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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4   [지도읍] 지도읍 문화유산 신안문화원 2008/2/12 6140


    [지도읍] 지도읍의 문화유산
    출처 : 목포대학교박물관, 2008 《신안군문화유적분포지도》 신안군

    1. 新安 內楊里 屯谷遺物散布地 (신안 내양리 둔곡유물산포지)
    소 재 지 : 지도읍 내양리 둔곡마을
    시 대 : 삼국
    종 류 : 유물산포지
    유적현황 : 유물산포지는 둔곡마을 북쪽에 자리하는 ‘덤바위골’과 ‘버든골’ 사이의 구릉(54.7m)에 위치한다. 이곳은 서쪽에 위치하는 야산(170.5m)의 지맥이 동쪽으로 뻗어 내려와 마을을 남북으로 둘러싸고, 동쪽으로는 넓은 간척지가 형성되어 있다. 현재 민묘와 밭으로 경작되고 있으며 유물은 적갈색연질토기편, 회청색경질토기편, 방추차 등이 수습되었다.
    참고문헌 : 신자료

    2. 新安 內陽里 屯谷保護樹 (신안 내양리 둔곡보호수)
    소 재 지 : 지도읍 내양리 1122(둔곡마을)
    시 대 : 조선
    종 류 : 노거수
    유적개요 : 둔곡마을 뒤편 산 중턱에 자리하고 있다. 생육상태가 양호한 느티나무로 수령은 310년이며, 나무의 둘레는 3m 정도이다. 보호수 주변에 둔곡유물산포지가 있다.
    참고문헌 : 木浦大學校博物館 1987,『新安郡의 文化遺蹟』.

    3. 新安 內陽里 悅樂齋 (신안 내양리 열락재)
    소 재 지 : 지도읍 내양리 적동마을
    시 대 : 조선
    종 류 : 유교건축
    유적개요 : 적동마을의 끝자락에 위치한다. 열락재(悅樂齋)는 書齋로, 후에 김해김씨 문중재각으로 이용되었다고 한다. 김해김씨 문중에서는 매년 음력 3월 15일에 후손들과 문인들이 제사를 지냈으나, 5년전 부터 제사를 지내고 있지 않다. 건물의 규모는 정면 5칸, 측면 2칸이며, 지붕은 공사가 이루어져 붉은색 슬레이트로 되어 있다. 건물의 내부에는 ‘悅樂齋記’ (丁巳年, 崔永祚 記)가 있다.
    재각의 뒤편에 있는 계단을 오르면 석축으로 둘러진 壇이 있다. 壇을 들어서면, 7기의 비석이 2열로 위치해 있다. 앞에 3기의 비석은 金璇基, 金顯玉, 金顯瀅, 松隱 선생들의 행적에 대해서 기술하고 있으며, 뒤의 4기는 壇에 모셔진 네 선생의 비석으로, ‘松隱金先生’,‘休軒金先生’,‘川嶺金先生’,‘晩舍金先生’ 등이다.
    참고문헌 : 신자료

    4. 新安 於義里 於義貝塚 (신안 어의리 어의패총)
    소 재 지 : 지도읍 어의리 어동마을
    시 대 : 신석기
    종 류 : 패총
    유적현황 : 어의도는 지도읍 서북쪽에 위치하는 ‘참도’에서 북쪽으로 3k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한다. 패총은 어의도의 동편 구릉 경사면에 위치하는데, 일명 ‘뒷산’이라고 부르는 산의 북쪽과 동쪽의 사면부 전체에 걸쳐 형성되어 있으며, 바다와 인접해있다. 기존조사에서는 3개 지역으로 구분하여 설명하였으나 같은 구릉 상에 위치하고 동시기의 패총이므로 단일유적으로 통합하였다. 현재 밭으로 경작되는 과정에서 대부분이 유실되어 패각층과 유물은 거의 남아있지 않으나 전역에 걸쳐 패각들이 산재되어 있다. 기존조사에서 굴, 소라, 꼬막, 대합류 등의 패각과 신석기시대 토기편이 수습되었다.
    참고문헌 : 木浦大學校博物館 1987,『新安郡의 文化遺蹟』.

    5. 新安 於義里 於義祭祀遺跡 (신안 어의리 어의제사유적)
    소 재 지 : 지도읍 어의리 강촌마을
    시 대 : 미상
    종 류 : 제사유적
    유적현황 : 어의리 강촌마을 동북쪽 야산의 정상부 북쪽사면에 위치한다. 당제를 지내다가 말(馬)형태의 철제품이 수습되어 보고되었다. 기존조사에서는 고분으로 추정하였으나, 조사결과 매장시설과 봉분의 흔적이 남아있지 않아 고분인지의 여부를 알 수 없으며, 예전부터 최근까지 당제를 지냈다는 점과 말(馬)형태의 철제품이 수습된 점으로 미루어 마을공동체에 의한 말(馬) 숭배 신앙의 잔존 형태로 보인다. 현재는 당제가 중단되고 관리가 되지 않아 많은 훼손이 이루어졌고, 3×2m 정도의 도괴구덩이가 있다.
    참고문헌 : 木浦大學校博物館 1987,『新安郡의 文化遺蹟』.

    6. 新安 於義里 於義遺物散布地 (신안 어의리 어의유물산포지)
    소 재 지 : 지도읍 어의리 어의마을
    시 대 : 고려
    종 류 : 유물산포지
    유적현황 : 유물산포지는 어의리 어의마을 동쪽의 소위 ‘팔막굴’이라 불리는 곳에 위치한다. 이곳은 마을의 동쪽에 위치하는 야산(87.6m)의 서쪽 사면부이다. 현재 김남석씨 소유의 밭으로 경작되고 있으며, 기존조사에서 청자 접시와 잔이 각각 1점씩 수습되었다.
    참고문헌 : 목포대학교 도서문화연구소 1987,『도서문화』제5집.

    7. 新安 於義里 曺康煥遺惠碑 (신안 어의리 조강환유혜비)
    소 재 지 : 지도읍 어의리 어의마을
    시 대 : 1915년
    종 류 : 비갈
    유적현황 : 지도초등학교 어의분교 맞은편에 있다. 조강환은 자신의 소유지를 섬 주민들에게 경작하도록 대여해 주었다. 이에 1915년 섬 주민들이 공의 행적을 기록한 비석을 건립하였다. 비의 전면에는 ‘通政大夫曺公康煥遺惠碑’라 새겨져 있고, 규모는 높이 140㎝, 너비 62㎝, 두께 21㎝이다. 비의 오른쪽에는 어의리 주민들이 신안군수 徐仁燮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功績記念碑’(1987)가 함께 있다.
    참고문헌 : 목포대학교 도서문화연구소 2006,『도서 문화유적 지표조사 및 자원화 연구6 -지도읍 편-』.

