 /

    참고문헌 : 木浦大學校博物館 1987,『新安郡의 文化遺蹟』.

    8. 張柄俊墓 (장병준묘)
    소 재 지 : 장산면 대리 137-3(대리마을)
    시 대 : 1972년
    종 류 : 위인선현유적
    유적현황 : 장병준(1893~1972)은 장산면 대리에서 인동장씨 진섭과 하동정씨 사이의 4형제 중 맏아들로 태어났다. 1919년 3월 18일 무안에서 만세운동을 주도하여 일경의 체포령이 내리자 상해로 망명하여 임시정부 의정원 재무부차장으로 활약하였다. 1920년 군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국내로 잠입하여 3․1운동 1주년 기념식 때 유달산에 태극기를 꽂고 만세를 주동하다가 체포되어 3년간 옥고를 치렀다. 1927년 대한민국임시정부 의정원의원으로 선임되어 독립운동에 힘썼다. 광복 후에는 건국준비위원회 전남지부 부위원장, 한민당 광주지부장 등을 역임하면서 해방 조국의 통일과 민주화에 헌신하였다. 1972년 3월 16일 79세의 일기로 서거하였으며, 1980년 건국포장ㆍ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에 추서 되었다. 대리마을에 선생의 생가터가 복원되어 있으며, 기념비는 팽진리 축강마을 선착장에 세워져있다. 2006년에 유해가 국립묘지로 이장되었으며 현재는 빈 무덤이 남아있다.
    참고문헌 : 목포대학교박물관 2003,『신안군 장산면 지방상수도시설 사업지역내 문화유적지표조사보고』.

    9. 大里 고인돌 (대리 고인돌)
    소 재 지 : 장산면 대리 430(목에마을)
    시 대 : 청동기
    종 류 : 지석묘
    유적현황 : 지석묘는 대리 2구 삼방마을에서 목에마을로 가는 길 중간부에 있다. 현재 고광준씨 소유의 밭에 놓여 있는데, 상석은 남북방향이고 크기는 장축 365㎝, 단축 305㎝, 두께 80㎝의 부정원형을 이루고 있다. 남쪽은 땅에 닿고 북쪽은 지상에서 1.4m 높이로 들려 있다. 하부는 지석이 1개 받치고 있다. 최초 1985년 조사에서 남-북으로 2기가 있는 것이 보고되었으나 현재는 북쪽의 1기만이 남아 있다. 남쪽의 1기는 김현출 소유의 밭에 위치하였고 크기는 장축 200㎝, 단축 305㎝, 두께 50㎝로 상석의 형태는 원형으로 북쪽이 낮게 기울어져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으나 현재는 확인할 수 없다.
    참고문헌 : 목포대학교 도서문화연구소 1985,『도서문화』제3집.

    10. 新安 道昌里 道昌古墳群 (신안 도창리 도창고분군)
    소 재 지 : 장산면 도창리 도창마을
    시 대 : 삼국
    종 류 : 고분
    유적현황 : 장산면 면소재지에서 귀미산(95.0m)쪽으로 500m정도 가면 도로 좌측 구릉(72.0m)의 남측사면에 위치한다. 기존의 조사에서는 4~5기의 봉분이 확인되었으며 크기는 대략 직경 4~5m, 높이 1m 정도라고 보고되었다. 당시에 이들 봉분위에 석재가 노출되어 있어 삼국시대 석실분으로 추정된다. 현재는 밭을 경작하면서 봉분이 모두 삭토된 것으로 보인다. 유물은 적갈색연질토기편과 회청색경질토기편등이 확인된다.
    참고문헌 : 목포대학교 도서문화연구소 1985,『도서문화』제3집.

