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사와 문화 > 역사인물

글번호 제 목 작성자 작성일 조회
3   항일 농민운동의 영웅, 서태석 최성환 2009/8/27 4138


    신안의 역사인물

    항일 농민운동의 영웅, 서태석

    최성환(신안문화원 사무국장)

    서태석(1885~1943) 은 1885년 신안군 암태면 기동리에서 태어나 일제하 대표적인 농민운동인 1924년 암태도 소작쟁의 지도자로 활동했으며, 조국의 독립과 사회주의 운동에 앞장섰던 인물이다.
    그는 주민들의 신뢰가 두터워 젊은 나이에 암태 면장을 지내기도 했는데, 일제 식민통치를 직접 겪으면서 조국의 현실을 깨닫고 독립운동가의 길로 나아갔다. 1920년 목포에서 3․1운동 1주기 행사를 준비하다가 일본경찰에게 체포된 것이 그 출발이었다. 1923년 12월 고향인 암태도에 ‘암태소작인회’를 결성하고, 주민들에게 독립과 민족사상을 보급하였다. 그 영향으로 일제 하 한국농민운동의 기폭제가 된 암태도 소작쟁의가 일어나게 된 것이다.
    일제 하 소작쟁의 운동은 단순히 지주와 소작인간의 생존권 싸움만이 아니라, 일제에 대항하는 항일운동의 성격도 띄고 있다. 따라서 암태도 소작쟁의는 사상적인 면에서 1919년에 일어난 3․1운동 정신의 연장선상에 있었는데, 그 중심에는 바로 서태석이 있었다. 암태도 주민들이 보여준 강한 단결력과 민족의식은 일제의 갖은 탄압에도 불구하고 최초의 농민운동 승리라는 쾌거를 만들어냈다.
    서태석은 암태도 소작쟁의를 승리로 이끈 경력을 밑거름으로 하여 이후 왕성한 활동을 펼쳐나갔다. 지방에 머물지 않고, 서울로 올라가 국내외 쟁쟁한 활동가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였다.
    그러나 그 이후 독립운동가 서태석의 삶은 불행의 길로 치닫게 된다. 고문후유증으로 인한 정신분열증을 앓아야만 했는데, 일제의 감시가 심해 고향마을인 암태도에서 조차 그를 따뜻하게 돌봐줄 사람이 없었다. 결국 압해도의 어느 논둑 길에서 벼 포기를 움켜쥔 채 쓰러져 있는 비참한 모습으로 마지막 숨을 거두고 말았다.
    선생의 불행한 운명은 일제시기에만 국한 된 것이 아니었다. 일제로부터 해방이 되었지만 변한 것은 없었다. 서태석 선생은 1920년대 후반에 공산당 관련 활동을 하기도 했었다. 시대적 상황을 고려하면 그 때 당시의 공산당 활동은 독립운동과 그 맥을 같이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광복이후 우리민족이 사상적으로 분열되면서, 선생의 이러한 전력은 ‘선양의 대상’이 아닌 ‘금기의 대상’으로 전락하였다. 가족들은 연좌제적인 감시와 탄압을 받아야만 했고, 마을 사람들이 선생의 추모비를 세우는 것조차도 제재 당하기 일수였다.
    얼마 전까지 서태석 선생은 독립유공자로도 공훈을 인정받지 못했는데, 지난 2003년 8월에 비로소 독립유공자 훈장을 받게 되었다. 이제는 선생의 활동 경력과 업적에 대한 올바른 평가작업이 이루어져야 할 때이다. 80년이 지난 지금도 암태도 주민들은 “서태석이야말로 우리들의 영웅이었다”고 회상하면서, 그에 대한 올바른 평가가 이루어지기를 바라고 있다.






글번호 제 목 작성자 작성일 조회
4 자산어보를 만든 위대한 유배인 정약전   최성환 2009/08/27 7960
3 항일 농민운동의 영웅, 서태석   최성환 2009/08/27 4139
2 조선후기 민권운동의 선구자, 김이수   최성환 2008/06/17 8277
1 서양화가 수화(樹話) 김환기   관리자 2006/03/09 11400



(58753) 전남 목포시 수강로3번길 14 신안군별관 2층 / 전화 : 061) 242-8131 / 팩스 : 061) 243-8132 / sa8131@kccf.or.kr
COPYRIGHT 2006 SHINANCULTURE.NET. ALL RIGHTS RESERVED