    8. 新安 於義里 小包作貝塚 (신안 어의리 소포작패총)
    소 재 지 : 지도읍 어의리 소포작마을
    시 대 : 철기
    종 류 : 패총
    유적현황 : 소포작도는 지도읍 서북쪽에 위치하는 ‘참도’에서 북동쪽으로 약 1.6km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다. 패총은 소포작 출장소에서 북쪽으로 150m 정도 떨어진 마을에서 일명 ‘뒷산’이라 부르는 곳의 북쪽과 동쪽 그리고 남쪽 경사면 능선 말단부에 위치한다. 기존조사에서는 3개 지역으로 구분하여 설명하였으나 같은 구릉 상에 위치하고 동시기의 패총이므로 3개 지역을 통합하여 단일유적으로 기술하였다. 간척사업 이전에는 패총의 가장자리에까지 바닷물이 유입되었다고 하며, 현재 노출된 패각층 중 잘 남아있는 곳의 높이는 70㎝이다. 유물은 적갈색연질토기편이 수습되었다.
    참고문헌 : 木浦大學校博物館 1987,『新安郡의 文化遺蹟』.

    9. 新安 於義里 小包作古墳 (신안 어의리 소포작고분)
    소 재 지 : 지도읍 어의리 소포작마을
    시 대 : 삼국
    종 류 : 고분
    유적현황 : 소포작 패총에서 북서쪽으로 200m 지점에 있는 일명 ‘뒷산’의 동측사면부에 3기의 고분이 있었으나 현재 2기만이 존재한다.
    1호분은 고분 정상부에 수십년 된 도토리나무와 갈나무가 무성하며, 외형은 보존상태가 양호하다. 봉분의 규모는 장축 4m, 단축 3.3m, 높이 1.2m이다. 봉분의 장축방향은 남동-북서 방향이고 그 형태는 타원형이다. 2호분은 1호분으로부터 동으로 5m 정도 떨어져 있다. 정상부에는 8m 정도 되는 도토리나무가 번식하고 있으며 봉분의 남쪽은 많이 유실되었다. 봉분의 규모는 장축 3.4m, 단축 2.5m, 높이 1.1m이며 장축방향은 남동-북서 방향이고 봉분의 형태는 타원형이다.
    참고문헌 : 木浦大學校博物館 1987,『新安郡의 文化遺蹟』.

    10. 頭流壇 (두류단)
    소 재 지 : 지도읍 감정리 산216-9(백련마을)
    시 대 : 1914년
    종 류 : 비갈
    유적개요 : 백련마을 두류산 정상부에 오선비가 세워져 있다. 최초의 두류단은 1720년경에 주자, 정여창, 김굉필 세분을 모시는 정자를 짓고, 제향을 지내왔던 곳이라고 전한다. 그 후 1914년 호남지방의 선비들이 전라도지방의 학문과 사상에 있어서 정신적인 지주가 되었던 이항로(李恒老), 기정진(奇正鎭), 김평묵(金平黙) 3분을 단비(가로 33cm, 세로 68cm)로 모시고 3현단이라고 칭하게 되었는데, 5년 뒤에 최익현(崔益鉉) 선생도 함께 모시면서 4현단이라 부르게 되었다. 이후 1948년 중암 김평묵의 제자였던 지도출신의 나유영(羅有英) 선생을 단비로 모시고 오선생단 또는 오선비(五善碑)라 칭하게 되었다. 현재 두류단에는 다섯 명의 선현을 추모하는 오선비가 세워져 있고, 그 앞쪽으로 두류산과 두류단의 유래를 기록한 두 개의 비석(頭流山李先生壇碑, 頭流四賢壇碑)이 있다.
    한편 두류단 위쪽의 암벽 곳곳에는 최익현의 글씨인 ‘대명일월 소화강산’(大明日月 小華江山)과 중암 김평묵의 ‘지제여운’(智濟餘韻) 및 중암에게 학문을 익힌 제자9명의 이름이 새겨져 있으며, ‘중암유촉’(重菴遺躅)과 함께 면암과 중암의 스승 격인 화서 이항로 선생이 늘 마음에 새겼던 ‘주기장예 정일주직’(周幾張豫 程一朱直) 문구가 새겨져 있다.
    참고문헌 : 신안군 2006,『우리고장의 향토문화유적』.

    11. 新安 甘井里 羅俊煥慈善碑ㆍ密陽朴氏施惠碑 (신안 감정리 나준환자선비ㆍ밀양박씨시혜비)
    소 재 지 : 지도읍 감정리 백련마을
    시 대 : 1931ㆍ1932년
    종 류 : 비갈
    유적개요 : 백련마을 초입에 두기의 비가 나란히 서 있다. 전면에 ‘錦城羅公俊煥慈善碑’라고 새겨져 있는 비는, 나준환과 부인 ‘密陽朴氏’의 행적을 기리기 위해 1931년(辛未年)에 세운 것이다. 나준환은 어려서부터 도량이 크고 언행이 준수하였고, 어려운 주민들에게 100포의 곡식을 균등히 나누어 주기도 하였다. 비의 규모는 높이 155cm, 너비 55cm, 두께 18cm이다.
    ‘淑人密陽朴氏施惠碑’는 밀양박씨의 행적을 기리기 위해 1932년(壬申年)에 소작인들이 세운 비로, 박씨는 토지세를 거둬들일 때도 경작자의 경제 사정에 따라 감면해주기도 하였다. 이러한 내용을 포함하여, 박씨의 공적이 전면에 새겨져 있다. 비석의 규모는 높이 160cm, 너비 61cm, 두께 20cm이다.
    참고문헌 : 목포대학교 도서문화연구소 2006,『도서 문화유적 지표조사 및 자원화 연구6 -지도읍 편-』.

    12. 新安 邑內里 智島鎭址 (신안 읍내리 지도진지)
    소 재 지 : 지도읍 읍내리 읍동마을
    시 대 : 조선
    종 류 : 군영
    유적개요 : 지도진은 1682년 지도읍 읍내리에 설치된 水軍萬戶鎭이다. 지도진 설치논의는 1681년에 知事 閔維重이 위도(蝟島)와 지도(智島)에 鎭을 설치할 것을 건의한 것에서 비롯된다. 그 결과 1682년 지도에 만호진이 설치되었으나, 鎭城은 축조되지 않았다. 한말까지 간행된 문헌 기록 어디에도 성을 축조했다는 기록은 확인되지 않는다. 다만 진(鎭)은 읍내리 일원에 설치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참고문헌 : 木浦大學校博物館 1987,『新安郡의 文化遺蹟』.