    11. 新安 道昌里 道昌遺物散布地 (신안 도창리 도창유물산포지)
    소 재 지 : 장산면 도창리 도창마을
    시 대 : 삼국~고려
    종 류 : 유물산포지
    유적현황 : 도창마을에서 장산중앙노인정 뒤편 우측으로 난 소로를 따라 올라가면 장산면KT지소가 있다. 유물산포지는 장산면KT지소가 있는 동쪽산기슭에 넓게 분포하고 있다. 동쪽에 형성된 浮鶴山(108.1m)에서 서쪽으로 뻗어 나온 산맥의 동쪽 산기슭으로 남쪽의 대성산 산맥과 맞닿아 있다. 유물산포지의 남서쪽 평지에는 도창마을이 자리잡고 있으며 도창마을과 두동마을 사이로 천이 흐르고 있다. 수습유물은 적갈색연질토기편, 회청색경질토기편, 기와편, 청자편 등이 있다. 현재는 민묘와 밭으로 이용되고 있다.
    참고문헌 : 신자료

    12. 新安 道昌里 道昌碑群 (신안 도창리 도창비군)
    소 재 지 : 장산면 도창리 도창마을
    시 대 : 1901ㆍ1906ㆍ1910년
    종 류 : 비갈
    유적현황 : 3기의 비는 도창마을 장산면 복지회관 맞은편 노거수림 내에 위치하고 있다. 2기는 불망비이고 1기는 마모가 심하여 확인이 불가능하다.
    ① 마모가 심하여 확인 불가능 : 1901년에 건립되었으며, 비의 규모는 높이 90㎝, 너비 48㎝, 두께 14㎝이다.
    ② 高時彦不忘碑 : 1906년에 건립되었다. 비의 전면에는 ‘景福宮五衛將高公時彦永世不忘碑’라 새겨져있으며, 공의 행적이 4언 절구로 기록되어있다. 비의 규모는 높이 163㎝, 너비 45㎝, 두께 16㎝이다.
    ③ 李容翊不忘碑 : 1910년에 건립되었다. 비의 전면에는 ‘內藏院卿臨時署理警部協辦李公容翊○德不忘碑’라 새겨져 있으며, 공의 행적이 4언 절구로 기록되어있다. 비의 규모는 높이 183㎝, 너비 52㎝, 두께 12㎝이다.
    참고문헌 : 목포대학교박물관 2003,『신안군 장산면 지방상수도시설 사업지역내 문화유적지표조사보고』.

    13. 新安 道昌里 최복순家屋 (신안 도창리 최복순가옥)
    소 재 지 : 장산면 도창리 191(도창마을)
    시 대 : 1828년
    종 류 : 주거건축
    유적현황 : 도창리 정민찬 가옥 근처에 위치하고 있다. 건축연대는 상당히 오래된 純祖28년(1828)으로 “道光八年開基三月拾三日安礎…”란 상량문이 있다. 배치는 대지의 중앙 안쪽으로 안채를 두었으며, 좌향은 辛坐乙向이다. 안채는 전퇴를 두고 마루․안방․정지․모방을 갖춘 이 지역 안채의 일반적인 모습이다. 전퇴에는 툇마루를 설치하였고 그 단부로는 고방을 드렸다. 구조는 막돌초석 위에 방주를 세운 4량 형식이며, 창호는 마루와 정지에는 판장문을 달고 안방과 모방으로는 띠살문을 설치하였다. 벽체는 흙벽마름이고 지붕은 1980년대 초에 초가에서 슬레이트로 교체하였다. 그리고 이 당시에 전면의 툇간을 넓히고 기둥도 교체하였다.
    참고문헌 : 木浦大學校博物館 1987,『新安郡의 文化遺蹟』.

    14. 新安 道昌里 정민찬家屋 (신안 도창리 정민찬가옥)
    소 재 지 : 장산면 도창리 732(도창마을)
    시 대 : 1836년
    종 류 : 주거건축
    유적현황 : 도창마을 내에 위치하고 있다. 정민찬가옥은 평탄한 대지에 辛坐乙向으로 안채를 앉혔다. 건축 연대는 안채에 “道光十六年丙申開基正月三十日安礎…”란 상량문이 있어 憲宗 2년(1836)임이 밝혀졌다. 안채는 전후퇴집으로 평면구성은 좌측으로부터 마루․안방․정지를 차례로 배치하고 정지 앞쪽으로는 모방을 드렸다. 마루와 정지는 각각 후퇴를 포함한 2칸으로 비교적 크다. 구조는 막돌초석위에 방주를 세운 2高柱 5樑形式으로 도리는 납도리를 걸었으나 종도리와 전면의 주심도리만은 장혀를 받친 굴도리를 걸었다. 대들보 위에 마룻대공은 사다리꼴의 판대공으로 이 지역 민가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유형이다. 사랑채는 일자형 초가로 좌로부터 헛간, 광, 사랑방, 정지방, 외양간 순으로 배치하였다.
    참고문헌 : 木浦大學校博物館 1987,『新安郡의 文化遺蹟』.