    13. 新安 邑內里 邑東保護樹 (신안 읍내리 읍동보호수)
    소 재 지 : 지도읍 읍내리 140(읍동마을)
    시 대 : 조선
    종 류 : 노거수
    유적개요 : 지도읍사무소 건물 뒤편에서 우측 주차장까지 7~8수의 팽나무가 있으며, 이중 세 그루가 보호수로 지정되어 있다. 대표적인 보호수의 수령은 320년, 둘레 410cm, 수고 17m에 이른다.

    14. 一心寺 (일심사)
    소 재 지 : 지도읍 읍내리 140(읍동마을)
    시 대 : 1919년
    종 류 : 불교건축
    유적개요 : 지도읍사무소 뒤편에 위치한 일심사는 300여년 전부터 관운장의 초상을 모시는 사당으로 존재하였다가 1919년 현재의 법당 및 요사채가 중창되었다. 현재 대웅전 1동, 극락전 1동, 요사채 1동이 있고, 소장유물로는 우석대, 좌석대가 있다. 한국전쟁 중에 전몰한 군인, 경찰을 포함한 호국영령들의 540여 위패를 모시고 있는 여각이 있어, 국가와 민족을 위해 전사한 호국영령들을 위로하는 도량으로 알려져 있다.
    참고문헌 : 신안군 2006,『우리고장의 향토문화유적』.

    15. 新安 邑內里 邑東祭堂 (신안 읍내리 읍동제당)
    소 재 지 : 지도읍 읍내리 읍동마을
    시 대 : 미상
    종 류 : 노거수ㆍ민속유적
    유적개요 : 읍동마을 중앙에 ‘당산나무’, ‘당’, ‘당할아버지’라 불리는 전나무(쥐엄나무) 한그루가 서있다. 주민들은 마을이 형성될 때 이 전나무가 심어졌고, 이 나무에 마을신인 ‘당할아버지’가 거처한다고 믿고 있다. 나무 주위는 석축대로 둘러져 있으며, 옛날가지가 모두 부러지고 새가지가 자라고 있다. 마을에서는 매년 음력정월 초하룻날 이곳 전나무 앞에서 마을평안과 농사, 쥐나 새 등 짐승으로부터 피해를 없게 해달라고 기원하는 ‘당제’, ‘동제’를 거행하고 있다. 한편 읍동의 전나무 ‘당할아버지’는 읍서의 전나무에 깃들여 있는 ‘당할머니’와 한 쌍의 부부신으로 인식되고 있으며, 이 두 나무는 마을이 형성될 당시 같은 해 같은 날에 함께 식재되었다고 마을형성유래는 전해온다. 읍동과 읍서의 당 형성 유래는 역사적으로 이들 두 마을의 밀접한 연관을 설명하는 증거로 보여진다. 현재 매년 음력 정월 초하룻날 읍동마을에서 당할아버지를 모시는 당제가 거행된 후, 이튿날 읍서에서 당할머니를 위한 당제가 이어진다.
    참고문헌 : 목포대학교 도서문화연구소 2006,『도서 문화유적 지표조사 및 자원화 연구6 -지도읍 편-』.

    16. 智島鄕校 (지도향교)
    소 재 지 : 지도읍 읍내리 112(읍서마을)
    시 대 : 1897년
    종 류 : 유교건축
    유적개요 : 지도향교는 1896년 이루어진 행정개편으로 지도군이 새로 설치되면 ‘一邑一校’(하나의 군에 하나의 향교를 둔다)의 원칙에 따라 1897년에 창설되었다. 봉정산(鳳頂山)의 남쪽산록에 동남향으로 자리하고 있다. 향교의 건물은 대성전을 비롯하여 명륜당, 양사재, 내삼문, 외삼문 등이 배치되어 있으며, 관련 자료로 3개의 현판과 비가 남아있다. 현판은 ①‘明倫堂重建記’(1948), ②‘大成殿重修記’(李永信 記), ③‘明倫堂重修記’(趙權衡 記)이다.
    지도향교는 창설 이후, 1904년ㆍ1914년ㆍ1924년에 부분적인 중수와 보수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나 그 내용이나 주체인물에 대해서는 확인되지 않는다. 다만 향교 앞에 세워진 ‘掌議朴鍾燮紀念碑’와 ‘參奉羅正煥明倫堂重建碑’를 통해서 박종섭에 의해 내삼문이 건립되었고, 나정환이 명륜당을 중수하는 데 기여하였음을 알 수 있다. 해방 이후에는 1947~1948년에 金鍾烈ㆍ姜鳳秀ㆍ黃西源 등 유림들의 협조로 명륜당이 중건되었다(‘明倫堂重修記’, 1948). 1966년에는 퇴락해 있던 大聖殿이 중수되었고, 1968년에 명륜당이 중수되어 현전하고 있다.
    참고문헌 : 목포대학교 도서문화연구소 2006,『도서 문화유적 지표조사 및 자원화 연구6 -지도읍 편-』.

    17. 新安 邑內里 智島鄕校碑群 (신안 읍내리 지도향교비군)
    소 재 지 : 지도읍 읍내리 112(읍서마을)
    시 대 : 1927ㆍ1928ㆍ1930년
    종 류 : 비갈
    유적개요 : 지도향교 앞에 5기의 비석이 위치한다. 1기는 ‘歷代典校事行碑’이고, 4기의 비는 다음과 같다. 이외에 향교 외삼문 밖에 ‘下馬碑’(높이 82㎝)가 있다.

    번호 / 비 석 명 / 연대 / 규모(높이, 너비, 두께 cm) / 비고
    1 / 前監察金公文斗紀念碑 / 1930 / 165, 47, 16.5 /
    2 / 前參奉羅正煥明倫堂重建碑銘 / 1928 / 128, 53, 16 /
    3 / 前議官金亨培․前掌議朴鍾燮 紀念碑 / 1927 / 106, 44, 16 /
    4 / 三綱碑銘 / 1927 / 162, 66, 22 /

    참고문헌 : 목포대학교 도서문화연구소 2006,『도서 문화유적 지표조사 및 자원화 연구6 -지도읍 편-』.

    18. 新安 邑內里 邑西祭堂 (신안 읍내리 읍서제당)
    소 재 지 : 지도읍 읍내리 읍서마을
    시 대 : 미상
    종 류 : 노거수ㆍ민속유적
    유적개요 : 읍동ㆍ읍서 마을에서는 매년 마을평안과 농사풍년, 쥐나 새 등의 짐승방지를 기원하는 ‘당제’, ‘동제’를 거행한다. 읍서마을의 전나무는 ‘당할머니’로 나무에 이들 신이 거처하는 것으로 인식되고 있다. 이 전나무는 수령이 400여년 이상이며, 주위에는 석축대가 돌려져있다. 매년 음력 정월 초이튿날 자시에 당할머니를 위한 제사가 진설ㆍ헌작ㆍ독축ㆍ재배ㆍ소지와 축언ㆍ설신ㆍ음복ㆍ철상 순으로 진행되며, 제의과정은 읍동ㆍ읍서 두 마을이 유사하다.
    참고문헌 : 목포대학교 도서문화연구소 2006,『도서 문화유적 지표조사 및 자원화 연구6 -지도읍 편-』.

    19. 新安 邑內里 松島祭堂 (신안 읍내리 송도제당)
    소 재 지 : 지도읍 읍내리 송도마을
    시 대 : 미상
    종 류 : 민속유적
    유적개요 : 송도는 읍사무소와는 1.5km거리를 둔 소나무가 우거진 작은 섬으로, 1983년 연육되었다. 송도(솔섬)에서는 매년 음력 정월 열나흗날 자정에 마을평안과 단결ㆍ질병방지ㆍ풍어와 항해안전을 기원하는 ‘당제’, ‘산신제’로 불리는 마을 공동체 의례를 거행한다. 이 의례는 산 정상부에 위치하는 ‘할아버지당’과 산기슭에 위치하는 ‘할머니당’에서 거행된다. 할아버지당의 형태는 담의 높이 90~150cm, 지름 600cm의 원형석축제단(圓形石築祭壇)형태이다. 기존의 조사에서는 내부에 석단(石壇)과 화톳불을 피우는 석판(石板), 마신을 모시는 마부제단(馬夫祭壇), 칠성신을 모시는 칠성제단(七星祭壇) 등이 있다고 조사되었으나 현재는 모두 유실되고 석축제단만이 남아있으며, 산기슭에 위치하고 있던 할머니당 또한 유실되었다. 현재 제의는 진행되지 않는다.
    참고문헌 : 木浦大學校博物館 1987,『新安郡의 文化遺蹟』.

    20. 新安 廣井里 長洞支石墓群 (신안 광정리 장동지석묘군)
    소 재 지 : 지도읍 광정리 장동마을
    시 대 : 청동기
    종 류 : 지석묘
    유적현황 : 지석묘는 장동마을에서 동남쪽으로 100m 정도 떨어진 곳의 속칭 ‘자래목’ 이라고 불리는 곳에 3기가 위치하고 있다. 이곳은 나지막한 야산(50.4m)의 북쪽사면 말단부로 서쪽은 산으로 둘러싸여 있고, 동쪽으로는 낮은 야산과 간척된 논이 펼쳐져 있다. 지석묘는 하부가 심하게 훼손되어 노출되어 있으며 주변은 쓰레기더미가 산재되어 있다. 가장 큰 상석의 평면형태는 방형이며, 규모는 장축 200cm, 단축 180cm , 두께 90cm이다. 장축방향은 남-북이다.
    참고문헌 : 木浦大學校博物館 1987,『新安郡의 文化遺蹟』.

    21. 新安 廣井里 積巨支石墓群 (신안 광정리 적거지석묘군)
    소 재 지 : 지도읍 광정리 적거마을
    시 대 : 청동기
    종 류 : 지석묘
    유적현황 : 지석묘는 적거마을회관 바로 옆 ‘전주이씨세장산’에 9기가 남-북 1열로 위치하고 있다. 이곳은 마을 서쪽에 위치하는 야산(109m)에서 서쪽으로 뻗어 내려오는 능선의 말단부이며, 서쪽으로는 ‘서방죽들’이 자리하고 있다. 지석묘는 잘 정비되어 있어 형태가 비교적 잘 남아있다. 가장 큰 상석의 평면형태는 타원형이며, 규모는 장축 350cm, 단축 180cm, 두께 90cm이다. 장축방향은 남동-북서이다.
    참고문헌 : 木浦大學校博物館 1987,『新安郡의 文化遺蹟』.

    22. 新安 廣井里 積巨遺物散布地① (신안 광정리 적거유물산포지①)
    소 재 지 : 지도읍 광정리 적거마을
    시 대 : 고려
    종 류 : 유물산포지
    유적현황 : 유물산포지는 적거지석묘군에서 북쪽으로 100m 정도 떨어진 곳의 용교마을로 들어가는 입구 도로변에 위치한다. 이곳은 동쪽에 위치하는 야산(107m)의 서쪽 사면부 일대로 유적의 동쪽으로는 넓은 간척지가 자리하고 있다. 유물은 적거마을에서 용교마을로 가는 농로확장공사를 하던 중 청자대접 2점과 병 1점이 발견되었다. 현재 밭으로 경작되고 있으며, 농로를 포장하는 과정에서 지형의 훼손이 심하다.
    참고문헌 : 목포대학교 도서문화연구소 1987,『도서문화』제5집.

    23. 新安 廣井里 積巨遺物散布地② (신안 광정리 적거유물산포지②)
    소 재 지 : 지도읍 광정리 적거마을
    시 대 : 청동기
    종 류 : 유물산포지
    유적현황 : 유물산포지는 광정리 적거마을 북쪽에 위치한 한봉산(121m)에서 마을의 남쪽으로 뻗어내린 나지막한 구릉의 말단부에 넓게 분포되어 있다. 유적의 맞은편에는 ‘천사어린이집’이 있으며, 서쪽에는 백양저수지가 있다. 국도 24호선이 능선의 말단부를 관통하여 지나며, 남쪽은 바다와 접해 있다. 현재 밭으로 경작되고 있으며, 기존조사에서 직경 12㎝ 정도인 타원형 모양을 한 용도불명의 석제품이 수습되었다.
    참고문헌 : 목포대학교박물관 2001,『전남 남부권 광역상수도사업 신안계통 송수시설 문화유적지표조사보고』.