    15. 道昌里 老巨樹林 (도창리 노거수림)
    소 재 지 : 장산면 도창리 278(도창마을)
    시 대 : 1600년대
    종 류 : 노거수
    유적현황 : 노거수림은 사창마을 도로변에 위치하고 있다. 노거수림은 도창리 중심부를 북동에서 남서 방향으로 가로지르고 있는데, 팽나무 61그루, 곰솔9그루, 주엽나무 8그루, 가중나무 5그루, 예덕나무 3그루 등 총 86그루이다. 팽나무의 수령은 400년 정도이고, 수림대의 길이는 약 330m, 너비 6~36m, 총 면적은 3,467㎡에 이르고 있다. 과거 이곳에는 인근 도서지방에서 거둬들인 세곡의 보관창고가 있던 곳으로 양곡창고를 은폐하기 위해 해변가에 위장 숲을 조성하였던 것이다. 또한 노거수림은 추운 겨울철 북서풍으로부터 마을을 보호하는 기능도 담당하였다.
    참고문헌 : 목포대학교박물관 2003,『신안군 장산면 지방상수도시설 사업지역내 문화유적지표조사보고』.

    16. 新安 道昌里 長山社倉址 (신안 도창리 장산사창터)
    소 재 지 : 장산면 도창리 669-1(도창마을)
    시 대 : 미상
    종 류 : 생활유적
    유적현황 : 사창이 있었던 곳으로 추정되는 곳은 현재의 장산면 파출소자리이다. 이곳은 마을 지명이 ‘사창’으로 지명에서도 사창이 있었던 곳으로 추정된다. 주민들에 의하면 ‘옛날 배가 이곳에서 환곡을 실었으며 또한 환곡을 보관하던 곳집이 있는 곳이라 하여 사창 또는 건너몰’ 이라 한다. 또한 사창터 추정지 앞에는 노거수림이 있는데 이는 사창을 외부로부터 보호할 목적으로 심은 것으로 추정된다.
    참고문헌 : 목포대학교 도서문화연구소 1985,『도서문화』제3집.

    17. 新安 道昌里 斗洞支石墓 (신안 도창리 두동지석묘)
    소 재 지 : 장산면 도창리 93-1(두동마을)
    시 대 : 청동기
    종 류 : 지석묘
    유적현황 : 장산중학교에서 서쪽으로 100m 정도 떨어진 지점에 위치하고 있다. 기존의 조사에서 4기가 확인되었으나 현재는 1기만 남아있다. 지석묘가 있었던 곳에는 지석으로 보이는 석재들이 산재되어 있다. 남아있는 1기의 지석묘 상석 크기는 장축 305㎝, 단축 243㎝, 두께 50㎝인 타원형이며, 장축방향은 남서-북동이다. 하부구조는 잡석과 수풀에 덮여있어 확인할 수 없었다.
    참고문헌 : 목포대학교 도서문화연구소 1985,『도서문화』제3집.

    18. 新安 道昌里 斗洞遺物散布地 (신안 도창리 두동유물산포지)
    소 재 지 : 장산면 도창리 93-1(두동마을)
    시 대 : 삼국~조선
    종 류 : 유물산포지
    유적현황 : 유물산포지는 아미산(137.1m)의 동남쪽 산사면과 평야에 넓게 분포하고 있다. 1985년 조사 시 장산중학교 서쪽 100m 지점의 김상옥씨 밭에서 용도미상의 석기가 수습되었고 주변에서 기와편이 수습되었다. 석기의 형태는 삼각형이며 양쪽 면이 마모되었다. 기와편은 적갈색과 흑갈색을 띤다. 또한 청동제 그릇편도 수습되었다고 한다. 현재 이 일대는 두동마을과 장산중학교, 논밭으로 이용되고 있는데 이번 조사에서는 장산중학교 서쪽 구릉 밭에서 개배편을 수습하였다. 개배편은 근처의 도창 백제석실분과 관련성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유물산포지는 두동지석묘까지 넓게 포함된다.
    참고문헌: 목포대학교박물관 2003,『신안군 장산면 지방상수도시설 사업지역내 문화유적지표조사보고』.