    24. 新安 廣井里 金海金氏孝烈碑閣 (신안 광정리 김해김씨효열비각)
    소 재 지 : 지도읍 광정리 적거마을
    시 대 : 1915년
    종 류 : 유교건축
    유적개요 : 적거마을 동쪽 초입에 위치하며, 정면·측면 각 1칸의 비각 안에 높이 147cm, 너비 63cm 규모의 비가 서있다. 비는 전면에 ‘故士人崔玟柱妻金海金氏孝烈碑’라고 새겨져 있고, 김해김씨의 효행사실이 10행 28자로 새겨져 있다. 비문은 기우만(奇宇萬)이 서(書)하였으며, 1915년(乙卯年)에 건립된 것으로 보인다.
    참고문헌 : 신자료

    25. 新安 廣井里 白楊有物散布地 (신안 광정리 백양유물산포지)
    소 재 지 : 지도읍 광정리 백양마을
    시 대 : 청동기
    종 류 : 유물산포지
    유적현황 : 유물산포지는 마을 동쪽에 자리한 야산(167m)에서 서쪽으로 뻗어내린 능선의 말단부로 24번 지방도로변에 위치한다. 이곳은 동쪽으로 백양저수지가 위치하고 있으며, 남쪽은 바다와 접해 있다. 기존조사에서 반쪽으로 깨어진 석착 1점이 수습되었는데 유적의 동쪽으로 300m 정도 떨어진 곳에 적거유물산포지②에서 수습된 석제품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참고문헌 : 목포대학교박물관 2001,『전남 남부권 광역상수도사업 신안계통 송수시설 문화유적지표조사보고』.

    26. 新安 自東里 鳳山祠 (신안 자동리 봉산사)
    소 재 지 : 지도읍 자동리 자동마을
    시 대 : 1955년
    종 류 : 유교건축
    유적개요 : 자동마을회관의 옆에 위치한다. ‘鳳山祠’는 전주이씨 문중사우로, 1955년에 세워졌다. 외삼문(1959년)을 들어서면, ‘高景齋’라는 편액이 걸린 재각이 나오고, 내삼문(1956년)을 들어서면 ‘鳳山祠’가 나온다. 고경재는 1956년에 세워졌으며, 건물의 규모는 정면 4칸, 측면 3칸의 팔작지붕이다. 건물의 내부에는 3기의 현판이 걸려 있는데, ①「鳳山祠記」(庚子年, 李文準 記 ), ②「鳳山祠記」(庚子年, 柳寅瑗 記), ③「內三門講堂建築寄付芳名錄」등이다. 봉산사에는 5位가 배향되어 있는데, 襄度公을 주벽으로 雙梅公, 蘭軒公, 極軒公, 畒隱公 등이다. 건물의 규모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이다.
    참고문헌 : 신자료

    27. 新安 自東里 自東祭堂 (신안 자동리 자동제당)
    소 재 지 : 지도읍 자동리 자동마을
    시 대 : 미상
    종 류 : 수림지ㆍ거석기념물ㆍ민속유적
    유적개요 : 자동마을에서는 매년 음력 정월 14일 밤 12시에 ‘할매’, ‘하나씨’, 그리고 ‘七星神’ 에게 마을평안과 질병방지를 기원하는 당제를 거행한다. 당산은 두곳으로 ‘큰당산’(혹은 큰당ㆍ하나씨당산ㆍ할아버지당ㆍ하나씨신), ‘작은당산’(혹은 작은당ㆍ할매당ㆍ할매신)으로 불리우고 있다. ‘큰당산’은 마을뒷편의 한봉산(翰鳳山) 중턱에 위치하는 아름드리 소나무 숲인데, 현재 대부분의 소나무가 고사되고 있으며, 특별한 시설물이 없다. ‘작은당산’은 원자동 마을회관 옆에 있는 높이 98cm, 폭 42cm의 입석이다. 제는 큰당산에서 시작되어 작은 당산으로 이어지면서 진설ㆍ소지ㆍ재배ㆍ음복 순으로 간단히 진행되며, 제후 정월 보름에는 금고(굿)를 치고 ‘지신밟기’를 한다.
    참고문헌 : 목포대학교 도서문화연구소 2006,『도서 문화유적 지표조사 및 자원화 연구6 -지도읍 편-』.

    28. 自東里 功績善政碑群 (자동리 공적선정비군)
    소 재 지 : 지도읍 자동리 산159(자서마을)
    시 대 : 1702~1990년
    종 류 : 비갈

    번호 / 비명 / 연대 / 규모(높이, 너비, 두께 cm) / 비고
    1 / 萬戶李公技撫恤士卒淸德善政碑 / 1702년 / 98.5, 50, 21 /
    2 / 御使朴公泰輔恤民善政碑 / 1702년 / 115, 54, 18 /
    3 / 行萬戶李公尙賢撫恤士卒淸德善政碑 / 1705년 / 81, 43, 17 /
    4 / 萬戶南公聖重○○○○ / 1715년 / 101, 51.7, 16 / 호패형
    5 / 行萬戶申公寺岳恤民善政碑 / 1782년 / 115.5, 51.7, 16 / 호패형
    6 / 行萬戶金公潤九恤民善政碑 / 1788년 / 125, 55.7, 18 / 호패형
    7 / 行萬戶申公寺岳恤民善政碑 / 1842년 / 139.5, 62, 22.5 / 호패형
    8 / 觀察使李公裕元永世不忘碑 / 1851년 / 106.5, 46, 19 / 가첨석
    9 / 萬戶池公得源恤民善政碑 / 1853년 / 100, 43, 21 /
    10 / 行萬戶車公益文善政碑 / 1860년 / 91, 50, 18 / 호패형
    11 / 行萬戶朴公應祥永世不忘碑 / 1865년 / 111, 40, 19 / 호패형
    12 / 御使李公敦相永世不忘碑 / 1868년 / 146, 52, 19 /
    13 / 觀察使李公鎬俊善政碑 / 1872년 / 135, 49, 18 / 가첨석
    14 / 行都察使趙公性敎永世不忘碑 / 1876년 / 145, 54.5, 18 /
    15 / 行勅史沈公覆澤永世不忘碑 / 1880년 / 111, 46, 17 / 가첨석
    16 / 御使魚公允中永世不忘碑 / 1880년 / 126.5, 45, 19.5 / 가첨석
    17 / 行郡守金候漢鼎永世不忘碑 / 1898년 / 134, 58, 19.5 / 가첨석
    18 / 觀察使尹公雄烈愛民善政碑 / 1898년 / 147, 57, 17.5 / 가첨석
    19 / 行郡守洪公永世不忘碑 / 1906년 / 155, 52.5, 21 / 가첨석
    20 / 樵山曺成煥先生敎育功勞碑 / 1965년 / 115, 39, 14.5 / 7行 30字
    21 / 新安郡守朴琯柱善政碑 / 1972년 / 141, 45, 18 /
    22 / 碩泉崔秉用所長功績碑 / 1983년 / 108, 77, 24.5 / 17行 41字
    23 / 重菴金先生智島謫盧遺墟碑 / 1990년 / 177, 60, 30 / 25行 50字
    24 / 朝鮮國處士重菴金先生衛正斥邪碑 / 辛未年 / 153, 68, 22.5 / 15行 19字
    25 / 萬戶梁侯相燻球履恤民永世不忘碑 / 연대미상 / 138, 45, 15.5 / 가첨석
    26 / 萬戶姜侯元準恤民善政碑 / 연대미상 / 126, 46, 13 / 호패형