    19. 道昌里 石室古墳 (도창리 석실고분)
    소 재 지 : 장산면 도창리 산93-4(두동마을)
    시 대 : 삼국
    종 류 : 고분
    유적현황 : 장산중학교 동북쪽으로 약 60m 지점, 즉 아미산(137.1m) 남쪽 기슭에 있다. 이 고분은 1966년 3월 마을 청년들이 독서회관을 세우기 위해 봉토를 파내다가 발견되었고, 같은 해 서울대학교 조사팀에 의해 조사ㆍ보고되었다. 현재 봉분의 절반가량이 없어져 석실이 노출되어 있고, 뒤쪽은 밭으로 경작되어 많이 훼손되었다. 봉분의 규모는 길이 18m, 너비 20m, 높이 2.8m인데 묘실의 장축방향은 남동-북서이다. 이 고분은 괴임식 석실분으로 맞조림식 석실분에서 발전된 양식인데 주로 부여 지방에 분포되어 있어 사비로 천도된 이후인 6세기 중엽 이후부터 축조된 양식이다. 따라서 이 고분의 연대도 6세기 중엽~7세기 초에 걸친 시기에 축조되었을 것으로 보이며 전남 지역에서 발견된 유일한 판석을 사용한 괴임식 석실분이다.
    참고문헌 : 김원룡ㆍ임효재 1968,『남해도서고고학』.

    20. 新安 彭津里 金喜重孝子閣 (신안 팽진리 김희중효자각)
    소 재 지 : 장산면 팽진리 건넛돔마을
    시 대 : 1753년
    종 류 : 유교건축
    유적현황 : 건넛돔마을 앞 도로변에 위치하고 있다. 효자 김희중은 장산면에서 부친과 딸을 데리고 해남 우수영 본가에 가기 위해 목선을 이용 항해 중 돌풍으로 배가 침몰위기에 처하자 부친을 구하고자 8살 된 딸을 용왕에게 제물로 바쳤다. 그러나 파도가 더욱 거세어지자 선원에게 부친의 안녕을 부탁하고 스스로 제물이 되어 바쳤다. 부친 또한 바다에 투신하였는데, 당일 밤 전라 좌수사의 꿈에 우수영 내동 해변에서 한사람을 구하라하였다. 꿈에서 본 내동 해변가로 가서 김희중의 부친을 구했다. 이를 전라 좌수사가 조정에 알려 1753년(영조29)에 해남군 문내면 우수영에 효자각이 건립되었다가 1935년 김해김씨 문중에 의해 장산도로 이건되었다. 효자각은 정면 1칸 측면 1칸의 팔작지붕이다. 내부에는 비가 세워져 있고, 효행 사실이 적힌 편액이 걸려있다. 효자각과 관련된 자료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① 孝子贈春秋館事承政院左承旨金公喜重之閭 : 1753년 영조가 김희중에게 효자를 포상한 내용이다. 김희중은 춘추관사 승정원 좌승지에 추증 되었다.
    ② 孝子金君旌閭記 : 김희중의 효행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③ 孝子金喜重之閭 : 효자 정려를 포상한 사실이 기재 된 편액이다.
    참고문헌 : 木浦大學校博物館 1987,『新安郡의 文化遺蹟』.