    유적개요 : 지도읍 자동리에 들어서면 속칭 ‘비석거리’라 불리는 곳에 27기의 비가 일렬로 서있다. 지도읍 읍내리 지도향교 앞 비석거리에 있었던 비(19기)와 지도읍내 곳곳에 흩어져 있던 7기, 최근에 세워진 ‘重菴 金先生’비를 한곳에 모은 것이다. 비는 주로 수군만호의 선정비와 군수의 공적비이다. 다음은 공적선정비군의 년대와 규모를 정리한 것이다.

    참고문헌 : 목포대학교 도서문화연구소 2006,『도서 문화유적 지표조사 및 자원화 연구6 -지도읍 편-』.

    29. 新安 自東里 自西立石 (신안 자동리 자서입석)
    소 재 지 : 지도읍 자동리 자서마을
    시 대 : 미상
    종 류 : 거석기념물ㆍ민속유적
    유적개요 : 자서마을 도로 좌우에 2기의 입석이 있다. 마을 남쪽에 있는 높이 105cm, 너비 47cm, 두께 32cm 규모의 입석은 ‘할아버지 바위’(당하나씨)라 불리며, 남서쪽에 있는 높이 72cm, 너비 55cm, 두께 24cm 규모의 입석은 ‘할머니 바위’(당할매)라 불리고 있다. 이 2기의 입석은 마을에서 매년 정월보름이면 행하는 마을공동의례인 ‘당제’의 신체로 섬겼다. 제의는 ‘당하나씨’ 입석에서 먼저 거행하고, 다음으로 ‘당할매’ 입석의 순으로 진행된다. 현재는 제의가 행해지지 않는다.
    참고문헌 : 목포대학교 도서문화연구소 2006,『도서 문화유적 지표조사 및 자원화 연구6 -지도읍 편-』.

    30. 新安 自東里 五龍遺物散布地 (신안 자동리 오룡유물산포지)
    소 재 지 : 지도읍 자동리 오룡마을
    시 대 : 삼국
    종 류 : 유물산포지
    유적현황 : 유물산포지는 자동리 오룡마을 북동쪽에 위치한 야산(100.7m)의 서쪽으로 뻗어내린 능선에 위치한다. 오룡마을과 자서마을 입구 사이에 넓게 분포되어 있는데 서쪽으로 간척된 ‘서원장들’과 북쪽으로 ‘자서제’가 위치한다. 현재 밭으로 경작되고 있으며, 유물은 적갈색연질토기편, 회청색경질토기편이 수습되었다.
    참고문헌 : 신자료

    31. 新安 台川里 台川保護樹 (신안 태천리 태천보호수)
    소 재 지 : 지도읍 태천리 산1175(태천마을)
    시 대 : 조선
    종 류 : 노거수ㆍ민속유적
    유적개요 : 태천마을에서 서쪽으로 200m 정도 떨어진 논 주위의 벌판에 팽나무와 멍구나무 등이 숲을 이루고 있다. 이 중 팽나무 6주는 보호수로 지정되어 있다. 수령 320년, 수고 22m, 흉고둘레 3.6m로 마을에 큰 혜택을 주는 ‘백소등이’라고 한다. 또한 이 숲은 마을평안과 단합을 기원하는 마을공동체 의례인 태천마을의 ‘당제’ 또는 ‘산제’의 ‘할아버지당’이기도 하다. 정월 초사흘에 헌작ㆍ재배ㆍ독축ㆍ소지ㆍ헌식의 순으로 제를 진행하는데, ‘할아버지당’(큰당)에서 제가 끝나면 곧바로 ‘할머니당’으로 가서 제를 지낸다. ‘할머니당’은 마을에 있는 팽나무로 5~6년 전에 나무가 쓰러져 밑둥만 남아있어, 현재는 ‘할아버지당’에서만 제의가 행해진다. 이 숲은 조수(鳥獸)가 서식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되며, 마을 당제를 지내는 곳일 뿐만 아니라, 마을주민들의 휴식처로 이용되고 있다.
    참고문헌 : 목포대학교 도서문화연구소 2006,『도서 문화유적 지표조사 및 자원화 연구 6 -지도읍 편-』.

    32. 新安 台川里 康堅祠 (신안 태천리 강견사)
    소 재 지 : 지도읍 태천리 태천마을
    시 대 : 현대
    종 류 : 유교건축
    유적개요 : 강견사(康堅祠)는 한양조씨 문중사우로, 문중 선조들을 봉안하기 위해 건립한 추모원(追慕園), 문중재각인 돈목재(惇睦齋), 문중 사우인 강견사(康堅祠), 열녀각 등이 조성되어 있다. 외삼문(崇慕門)을 들어서면 정면에 ‘漢陽趙氏 奉事公派 追慕園事蹟碑’가 서있고, 비의 뒤편에는 한양조씨 납골당이 조성되어 있다. 숭모문 왼쪽에 강견사, 그 오른쪽에 ‘漢陽趙氏烈孝淨侶’와 돈목재가 위치한다. 강견사에는 총 9위의 문중선조가 봉안되어 있다. 사우의 규모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이다.
    참고문헌 : 목포대학교 도서문화연구소 2006,『도서 문화유적 지표조사 및 자원화 연구6 -지도읍 편-』.

    33. 蓮溪祠 (연계사)
    소 재 지 : 지도읍 태천리 754(태천마을)
    시 대 : 1896년
    종 류 : 유교건축
    유적개요 : 태천리 연화동마을 끝자락에 위치하는 연계사는 김유신의 제사를 모시기 위해 건립된 사우이다. 사우의 바로 앞에 ‘金敏斗妻平山蔣氏出義碑’(壬午年)와 ‘金敏斗妻牙山蔣氏出義碑’가 있고, 그 뒤편에 사우의 강당에 해당하는 ‘講修齋’가 위치한다. 강수재는 1937년에 세워졌다. 재실 내부에 ①‘講修齋記’(乙酉年, 金益曾 記), ②‘感謝記’(1978, 連溪祠院 후손 일동), ③‘連溪祠事實記’(羅有英 記), ④‘連溪祠記’(乙卯年, 尹相植 記), ⑤‘連溪祠再重修記’(丙寅年, 金大洪 識), ⑥‘連溪祠再重修記義捐記’(丁卯年), ⑦‘記’(丁卯年), ⑧‘書連溪祠事實後’(庚辰年, 趙炳弼 跋), ⑨‘祠宇重修記’(戊申年, 趙炳麒 記), ⑩‘祠宇重修功蹟表彰’(戊申年), ⑪‘連溪祠上樑文’(丁卯年, 高光善 述) 등의 현판이 걸려있다.
    강수재를 지나서면 그 뒤편에 사우인 ‘連溪祠’가 위치한다. 지방 유림들에 의해 1896년 건립되었으며, 1933년에 김해김씨 문중에서 대대적인 중수를 하여 오늘에 이른다. 연계사 내부에 김유신의 영정이 모셔져 있고, ‘開國公龍華金先生’, ‘濯纓金先生’, ‘三足堂金先生’, ‘海隱金先生’, ‘節孝金先生’ 등 5위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으며, 매년 음력 3월 3일에 김유신 장군제를 지낸다. 정면 3칸, 측면 1칸의 팔작지붕이다.
    참고문헌 : 목포대학교 도서문화연구소 2006,『도서 문화유적 지표조사 및 자원화 연구6 -지도읍 편-』.

    34. 新安 灘洞里 灘洞保護樹 (신안 탄동리 탄동보호수)
    소 재 지 : 지도읍 탄동리 탄동마을
    시 대 : 조선
    종 류 : 노거수ㆍ민속유적
    유적개요 : 탄동마을회관 옆에 우산모양의 주엽나무 1기가 있다. 수령은 180여년, 수고는 6m 정도로, 여름철에는 주민들의 휴식공간이 되기도 한다. 또한 탄동마을에서 매년 음력 정월 보름에 행해지는 당제의 신체(하당신)이기도 하다. 당산나무 앞에서 거행되는 제의는 헌작과 재배, 독축, 소지 순으로 진행된다. 나무 옆에는 높이 110cm, 너비 40cm, 두께 50cm의 직사각형 돌이 있어, 제를 지낼 때 촛불을 켜는 용도로 사용되기도 한다.
    참고문헌 : 목포대학교박물관 2006,「사옥~증도간 연도교 가설공사 문화유적지표조사보고」,『2004년 문화유적지표조사보고』.

    35. 新安 灘洞里 灘洞祭堂 (신안 탄동리 탄동제당)
    소 재 지 : 지도읍 탄동리 탄동마을
    시 대 : 미상
    종 류 : 민속유적ㆍ거석기념물
    유적개요 : 탄동마을에서는 매년 음력 정월 보름에 당제를 모시고 있다. 당제를 모시는 곳은 마을 뒷산의 상당과 마을 앞 하당 그리고 입석이다. 상당(①)은 돌담장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높이 40cm의 입석이 모셔져 있다. 하당은 마을회관 옆의 당산나무(탄동보호수, 지정번호 15-22-1-4)이며 당산제의 신격은 ‘당할머니’이다. 입석은 2기로 1기의 입석(②)은 마을 남쪽에 어귀에 있으며, 높이 65cm, 너비 30cm이다. 다른 1기(③)는 마을 동쪽 작은 살맥이 등에 있으며 높이 105cm, 너비 50cm이다. 마을에서는 입석을 ‘살맥이 입석’이라고 부른다. 제사의 순서는 먼저 상당제를 지낸 후 하당제를 지내고 이어 ‘살맥이독' 앞에 음식을 간단히 차려 놓는 순으로 진행된다. 마을에는 당제 관련 문서들(洞中契案, 灘洞里洞中文書綴, 金鼓簿 등)이 많이 남아 있어 당제의 전통성과 역사성을 잘 말해주고 있다.
    참고문헌 : 목포대학교 도서문화연구소 2006,『도서 문화유적 지표조사 및 자원화 연구6 -지도읍 편-』.

    36. 新安 灘洞里 下塔碑群 (신안 탄동리 하탑비군)
    소 재 지 : 지도읍 탄동리 하탑마을
    시 대 : 1865~2004년
    종 류 : 비갈
    유적개요 : 지도 송도와 사옥도를 잇는 지도대교를 건너면 초입에 6기의 비가 줄지어 서 있다. 4개의 비는 지도읍 탄동리 1구 탑선선착장에 있었던 것을 지도대교가 개통되면서 이곳으로 옮겨 세웠다고 한다. 나머지 2기는 사옥도의 연혁을 새겨놓은 ‘연혁비’(2004년)와 지도대교 개통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지도대교 개통 기념비’(2004년)이다. 다음은 지도대교 비석군을 정리한 것이다.

    번호 / 비 석 명 / 연대 / 규모(높이, 너비, 두께 cm) / 비고
    1 / 御史魚公允中永世不忘碑 / 1987년 / 129, 45, 21 /
    2 / 郡守洪公大重永世遺愛碑 / 1879년 / 109, 25, 3 / 철비
    3 / 郡守李公玄翼永世不忘碑 / 1865년 / 128, 57, 17 /
    4 / 郡守南公廷龍不忘善政碑 / 庚辰年 / 148 / 52 / 26 /

    참고문헌 : 목포대학교 도서문화연구소 2006,『도서 문화유적 지표조사 및 자원화 연구6 -지도읍 편-』.

    37. 新安 堂村里 後村長栍 (신안 당촌리 후촌장승)
    소 재 지 : 지도읍 당촌리 후촌마을
    시 대 : 1917년
    종 류 : 거석기념물ㆍ민속유적
    유적개요 : 후촌마을에서 장도(長島)로 가는 마을 어귀, 장성거리라 부르는 곳에 2기의 장승이 90m의 간격을 두고 마주보고 있다. 장승①은 ‘할머니장성’이라 불리며 규모는 높이 178cm, 둘레 122cm에 긴 장방형의 자연석 화강암으로 되어 있으며, 무표정한 얼굴이 무뚝뚝한 인상을 준다. 현재 아래쪽이 부러진 채 방치되어 있다. 장승②는 ‘할아버지장승’ 이라 불리며 규모는 높이 200cm, 둘레 127cm의 근엄하면서 인자한 느낌을 준다. 이 2기의 장승은 1917년에 전에 있던 목장승의 자리에 주민들이 다시 세운 것으로, 후촌마을 당제의 하당(下堂)의 신체이기도 하다.
    참고문헌 : 국립민속박물관 1996,『전남지방 장승ㆍ솟대신앙』.