    21. 新安 彭津里 性器바위 (신안 팽진리 성기바위)
    소 재 지 : 장산면 팽진리 호피마을
    시 대 : 미상
    종 류 : 민속유적ㆍ거석기념물
    유적현황 : 마을 옆 호피산에 2개의 성기바위가 있다. 해발 약 50m에 위치하고 있는 남자바위(①)는 호피산 남동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화성암으로 되어 있다. 형태는 타원형의 선돌과 돌무더기로 되어 있다. 규모는 높이 앞면 7~8mㆍ뒷면 5~6m, 둘레 약 25m, 직경 7~8m이다. 해발 약 50m에 여자바위(②)는 남서 산기슭에 위치하고 있으며 화성암으로 되어 있다. 형태는 산 중턱의 평평한 바윗돌로 돌무더기와 함께 있다. 두 개의 성기바위 사이의 거리는 약 80m 정도이다. 과거에는 아이를 원하는 여인들이 옷을 깨끗이 갈아입고 성기바위 앞에 삼색실과를 차려 놓고 촛불을 켜고 빌었다고 한다.
    참고문헌 : 목포대학교박물관 2003,『신안군 장산면 지방상수도시설 사업지역내 문화유적지표조사보고』.

    22. 大城山城址 (대성산성지)
    소 재 지 : 장산면 다수리 산100(다수마을)
    시 대 : 삼국
    종 류 : 성곽
    유적현황 : 장산도 남단에 위치한 대성산(189m)의 정상에 있는 테뫼식 산성이다. 성축은 급경사의 정상부에 50×20㎝ 정도의 석재를 장방형으로 치석하여 ‘물림쌓기’ 방식에 의해 결구축석하였다. 내탁법에 의해 구축된 성벽은 현재 남․서벽을 제외한 대부분의 성축이 도괴된 상태이며 가장 양호한 남벽의 경우는 현 높이 2~4m, 너비 250㎝ 정도이다. 배미산-대성산-용골-공수리-활목을 연결하는 산정의 안쪽으로는 저평한 평야지대에 백제 때 거지산현(장산현의 옛 이름)의 읍치지로 비정되는 도창리, 대리를 비롯하여 장산면의 행정리 대부분이 포함되어 있다. 또한 정상에는 헬기 착륙장이 만들어졌으나 구전에 의하면 이순신장군의 부장인 이장기(이억기)가 봉수대를 만들었다고 한다.
    참고문헌 : 목포대학교 도서문화연구소 1985,『도서문화』제3집.

    23. 新安 多水里 大城山烽燧臺 (신안 다수리 대성산봉수대)
    소 재 지 : 장산면 다수리 대성산
    시 대 : 조선
    종 류 : 봉수
    유적현황: 대성산(189m)의 중간에 이순신 장군의 부하인 이장기가 봉화대를 쌓고 왜병선이 인천 방면으로 항해하는 것을 감시하여 서울로 연락했다고 하며, 진도ㆍ완도와 연결하는 봉화의 주봉이었다고 한다. 현재 이곳은 상ㆍ하면이 평평한 할석을 사용하여 쌓아 올린 것으로 판단되나 주변에 잡목과 수풀이 우거져 있고 등산로로 이용되면서 봉수의 일부분이 훼손되어 정확한 형태나 규모는 파악할 수 없다.
    참고문헌 : 신자료

    24. 長山牧場址 (장산목장터)
    소 재 지 : 장산면 다수리 산42-8(다수마을)
    시 대 : 조선
    종 류 : 마정
    유적현황 : 대성산 중턱에 목장터의 돌담이 흩어져 있다. 마장은 국가에서 사용하는 우마를 사용하는 장소로 소보다는 말을 사육하여 군마, 역마를 공급해 왔다. 여기에는 왕의 가마와 말 외양간에 목장에 관한 사항을 관장하는 사복시에서 감목관을 배치하여 운영하였다. 장산목장은 망운목장 소속으로 『여지도서(輿地圖書)』「나주읍지」에는 ‘牧子가 27명’이라고 기록되어 『대전회통(大典會通)』의 정원 수(21명) 보다 많은 것으로 보아 규모가 다른 목장보다 방대하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 현재 잡목이 우거져서 목장터의 정확한 규모는 확인할 수 없다.
    참고문헌 : 목포대학교 도서문화연구소 1985,『도서문화』제3집.