    38. 新安 堂村里 後村祭堂 (신안 당촌리 후촌제당)
    소 재 지 : 지도읍 당촌리 후촌마을
    시 대 : 미상
    종 류 : 민속유적
    유적개요 : 사옥도에 위치한 후촌마을에서는 매년 음력 정월 초하루에(마을에 부정이 있으면 날받이를 함) 마을뒷산 유봉산에 있는 ‘후촌당’에서 당제를 지낸다. 상당(후촌당)외에 산중턱에 있는 중당과 마을입구 장승거리에 서있는 장승(후촌장승)이 하당의 기능을 맡고 있다. 상당(①)은 높이 145cm, 직경 약 400cm 크기의 네모난 돌담의 형태이며, 주위에는 도토리나무와 소나무가 우거져 있다. 중당(②)은 높이 140cm, 직경 약 300cm 크기의 돌담형태로 상당과 매우 유사한 형태이다. 현재 상당과 중당 모두 내부에는 아무 시설도 남아있지 않으며, 제의도 중단된 상태이다.
    참고문헌 : 목포대학교 도서문화연구소 2006,『도서 문화유적 지표조사 및 자원화 연구6 -지도읍 편-』.

    39. 新安 蟬島里 蛛洞有物散布地 (신안 선도리 주동유물산포지)
    소 재 지 : 지도읍 선도리 주동마을
    시 대 : 삼국
    종 류 : 유물산포지
    유적현황 : 선도는 지도읍 남동쪽에 위치한 부사도에서 남쪽으로 600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한다. 유물산포지는 선도리 주동마을에서 석산마을로 향하는 길에 위치한 선도교회를 포함하는 구릉일대에 해당한다. 이곳은 마을의 동쪽에 위치하는 대덕산(143.4m)에서 서쪽으로 뻗어내린 능선으로 남쪽으로는 간척지인 ‘서구녁들’이 자리하고 동쪽으로는 황해가 인접해 있다. 현재 밭으로 경작되고 있으며, 유물은 다량의 회청색경질토기편이 수습되었다.
    참고문헌 : 신자료

    40. 新安 蟬島里 南岳有物散布地 (신안 선도리 남악유물산포지)
    소 재 지 : 지도읍 선도리 남악마을
    시 대 : 삼국
    종 류 : 유물산포지
    유적현황 : 선도는 지도읍 남동쪽에 위치한 부사도에서 남쪽으로 600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한다. 유물산포지는 ‘지도초교선치분교장’의 남쪽 구릉에 자리한다. 이곳은 마을의 동북쪽에 위치하는 대덕산(143.4m)에서 남서쪽으로 뻗어내린 능선으로 남쪽으로는 ‘매계저수지’가 위치하고 북쪽으로는 ‘주동저수지’와 인접하고 있다. 현재 밭으로 경작되고 있으며, 유물은 회청색경질토기편이 수습되었다.
    참고문헌 : 목포대학교 도서문화연구소 2006,『도서 문화유적 지표조사 및 자원화 연구6 -지도읍 편-』.

    41. 新安 蟬島里 朴良煥․朴啓煥遺址碑 (신안 선도리 박양환ㆍ박계환유지비)
    소 재 지 : 지도읍 선도리 매계마을
    시 대 : 1919년
    종 류 : 비갈
    유적개요 : 매계마을회관(노인정) 앞에 위치하고 있다. 밀양박씨(密陽朴氏)의 선도 입향조는 박종학(朴宗鶴)으로 해남 화원에서 살다가 아들 박양환(朴良煥)과 박계환(朴啓煥)을 데리고 이주하였다. 공은 1799년 선도에 입도하여 집을 짓고 밭을 개간하였다. 또한 독서를 좋아하여 후진들을 양성하니, 사람들이 ‘處士’라 칭하였다. 이후 선도에는 박씨 후손 수백호가 거주하게 되니 ‘朴氏島’라 일컫기도 하였다. 이러한 공을 추모하기 위한 비로 전면에 ‘處士朴公諱良煥三省朴公諱啓煥遺址碑’라 새겨져있다. 비의 규모는 높이 182cm, 너비 62cm, 두께 18cm이다. 을미년(乙未年)에 죽산(竹山) 안택승(安宅承)이 찬(撰)하고, 계유년(癸酉年)에 박선규(朴宣奎)가 서(書)하였다.
    참고문헌 : 목포대학교 도서문화연구소 2006,『도서 문화유적 지표조사 및 자원화 연구6 -지도읍 편-』.

    42. 新安 蟬島里 密城朴氏孝烈閣 (신안 선도리 밀성박씨효열각)
    소 재 지 : 지도읍 선도리 매계마을
    시 대 : 1934년
    종 류 : 유교건축
    유적개요 : 매계마을 초입에 위치한다. 석축의 외삼문을 들어서면 정면 왼쪽에 ‘原州李氏旌閭’가 있고 오른쪽에 ‘朴炳煥旌閭’가 있다. 原州李氏와 朴炳煥은 할머니와 손자로, 1905년에 함께 정려를 포상받았다. 비각의 바로 옆에 改․補修를 알리는 비석이 있고, 비각은 2005년에 중수하였다. 원주이씨는 박준권(朴準權)의 부인으로, 어려서부터 효를 행하고 온화했으며, 시집을 간 후에도 시부모의 가르침을 잘 따르고, 정성껏 봉양하였다. 이러한 부인의 행실을 향교 유림들이 천거하여 정려를 포상받았다. 비의 앞면에는 ‘孝烈婦貞夫人李氏旌閭碑閣’이라 새겨져 있으며, 규모는 높이 145cm, 너비 51cm이다.
    박병환의 字는 德允, 號는 愛菴이며, 본관은 密城이다. 肅愍公 朴承宗의 후예이며, 아버지는 嘉善 朴靖來, 어머니는 貞夫人 韓氏이다. 공은 지극한 효성으로, 부모가 병을 얻자 자신의 손가락을 잘라 수혈하였다. 이러한 공의 행적을 기리기 위해 甲戌年에 정려각이 건립되었다. 비의 앞면에 ‘贈嘉善大夫孝子朴公炳煥旌閭碑閣’이라 새겨져 있으며, 높이 141cm, 너비 51cm이다.
    참고문헌 : 목포대학교 도서문화연구소 2006,『도서 문화유적 지표조사 및 자원화 연구6 -지도읍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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