    25. 新安 多水里 多水保護樹 (신안 다수리 다수보호수)
    소 재 지 : 장산면 다수리 산89(다수마을)
    시 대 : 조선
    종 류 : 노거수
    유적현황 : 다수마을은 대성산이 북쪽에 있고, 대성산의 남쪽산기슭아래 평지에 위치해 있으며 남쪽에는 바다가 펼쳐져있다. 보호수는 마을 도로변에 위치하고 있다. 수종은 팽나무이고 수령은 300년이다. 수고는 7m, 둘레는 2.7m이다.
    참고문헌 :

    26. 新安 多水里 莫今保護樹 (신안 다수리 막금보호수)
    소 재 지 : 장산면 다수리 산142(막금마을)
    시 대 : 미상
    종 류 : 노거수
    유적개요 : 보호수는 장산면 남서쪽에 위치한 부속섬인 막금도(莫今島)의 마을 남쪽 야산에 있다. 수종은 팽나무이며, 수령은 미상이다. 나무의 규모는 수고 약 15m 정도이고, 둘레는 3m이다. 이 팽나무는 매년 막금마을에서 정월 초에 당제를 지내는 제당인 오래된 활엽수림 내에 위치하고 있다.
    참고문헌 :

    27. 新安 多水里 섬莫今保護樹 (신안 다수리 섬막금보호수)
    소 재 지 : 장산면 다수리 산144(섬막금마을)
    시 대 : 미상
    종 류 : 노거수
    유적개요 : 섬막금은 막금도에서 남쪽으로 400m정도 떨어진 무인도이며, 보호수는 북쪽 해안가에 위치한다. 수종은 소나무이며, 수령은 미상이다. 나무의 규모는 수고 약 10m 정도이고, 둘레는 340cm이다.
    참고문헌 :

    28. 新安 多水里 莫今祭堂 (신안 다수리 막금제당)
    소 재 지 : 장산면 다수리 막금마을
    시 대 : 미상
    종 류 : 민속유적
    유적현황 : 막금마을 남동쪽에 야트막한 당산(47.4m)이 있다. 이곳은 막금마을에서 매년 음력 정월 초에 마을의 평안과 除厄을 기원하는 당제를 지내는 곳으로, 오래된 활엽수림으로 둘러져 있고, 그 내부에는 上ㆍ下 140㎝의 간격을 둔 2개의 石壇이 있다. 마을에 조직되어 있는 ‘막금운영회’가 매년 2회 즉 6월과 12월에 정기총회를 여는데 이중 12월의 총회에서 祭日과 祭官을 결정한다. 제신은 산신과 당산할아버지ㆍ당산할머니이다. 석단 중 맨 위에 있는 것은 산신의 단이며, 아래에 있는 것은 당산할아버지ㆍ당산할머니의 단이다. 현재까지 주민들은 당산에 대한 신앙을 가지고 있지만, 가구 수가 현저히 줄어 7가구 밖에 남지 않아 음식장만 등이 어려워 제의는 중단된 상황이지만, 제단은 손상되지 않고 잘 남아있다.
    참고문헌 : 木浦大學校博物館 1987,『新安郡의 文化遺蹟』.

    29. 新安 多水里 통머리古墳 (신안 다수리 통머리고분)
    소 재 지 : 장산면 다수리 통머리마을
    시 대 : 미상
    종 류 : 고분
    유적현황 : 대리에서 다수리로 가는 고개를 넘어가면 통머리마을이 나온다. 이 마을 앞에 양씨 선산이 있고, 그 가운데 고분이 있다. 이 고분은 1985년 조사 시 직경 8.8m, 높이 1m 전후의 규모이며, 주위에 호석으로 보이는 석재가 2개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또한 중앙부에 구덩이가 파져 있어 도굴된 것으로 보았다. 주민들에 의하면 이곳에서 일제강점기에 항아리와 동전이 나왔다고 한다. 현재는 소나무와 잡초가 무성하여 고분의 정확한 위치나 형태는 확인할 수 없었다.
    참고문헌 : 목포대학교 도서문화연구소 1985,『도서문화』제3집.

    30. 新安 多水里 통머리民墓 (신안 다수리 통머리민묘)
    소 재 지 : 장산면 다수리 382(통머리마을)
    시 대 : 조선
    종 류 : 역사분묘
    유적현황 : 대성산 동편 기슭 장희윤씨 소유의 밭에 있다. 이 민묘는 1985년 조사 당시 반파된 것을 밭 소유주가 돌과 흙으로 메꿔둔 것으로 확인되었다. 당시의 조사에서 묘실은 길이 176㎝, 너비 47㎝, 높이 55㎝이고, 방향은 동-서 방향이었다. 내부에 목관을 사용했는지 그 흔적은 찾아 볼 수 없으나 폭이 좁기 때문에 별도의 관은 없었을 것으로 추정되었다. 그리고 묘실을 이루는 벽은 진흙과 조개껍질을 잘게 부수어 발라 단단하며 이러한 양식으로 보아 조선시대 민묘로 추정하였다. 이번 조사에서는 민묘가 있었던 밭이 수풀로 우거져 유구는 확인할 수 없었지만 위치만 확인할 수 있었다.
    참고문헌 : 목포대학교 도서문화연구소 1985,『도서문화』제3집.

    31. 長山土城址 (장산토성지)
    소 재 지 : 장산면 오음리ㆍ도창리ㆍ대리ㆍ다수리ㆍ공수리 일대
    시 대 : 삼국
    종 류 : 성곽
    유적현황 : 장산토성지는 배미산ㆍ대성산ㆍ용골ㆍ공수리ㆍ활목의 산정을 연결한 거지산현의 외곽방어를 위한 토성으로 그 길이는 약 8㎞에 이른다. 현재는 그 흔적을 찾기 어려우나 삭토법에 의해 축성한 성벽의 가장 양호한 부분은 높이 1m내외, 폭 2.5~3m 정도이다. 한편 촌로들에 의하면 두말이 마을이 ‘북문지’였으며, 살장밖이 ‘동문지’, 통머리 잔등이 ‘남문지’, 대리 삼베잔등이 ‘서문지’였다 한다. 또한 ‘현지’로 비정되는 상기 김병섭, 장하명, 김동기씨 소유 밭에서 문지초석 6-7개가 발견되었다 하나 현재는 확인할 수 없다.
    참고문헌 : 木浦大學校博物館 1987,『新安郡의 文化遺蹟』.

    32. 新安 馬津里 栗島祭堂 (신안 마진리 율도제당)
    소 재 지 : 장산면 마진리 율도마을
    시 대 : 미상
    종 류 : 민속유적
    유적현황 : 장산 본도의 축강 포구에서 배를 타고 가면 면소재지에서 남동쪽으로 약 12㎞되는 지점에 율도가 있다. 율도마을의 당제는 매년 정월 초사흘날 새벽 3~4시 사이에 거행된다. 주민들이 신봉하는 당신은 당할아버지ㆍ당할머니ㆍ白也島神이다. 당집은 마을 뒷산 능선 아래편에 위치하고 있다. 구조는 돌로 된 벽에 기와를 얹은 맞배지붕의 단칸집이며 과거에는 내부에 나무로 짠 제단이 있고 그 위에 제기들이 놓여있었다고 한다. 천정 서까래에는 ‘堂米’라 하여, 한줌 가량의 쌀을 천으로 싸서 매달아 놓았다. 한편 팽나무․소나무 등이 우거진 당집 주위에서 10m정도 아래에 당샘이 있고, 그 옆에 당제 때 제관들이 숙식하는 露地가 있다. 당제의 제관은 2명으로서 제를 주관하는 사람을 ‘당주’, 그의 보좌역을 ‘당조수’라 부른다. 제의 진행은 獻酌ㆍ三拜ㆍ獻酌ㆍ三拜ㆍ添酌ㆍ獻茶ㆍ燒紙의 順이다. 당주는 당제를 마치고 당조수와 함께 마을로 내려오면서 뒷산 이곳저곳에 제물을 조금씩 던져주면서 獻食을 한다. 새벽에 집으로 돌아온 당주와 당조수는 잠시 휴식을 하고, 날이 새면 주민들과 함께 음식과 술을 나누어 먹음으로써 이 마을 당제는 끝난다. 현재 당집은 잘 남아 있으나 10여 년 전부터 당제는 지내지 않고 있다. 이유는 가구 수가 줄어들어 제물을 마련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참고문헌 : 木浦大學校博物館 1987,『新安郡의 文化遺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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